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딸이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미디어고양파주] 딸과 즐거운 생일을 잘 보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2시에 딸이 깨워 눈을 떠보니 이슬이 비췄다면서 살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예정일보다 일주일가량 빠르지만 보라가 세상에 나오려고 한다. 진통이 새벽 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3번째까지 진행되어 딸이 다니던 조셉정 산부인과를 찾아 선생님을 만나 뵙고 내진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약 3cm가 열렸다면서 언제 태어날지 모르니 상황을 잘 체크하고 진통 간격이 짧아지면 출산병원인 Hackensack에서 보자고 했다. 이곳은 개인 산부인과에서 출산 전 매달 검사를 하다가 출산은 담당선생님이 소속되어 있는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가서 진통 간격이 짧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부산국밥집에 들려서 순대국을 포장해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시차적응 중인 나와 일하고 돌아온 사위는 피곤함에 깜빡 잠이 들었다.

밤 11시 30분 “엄마, 병원 가야할 것 같아”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딸은 진통이 6~7분 간격으로 온다고 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깨어난 나는 미역국과 따뜻한 물을 준비해 끓이면서 미리 준비해둔 출산가방과 나도 병원에서 퇴원까지 함께 있을 수 있다 여겨서 챙겨둔 가방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시각이 2월 12일 새벽 12시 35분이다.

분만병동으로 올라가면서 넷이서 기를 모아 잘해보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분만병동으로 올라가면서 기를 모아 잘해보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출발 10분 만에 출산 병원으로 예약해 둔 Hackensack병원에 도착했다. 출입증을 발급받고 분만병동으로 올라가서 이제 보라가 문을 두드리니 넷이서 기를 모아 잘 해보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딸과 사위를 검사실로 들여보내고 나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한껏 설레는 표정으로 대기 중인 다른 가족들과도 눈인사를 나누면서 기다렸다. 1시간쯤 지난 후 사위와 함께 나는 3W11호 병실로 이동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여러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고, 약간 서늘한 새벽 병실 안에는 힘찬 보라의 심장소리가 기계음을 통해 울리며 딸은 편하게 침대에 누워 찾아오는 진통을 잘 견디고 있었다.

“엄마, 이제 보라가 나오려나봐”
“보라랑 나랑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잘해 볼테니 걱정 하지마”라면서 딸은 나를 안심시켰다. 든든한 남편과 함께 출산을 준비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새벽 3시에 마취과 의사선생님께서 무통주사를 놓아주셨다. 소변 줄이 연결되고 약 4~5cm 열린 상태가 유지되어 다들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새벽 4시 40분에 처음으로 무통주사 추가 버튼을 눌렀다. 새벽 5시 35분부터는 약 2~3분 간격으로 참기 힘든지 추가 버튼을 누르면서 열심히 문을 두드리는 보라와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분만 준비를 하고 있다.
간호사 선생님이 분만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전 6시 5분 7~8cm가 열려, 바로 병실로 분만에 필요한 의료기기들이 옮겨지고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분만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곧 조셉 정 선생님이 도착한다는 것을 보니 보라가 비좁은 딸의 뱃속에서 39주 2일을 기다리다가 엄마 아빠를 만나기 위해 나올 때가 되었나보다. 이곳은 분만을 병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산모와 가족들에게 너무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27년 전 내가 딸을 출산할 때는 한 방에서 4명의 산모들이 침대에 누워 뱃속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진통을 나누고 있었다. 남편도 함께 하지 못하고 여러 명의 의료진만 들락거리면서 확인하고 그저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을 남긴 채 가버리면 오롯이 홀로 긴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먼저 분만실로 옮겨 나가는 다른 산모를 보며 난 언제쯤이나 저 분만실로 가서 아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며 기다리던 그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는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거였을까?

긴 산고의 시간, 딸이 진통을 홀로 보내지 않고 사위와 내가 함께 옆에서 바짝바짝 타오르는 갈증에 한 조각의 얼음이라도 입속에 넣어 주었다. 그러면서 잘하고 있다고 서로 격려해 주고 손을 맞잡고 토닥여 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맘에 들었다. 이곳의 분만병실은 이렇듯 각 실마다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남편 외 에 1명 더 신청하면 같이 있을 수 있고 출산하는 것까지 옆에서 도와 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편에는 보라와의 만남을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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