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2월 12일 밤, 나와 딸 그리고 갖 태어난 손녀, 이렇게 3대 여인은 첫날밤을 함께 했다.

손녀인 보라가 칭얼거려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분유를 물려주니 이번에는 약 35ml를 먹었다. 트림을 시키고 나니 보라는 새까만 태변을 누었고 기저귀를 갈아주니 편안한 듯 금세 스르륵 잠에 들었다. 보라를 재우고 큰일을 치른 우리도 얼른 자야했기에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8시 40분에 조셉 정 선생님이 방문해 딸의 몸 상태를 체크해 주셨다. 딸은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면서 제대로 돌지도 않은 젖을 매번 물려가며 조금씩 감각을 찾아가도록 노력해 봤지만 젖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보라의 작은 입은 딸의 함몰된 젖꼭지를 잘 물지 못하고 캥캥 울기만 했다.

모유수유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니 모유수유 카운슬러가 젖 물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그 방법도 여의치 않아 결국 쉴드라는 보조도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실리콘 꼭지를 끼워 보라가 배고파서 울 때마다 물려보니 그나마 조금은 빨아보려는 노력을 하지만 이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 그 후에는 장갑 낀 손가락에 팥알만큼 묻어나오는 노오란 젖(초유)을 찍어 보라의 입 속에 밀어 넣어 주고는 다시 쉴드를 착용하여 빠는 연습을 이어갔다.

보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지인분들
보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지인분들

오후에는 사위의 친구 두 분이 방문하여 축하풍선을 침대에 달아주었고 저녁에는 사촌조카와 조카사위, 딸의 절친 언니가 찾아와 보라의 탄생을 축하해 주고 보라와 첫인사를 했다.

그날 밤 늦게까지 밀린 일을 하고 이틀간의 휴가를 받고 온 사위와 딸과 보라 셋이 병실에서 자게하고 나는 병동 라운지 쇼파에서 하룻밤을 보내려고 누웠는데 바로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발렌타인 데이인 2월 14일 퇴원하는 날 아침, 경비아저씨가 깨우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병실에 가보니 딸과 사위는 보라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얼른 미역국과 밥으로 아침을 먹고 유축기를 이용해 젖을 짜내어 아주 조금 나온 노오란 첫 초유도 보라가 먹게 해보았다.

산부인과 조셉 정 선생님과 소아과 최윤희 선생님께 체크업을 받고 있다.
산부인과 조셉 정 선생님과 소아과 최윤희 선생님께 체크업을 받고 있다.

산부인과 조셉 정 선생님, 소아과 최윤희 선생님께서 각각 방문하여 체크해 주시고 병문 방문일정을 예약했다. 딸과 보라 둘 다 이상 없으니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해 넷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묵직하게 매달려 있던 보라 배꼽의 클램프와 피주머니를 제거해 준 후 따뜻하게 옷을 입혀 카시트에 벨트까지 채워 앉힌 것을 확인하고 난 후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로부터 다시 한 번 축하인사를 받으며 병원을 나섰다.

아빠, 엄마의 집으로 이동하기 전에 넷이서 인증샷을 찍었다.
아빠, 엄마의 집으로 이동하기 전에 넷이서 인증샷을 찍었다.
카시트에 시승한 보라 /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다.
카시트에 시승한 보라 /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다.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퇴원 절차가 간단했다. 병원비와 입원비를 모두 납부 정산해야만 퇴원할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집으로 나중에 청구서가 배송되면 그때 납부금액을 확인해서 납부하면 됐다.

집에 돌아와 준비해 두었던 아기침대에 작은 보라를 누이니 침대가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걸까.

보라는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한번 목욕을 했다. 배꼽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통 목욕을 하지 말라고 하여 얼굴과 머리, 다리만 물로 씻기고 팔과 배, 등 쪽은 물수건으로 닦았다. 보라는 목욕을 하는 동안 울지도 않고 가만히 나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집에서 첫 목욕을 무사히 마쳤다.

밤이 되면서 딸의 젖이 점점 더 돌기 시작하였고 땡땡해 지면서 통증이 왔다. 젖몸살이 올까봐 걱정이 되었다. 살살 마사지 해주며, 내일 아침에 방문하는 마사지 선생님의 전문가 마사지를 받으면 통증이 완화 될테니 힘들어도 좀 참아 보자고 딸을 다독였다.

보라와 집에서 보낸 하루가 저물었다.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무사히 치러낸 우리 네 명은 감사와 감동의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보라와 태어나서부터 같은 병실에서 2박 3일을 지내면서 젖도 물려보고 기저귀도 갈아주면서 함께 했던 경험을 통해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 모두 낯설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만약 신생아실에 보라만 따로 있다가 데리고 집으로 왔다면 낯선 환경에 당황하고 서로를 어설프고 힘들게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보낸 시간은 참 좋은 선택이었다.

유축기로 받아낸 첫 모유 / 집에서의 첫 목욕
유축기로 받아낸 첫 모유 / 첫 목욕

2월 15일 아침 일찍 마사지 선생님이 오셔서 보라를 위해 차오르는 젖을 마사지하고 물려보려고 했다. 보라는 계속 젖을 무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며, 짜증나고 화가 나는지 결국 우렁찬 울음을 내뱉으면서 계속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았다.

땡땡하게 젖몸살을 시작하려던 상태에서 따뜻한 수건으로 마사지하고 난 후 젖이 많이 말랑말랑해졌다. 그 후에 유축을 해보니 어제는 쪼금 나오던 초유가 마사지 후 시간이 지나며 점점 많이 나오고 있었다.

마사지 선생님은 병원에서 준 쉴드를 사용하지 말고 힘들어도 직접 수유할 수 있도록 딸도 보라도 서로 노력해야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유가 면역력 향상과 턱관절 운동으로 인해 두뇌 발달도 좋아지고 입안의 백태도 자연적으로 없어진다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모유수유를 계속 하다보면 서로 적응할 수 있다고 딸이 노력을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정말 인체의 신비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보라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듯 젖을 빠는 것이 힘들어도 울어가면서 배고픔을 이겨내려고 젖을 빠는 모습이 대견했다.

지금 딸을 보며 옜날 생각이 났다. 나는 딸이 태어날 때 임신성당뇨와 황달로 인해 초유도 제대로 못 먹이고 계속 약을 먹어야 해서 딸에게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항상 딸에게 미안했고 딸이 크면서 몸이라도 아프면 분유를 먹여서 그런가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모유가 뭐라고 아이만 건강하면 된다고 남편은 이야기했지만 엄마 마음은 많이 속상했다.

지금 저렇듯 젖이 차올라 아프고 힘들어도 잘 참아내며 꼭 모유를 먹이겠다고 애쓰는 딸을 보며 모유를 먹일 수 있는 딸이 참 다행이고 애쓰는 모습도 안타깝지만 대견하고 이쁘기만 했다.

모녀간에 모유수유를 하기 위한 실갱이를 마무리 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이면 올지? 그날이 어서와 둘 다 안정적으로 편하게 먹고 먹이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래본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진정 보라를 품에 안고 시작해야하는 육아가 현실이 되었다.
본격적인 육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오늘은 단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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