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공자는 50살이면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60살이면 어떤 말이든지 편하게 받아들일(耳順) 나이라고 했다.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천명을 받는다. 그래서 ‘대통령은 하늘이 만든다’라는 말이 생겼다.

선거를 통해 천명을 받은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의 소리가 불편해도 하늘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13명 중에서 지천명의 나이인 50세가 안 돼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뿐이다. 5.16 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은 1963년 45세에 대통령이 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49세에 대통령이 됐다. 공교롭게 둘 다 군인 출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아 경제 기적을 이뤘지만, 독재자로 욕을 먹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2.12와 5.18로 천명을 거슬러 죽을 때까지 욕을 먹었다.

역사적으로 이순(耳順)을 넘긴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할 때는 반드시 사달이 났다.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대통령들은 실패했고, 말로가 좋지 않았다. 민심은 천심(天心)이고, 천심이 곧 천명인데 귀를 닫으면 천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와 무관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천명을 받아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천명을 받아들일 때와 달리 최근 대통령의 귀가 굳게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출근길에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주고받았다. 사실 대통령이 아침 출근길에 온갖 국정 문제에 대해 일일이 대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어느 날 슬리퍼를 끌고 소리소리 지르는 MBC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마음이 닫힌 대통령이 갑자기 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그 이후 대통령의 진솔한 목소리는 듣기 어렵게 됐다. 집권 3년 차가 되는 올해에도 국민을 상대로 흔한 기자회견조차 안 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런 언론관은 과유불급이다. 대통령의 소통 부재가 고집으로 보이는 이유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 가방 얘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대통령실은 어떤 해명도 없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사건은 명백한 정치 공작 차원의 지저분한 일이다. 대통령 부인과 만나면서 몰카로 찍은 건 범법행위가 될 수 있다. 법을 어겼다면 법으로 잘잘못을 따지고, 세간에 회자하는 명품 가방에 대해서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될 일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한동훈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분명한 함정 몰카 공작이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고 했다. 국민의 정서에 맞고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대통령실이 한동훈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당정 분리와 당정 수직적 관계 청산을 천명한 국민의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귀가 닫혀 있어도 대통령을 보좌진의 귀는 열려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대신해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보좌관이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하는 사람이다.

순자(荀子)는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君舟民水)”이라고 했다. 국민은 대통령이라는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맹자(孟子)는 “하늘의 뜻을 따르면 흥하고 하늘의 이치를 어기면 망한다(順天者興 逆天者亡)”고 했다.

큰 둑도 작은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대통령이 민심의 소리에 귀를 닫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대통령과 국민 모두 불행해진다는 쓰라린 역사의 교훈을 국민은 알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2년도 지나지 않았다. 해결해야 할 일은 많은데 국내외 정세는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앞에는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어려운 일일수록 국민의 지지와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을 반성해 봐야 한다. 취임 전과 같이 소탈하고 솔직하게 거침없이 얘기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다. 귀를 열어 국민의 소리를 듣고, 불편해도 기자와 대화하고, 어려워도 국민과의 대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선장이 중심을 못 잡으면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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