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5월 6일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너무나 화창했던 아침이다. 드디어 오늘부터 딸은 12주간의 출산 휴가를 마치고 출근이다. 딸은 아침 6시에 일어나 보라에게 모유를 먹이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먹일 보라의 양식을 유축해 담아두었다.

딸은 든든하게 아침도 챙겨먹고 도시락가방까지 챙겨서 출근 준비를 완료하고는 7시50분 버스를 탔다. 이제 처음 경험해 보는 ‘워킹맘의 세계’로 첫걸음을 한다. 보라를 두고 떠나려니 못내 아쉬운지 몇 번씩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볼에 입 맞추었다. 나는 첫 출근길에 나서는 딸에게 “조바심 내면서 불안해하지 말아라. 보라는 할매랑 잘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마음 놓고 일하라”고 말했다. 또한 “오랫동안 쉬었다 하는 일이 손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으니 실수 하지 말고 잘 하고 오라”고 다독였다. 딸은 보라가 안쓰러운가 보다. 내 눈엔 내 딸이 더 안스러워 보였다. 우리의 아쉬운 작별인사는 자꾸 길어졌다. 결국 딸은 버스시간에 쫓겨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 앞으로 우리 딸은 애틋한 출근길을 얼마나 많이 겪어야할까?

첫 출근하는 딸/딸과 손녀딸의 비교사진/공원에서 만났던 어르신
첫 출근하는 딸/딸과 손녀딸의 비교사진/공원에서 만났던 어르신

자. 이제 나도 새로운 시작이다. 할매 홀로 보라와 보내야 하는 첫날이 시작되었다. 냉동고에는 그동안 유축해둔 모유를 지퍼백에 담아 충분히 보관하고 있다. 이제는 오롯이 보라와 단둘이 딸이 돌아올 때까지 잘 지내주어야 하는데 혹시라도 자고 일어나 잠투정이 많아질까? 제대로 먹지 않을까? 보라가 잘해줄까? 걱정과 긴장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염려는 우리 둘에게는 그저 기우였을 뿐이었다.

보라는 자고 일어나 부스스 눈을 비비며 온 몸을 꼼지락거리며 깨어나더니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어 주었다. ‘해피 베이비’인 보라는 변함없이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낮에는 햇살이 너무나도 좋아 인디언레이크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비타민 D를 섭취하며 걷다가 동양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 먼저 인사했다. 우리나라 분이었다. 그 분은 보라에게 관심을 보이며 “보라가 얼마나 되었냐”고 묻기에 “이제 곧 100일을 앞두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분은 또 애기 엄마냐고 물어서 “아니, 젊은 할머니”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내가 엄마인줄 아셨다며 미안해 하셨다. 오히려 내가 감사할 따름인데 말이다. 그 분은 “본인은 39년생이며 아들과 둘째딸이 이곳에 있기에 20년 전 이곳으로 왔고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라와 단 둘이 함께했던 시간들
보라와 단 둘이 함께했던 시간들

집에 오니 밖에서 잘 잤던 보라는 깨어나서 우유 먹고 잠시 놀다가 졸릴 시간이 되니 또 잠들어 버렸다. 매일 점심시간엔 사위가 “점심 드셨냐, 보라가 힘들게 하지는 않았냐”며 전화를 주었다. 장모도 챙기고 딸도 챙기는 자상한 사위가 보라와 함께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 느껴진다. 

보라와 단 둘이 지낸 첫날 오후 5시50분에 딸이 집에 도착했다. 깜짝 놀랐다. 일찍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5시 정각에 ‘칼퇴근’한 것이다. 상기되어 들어오는 딸을 보니 오늘 하루 딸의 긴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딸은 오자마자 모유를 먹이고 목욕물 받아 목욕시켰다.  

사위가 퇴근하고 온 후 함께 식사하며 첫 출근한 딸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은 Mother‘s room에서 유축해 회사 냉동고에 얼려 두었고, 오랜만에 컴퓨터 작업을 하니 5G 실력에서 3G로 돌아간 듯 하지만 다시 감각이 돌아올 것 같다고 했다. 딸은 오랜만의 직장생활 하루를 지내보니 해 볼만하다고 했다. 나도 보라와 지낸 하루를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딸과 사위는 보라의 숨소리 하나까지 듣고 싶을 테니까. 우리는 하루동안의 일들을 수다로 풀어내며, 저녁식사를 마무리했다. 내일 출근을 위해 10시전에 불 끄고 취침 준비를 하니 보라도 엄마 품에 안겨 편안히 배를 채우며 스스르 잠에 빠져 들었다. 우리도 덩달아 셋이서 보라를 따라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주는 주중에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집에만 있었다. 조금 답답했지만 갑자기 쌀쌀해져 전기장판까지 꺼내 깔고 지냈다. 금요일 오후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서 보라에게 물놀이를 시켰다. 제법 혼자서도 욕조안을 왔다갔다하면서 약 30분을 놀고나서 우유를 먹이니 지쳤던지 그냥 골아 떨어져 주었다. 

무사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을 잘 보냈다. 딸과 같이 있을 때 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느낌은 뭘까?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보라는 엄마, 아빠와 같이 잠을 잤기 때문에 나는 세상 모르고 푹 잔 것 같다. 보라와 단 둘이 보낸 첫 일주일이라서 더 긴장했던지 나도 피곤했었나 싶었다.

조카 둘이 방문했던 토요일
조카 둘이 방문했던 토요일

토요일에는 조카 둘이서 대학과 대학원 졸업준비를 모두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라를 만나기 위해 보라색 꽃다발까지 들고 방문했다. 3개월여 만에 보라까지 합세해 다시 만난 우리는 샤브샤브 부페에서 조카들과 푸짐히 식사를 하였다. 조카들은 보라를 서로 번갈아 안아 보면서 너무 작아서 어떻게 만져 안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5월 12일 일요일은 이곳에서는 제일 크게 챙기는 ‘Mother’s Day’다. 또한 보라가 태어난지 90일, 그러니까 세달 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5월 8일에 어버이 날로 부모를 함께 챙긴다. 하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5월 둘째주 일요일은 ‘Mother's Day’, 한 달 후인 6월 둘째주 일요일은 ‘Father's Day’라고 한다. 작년 ‘Mother's Day’에는 2005년 떠난 후 처음으로 딸과 더불어 사위와 함께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 투어와 월풀에서 물벼락을 맞으며 신나게 보트도 타며 1박 2일간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었다. 1년이 지난 이번 ‘Mother’s Day’는 엄마가 되어 첫 ‘Mother’s Day’를 맞이하는 딸에게 사랑스럽고 예쁜 손녀딸을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는 축하카드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번 첼시마켓에서 달모양의 오팔로 만든 반지를 전달하며 축하해 주었다.

또한 딸은 나에게 자기가 처음 맞이하는 ‘Mother’s Day’에 엄마가 함께 있어주어 너무 고맙고, 이제 보라를 낳아 지내보니 엄마가 얼마나 마음 고생, 몸 고생 하면서 자기를 키웠는지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면서 구구절절이 고맙다는 내용의 카드를 보내왔다. 딸도 첼시마켓에서 골랐던 블러드오렌지를 말려 만든 목걸이와 미리 준비해둔 11월의 탄생석인 토파즈 목걸이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딸이 나를 한껏 안아주어 너무나 행복했다. 어느새 이제는 손녀딸까지 안겨준 나의 하나뿐인 딸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첫 Mother's Day, 딸과 사위에게 목걸이와 시계를 선물 받았다.
첫 Mother's Day, 딸과 사위에게 목걸이와 시계를 선물 받았다.

또한 사위는 딸과 나에게 커플 손목시계를 주었다. 딸에게는 특별히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 함께 전달했다. 그리고는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근사하고 맛있는 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주었다. 오늘의 토스트는 특별히 더 맛이 좋았다. 

사위의 후렌치 토스트, 딸의 뉴욕 스테이크와 토마토 파스타
사위의 후렌치 토스트, 딸의 뉴욕 스테이크와 토마토 파스타

저녁엔 딸이 뉴욕 스테이크와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어 주어 근사한 저녁을 함께 했다. 손녀딸이 생기고 맞이한 첫 ‘Mother's Day’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든 날이었다. 딸은 보라와 함께 커플룩을 맞춰 입고 행복한 첫 ‘Mother’ Day 인증샷을 찍었고, 우리는 또 보라의 석달이 되는 90일 기념 인증샷도 남겼다. 날씨가 좋으면 야외로 나갈 계획이었는데 종일 비가 내려 ‘방콕’만 하고, 보라는 사위가 받아준 물속에서 주말 수영을 즐겼고, 다음 주말에 날씨 좋으면 보테닉가든을 가는 걸로 계획하며 아쉬운 ‘Mother’s Day‘를 마무리했다.

90일 기념사진과 딸과 보라의 Mother's Day 첫 커플룩
90일 기념사진과 딸과 보라의 Mother's Day 첫 커플룩

이제 5월 22일이 보라 100일인데 평일이기에 우리는 앞당겨 18일 토요일에 백일상을 차려 보고 우리끼리 조촐히 셀프촬영을 계획하고 있다. 백일상에 꼭 올리는 수수팥단지는 할매가 꼭 직접 만들어 주고 싶기에 인터넷도 뒤져서 필요한 것들과 방법을 숙지하면서 어떻게 예쁘게 꾸며야할지 딸과 함께 고민하는 한주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그 이야기가 다음 편을 장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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