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2월 12일 아침 6시 40분이었다. 보라를 받아주기 위해 눈길을 달려 일찍 병실을 찾아주신 조셉 정 선생님이 순산을 위한 푸시 방법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는 1시간 안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이제 시작이다. 사위는 딸의 손을 잡아주고 간호사 선생님과 나는 각각 다리를 밀어주었다. 원-투-쓰리-포-에잇-나인-텐 1세트를 3번씩 구령에 맞춰 차근차근 호흡을 맞춰가며 보라와 딸은 만남을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1시간 후 조셉 정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이제 마지막 푸시를 해보자고 하시며 침대의 반을 빼내니 갑자기 분만 침대로 변신! 방이 그대로 분만실이 되었다. 푸시를 할 때 마다 점점 보이던 새까만 머리카락이 아침 7시 46분에 밀려 나왔다. 드디어 귀가 빠지자 보라의 숨이 터지는 힘찬 울음소리로 세상에 나왔음을 알려주었다.

3W11호실 우리는 새 생명의 탄생 그 감격 속에 감동과 축하의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겁 많고 피를 제일 무서워하는 사위는 용기를 내어 첫딸 보라의 탯줄을 잘랐다. 보라는 바로 유아가온장치에 누워 있었고 간호사님은 보라의 젖은 머리를 말려 모자를 씌우고 온도 체크기를 붙였다. 가위로 고정해 놓은 탯줄도 짧게 잘라 작은 피주머니와 클램프(탯줄 집게)를 고정했다. 엄마와 아빠의 검지 지문을 찍고 보라의 양쪽 발바닥을 스템프로 찍고는 팔목과 발목에 팔찌를 채우는 절차가 진행됐다.

출산 후 20여분 만에 첫 상봉하는 보라와 딸
출산 후 20여분 만에 첫 상봉하는 보라와 딸

8시 10분에 그동안 뱃속에서 꼼지락 거리던 보라가 엄마와의 '첫 skin to skin'을 했다. 둘이 눈을 맞추고 가만히 서로의 심장소리를 느끼고 있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30분을 울지도 않고 엄마를 바라보는 보라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드디어 딸을 품에 안은 내 딸
이로써 나는 진짜로 '보라 할매'가 되었다.

2시간 여 만에 우리는 분만병실에서 2박 3일 동안 머물 4E24호 회복병실로 옮겼다.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보라를 어떻게 보호할지를 정해 달라고 해서 우리는 병실에서 퇴원 할 때까지 보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간호사 선생님은 신생아 카트 안에 보라를 돌돌 말아 뉘여 딸 침대 옆에 놓아 주었다. 우리는 퇴원 할 때까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수유도 하며 하루하루 적응해 가고 있었다.

2.445kg에 48.26cm로 작게 태어난 보라는 저체중 경계에 있기에 24시간 동안 8번 발뒤꿈치에서 채혈을 했다. 갑자기 저혈당이 오면 위험할 수 있기에 체크가 꼭 필요했다. 다행이 당 수치는 계속 오르고 있기에 무사통과 되었다.

병실에 와서 집에서 급하게 준비한 미역국과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딸에게 한 그릇 먹였다. 말로만 들었던 것처럼 정말 미국 병원에서는 찬물과 얼음 간식으로 주스와 푸딩, 젤리, 찬 우유, 비스켓, 시리얼 등이 비치되어 있어 이것들을 챙겨 먹고 식사는 햄버거, 피자, 연어샐러드, 파스타, 스테이크 등을 주문하여 식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의 첫 식사는 엄마의 미역국과 밥을 딸에게 먹이고 싶어서 집에서 챙겨간 미역국과 밥을 딸에게 먹이며 얼른 젖이 돌아 초유가 나와주기를 바랐다.

보라의 첫 끼니는 25ml의 분유였다.
보라의 첫 끼니는 25ml의 분유였다.

오후 1시경 소아과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보라의 건강상태를 다시 체크해 주셨다. 우리 아시아계는 황달이 올수 있으니 잘 먹이고 잘 싸야지만 황달 끼가 빠져나간다고 조언해서 퇴원 전까지 계속 확인하기로 했다. 보라는 오후 3시 30분에 첫 목욕을 하고 뽀얀 모습으로 돌아왔다.  첫 태변을 보았다면서 액상분유 시밀락 25ml를 먹이라고 해서 태어나 첫 식사로 분유 젖꼭지를 힘차게 빨며 먹고는 트림을 시키기 위해 토닥이니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밤이 되었다. 긴장속에서 하루를 보낸 사위는 내일 출근해 일을 마무리하고 2일간의 휴가를 받고 와야 했다. '아빠'가 되느라 파김치가 되도록 고생한 사위는 잠이라도 푹 자고 출근 준비하라고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와 딸은 지난 하루를 돌아봤다. 우선 건강하게 태어난 보라가 고맙다. 진통을 잘 참고 순산해 준 딸, 함께 곁에서 지켜준 사위, 의사선생님, 간호사선생님,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사돈 어르신 두 분과 혼자 잘 지내고 있는 보라 할배와 응원해 주신 가족과 지인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었다.

보라가 귀 빠진 날, 흰 눈이 내려 축복해주고 있다.
보라가 귀 빠진 날, 흰 눈이 내려 축복해주고 있다.

창밖에는 보라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듯이 새벽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생각이 떠올랐다. 작년 5월 26일 토요일 햇살이 화사한 아침 인디언레이크 파크로 산책을 나갔었다. 거기서 작은 바위 위에 올라와 햇볕을 쬐고 있는 붉은귀거북이 가족을 보면서 결혼한 딸과 사위에게도 저렇듯 둘에서 셋으로 가정을 이루기를 빌며 사진을 찍었던 때가 생각난다. 흰 눈이 내리는 오늘 사위와 딸, 첫 손녀 셋이서 한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을 살짝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옴에 더없이 행복했다. '센스 있는' 나의 아침 산책으로 말미암아 그날 딸과 사위는 보라를 만들지 않았을까.

작년 붉은귀거북 가족을 보고 바라던 대로 세 식구가 된 보라네.
작년 붉은귀거북 가족을 보고 바라던 대로 세 식구가 된 보라네.

이제 둘째 날, 셋째 날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까지 과연 보라에게 초유를 먹일 수 있을지? 또 앞으로 한 식구 더 늘어난 상황 속에서 시작되는 베이비시터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해 낼지? 또한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이 찾아올지 너무나도 기대된다. 우리 세 모녀는 피곤과 기대를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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