미디어고양파주] 삼칠일(아이를 낳은 지 스무하루째의 날)인 3월 4일, 흰 눈이 속복소복 내려 쌓이던 새벽...

흰 눈이 내리던 삼칠일, 배꼽이 떨어지고 첫 통 목욕도 즐겼다.
흰 눈이 내리던 삼칠일, 배꼽이 떨어지고 첫 통 목욕도 즐겼다.

모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데 21일 동안 꾸덕꾸덕 말라가던 탯줄이 잘 아물어 배꼽에서 깨끗하게 똑 떨어져 있었다. 그날 저녁 기다리던 첫 통 목욕을 시켰는데 역시 예상대로 보라는 울지 않고 따뜻한 물속에서 너무나도 편안하게 목욕을 즐겼다.

삼칠일이 지나면서 서서히 모유수유에 서로 적응이 되었는지 그렇게도 찾아 헤매며 칭얼거리던 보라는 엄마의 젖을 바로 찾아 빨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자나면서 보라의 입도 조금은 커졌기에 가능한 듯 싶었다. 양쪽을 각 10~15분씩 물려 먹이고 짜둔 모유를 더 보충해 주면 배가 부른지 스스로 잠이 들곤 한다.

칭얼거리던 보라는 엄마의 젖을 찾아 빨 수 있게 되었다.
칭얼거리던 보라는 엄마의 젖을 찾아 빨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3~4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리면서 탈도 났었다. 보라가 젖을 힘차가 빨았기에 진물도 나고 찢어지기도 하면서 약을 바르고 씻어 물리다가 결국 며칠간은 젖병으로만 먹였다. 상처가 조금 나아지면 다시 물리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재정비해 가며 모유수유를 근근이 하고 있었다.

고생의 시간이 지나고, 그토록 젖꼭지를 못 물어 힘겨워 하더니 그새 컸다고 그냥 한 번에 확 입을 벌려 입안에 쏙 넣고는 쭉쭉 턱관절을 움직여가며 빨아대는 모습은 너무나 보기에도 흐뭇하고 기특하다. 드디어 한 고비를 넘어가는 것 같다.

한 달째가 되어 기념촬영을 했다.
한 달째가 되어 기념촬영을 했다.

3월 12일 한 달째 되던 날

기저귀로 30이라는 숫자를 만들고 그 위에 뉘여 한 달 기념사진도 촬영했고, 보라의 눈, 코, 입, 배꼽, 손, 발을 찍어 편집도 하고 퇴근하고 돌아온 사위와도 몇 컷의 한 달을 기념하는 사진도 남겼다.

눈, 코, 입, 배꼽, 손, 발까지
눈, 코, 입, 배꼽, 손, 발까지

다음날 소아과를 방문해 최윤희 선생님을 만나 두 번째 체크를 하니 몸무게가 이제야 3.35kg에 키는 52cm까지 머리둘레는 35.7cm로 모유의 영양분을 열심히 섭취하여 조금은 자라 있었다. B형간염 2차 접종도 하고 다시 한 달 후인 4월 12일에 예약하고 돌아왔다.

B형간염 2차 접종겸 방문한 소아과에서...
B형간염 2차 접종겸 방문한 소아과에서...

보라가 태어나고 10일째인 2월 22일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허리에 약간의 통증이 있었다.

걷기 운동을 하러 공원에 다녀왔고, 조심조심 하면서 지냈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지면서 많이 힘들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일주일 전에 집까지 산후보약을 배달해 주셨던 라파한의원 오정환 선생님께 딸이 카톡으로 문의 후 방문예약을 잡아주었다. 돌아눕기도, 일어나기도, 앉기도, 다시 눕기도 힘들어지는 극심한 통증에 꼼짝하기 힘들었다.

월요일 오전에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도저히 힘을 줄 수도 없는 상황까지 가면서 기운이 빠져 어지럽고 혼자서는 일어나 걷기도 힘들어 몸조리하는 딸의 부축을 받으면서 있다가 일찍 퇴근하고 온 사위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한의원에 들어서니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시며, 이 정도로 아프신 상황이었냐면서 침대에 누워보라는데도 통증 때문에 진땀을 흘리며 도움을 받아 간신히 힘겹게 누워 검진을 받았다.

갑자기 찾아온  허리 통증으로 4번의 처방과 진료를 받았다.
갑자기 찾아온 허리 통증으로 4번의 처방과 진료를 받았다.

장거리 비행에 도착하여 시차적응도 채 끝나기 전에 시작한 육아로 몸에 피곤이 쌓이면서 근육에 스트레스로 작용해 급성으로 뭉치면 이런 상태가 나타난다면서 치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뭉친 근육을 풀고 혈을 돌리려 얼굴과 손, 발쪽으로 침을 꽂고 부황도 떴다. 집에 돌아와 냉찜질을 해가며 통증을 완화시켜보며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그나마 어제보다는 차도가 있었다.

다음날도 사위가 일찍 돌아와 데려가서 치료받고, 고주파치료에 근육테이프까지 붙이고 약도 3일치 조제해 주어 받아와 먹고 하루 또 지나 28일엔 침 맞고 척추교정 선생님의 진료까지 받으니 조금씩 차도가 있었다.

5일이 지난 3월 5일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마지막 침과 교정, 그리고 뭉친 근육을 푸는 마사지를 받고 오니 살만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딸과 사위가 둘이서 보라를 챙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딸은 “엄마! 더 나이 들기 전에 어서 둘째를 가져야 할 것 같아. 시간 지나면 엄마가 더 힘들어 못 봐준다고 할 것 같아서 계획을 잘 세워봐야겠어”하는데 진짜 더 나이 먹으면 손주들을 들지도 앉았다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선생님들의 빠른 처치로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점점 몸무게가 늘어가는 보라를 안고 누이고 하려면 허리와 팔, 다리 힘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도와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허리가 아파 침을 맞으며 누워있는데 시할머님과 시어머님 두 분이 생각났다.

1991년 12월 마지막 날 늦은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5월에 결혼하여 딸은 뱃속에서 거의 막달이었다. 우리와 함께 살던 1903년생 그 당시 88세 이셨던 시할머님이 소변보러 나오시다가 마당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뼈가 부스러지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1992년 새해 첫날 남편이 시할머님을 업어서 병원으로 갔지만 그 당시에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수술은 어렵다며 잔뜩 진통제만을 받아들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난 그때 임신성 당뇨 판정으로 친정으로 가서 딸을 낳고 산후조리하고서 4월 초에 다시 시댁으로 돌아오니 우리 시할머님은 뼈가 부서진 통증을 진통제로만 버티면서 3개월을 보내고 어느 정도 아물어 그 후로는 앉아서만 생활을 하셨다.

그 당시 딸을 맡기고 직장에 가면 우리 시할머님이 가끔씩 딸을 옆에 뉘여 놓고 분유도 주고 토닥이며 재워도 주시곤 하셨다. 4대가 함께 살면서 자란 딸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증조할머니에게 변기도 가져다 드리곤 했다. 지금도 딸은 자기가 가져다 드렸던 증조할머니의 변기통 색깔을 기억하고 있다. 엄마와 할머니가 증조할머니 변기를 치우는 것을 보아서인지 자기가 치우겠다고 하면서 시늉도 내곤했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또한 어머님은 결혼 전 디스크수술을 하셔서 허리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퇴근하고 돌아갈 때 까지 돌보아주셨다.

난 잠깐의 근육 뭉침으로도 절절매고 통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우리 시할머님은 그 큰 고통을 어떻게 버텨내셨을까 싶다. 또 지금 내 나이에 할머니가 되신 시어머님은 그 불편한 허리로 어떻게 엎고 앉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예전 4대가 함께 생활했던 생각을 하며 울컥했다.

지금 내가 보라를 보아도 저리 이쁜데 우리 시할머님은 증손녀가 또 시어머님은 손녀딸이 얼마나 소중하고 이쁘셨을까? 5살 때까지 돌봐주셨던 두 분께 감사드린다.

딸의 증조할머니, 헐머니 두분께 감사드린다.
딸을 돌봐주셨던 시할머님과 시어머님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말 하루가 짧게만 느껴지는 건 그만큼 바쁘게 할 것이 많다는 것일 꺼다.

다음 편엔 과연 어떤 일들이 우리들에게 일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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