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영원한 재야(在野) 운동가로 알려진 장기표가 지난 11월22일 가칭 ‘특권폐지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1945년생으로 만 78세의 장기표는 그동안 국회의원의 각종 특권을 폐지하자는 ‘특권폐지국민운동’을 벌여 왔다.

하지만 아무리 길거리에서 외쳐도 법으로 만들지 않고선 해결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신당을 창당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 없었던 움직임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른 이합집산의 정치 회오리가 한바탕 몰아칠 것이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혁신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국민이 예상했던 대로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미 지난 8월에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회는 노인 폄하 발언과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사건이 검찰 조작일 수도 있다는 구설로 혁신 구호를 제대로 외쳐보지도 못하고 간판을 내렸다. 국민의힘 역시 인요한 혁신위원회장이 요구한 중진들의 희생과 기득권 포기를 김기현 당 대표가 매몰차게 거절해서 예정보다 일찍 혁신의 문을 닫아 버렸다.

두 정당 대표 모두 혁신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속내를 국민 앞에 보인 셈이다. 애당초 이재명과 김기현 대표는 자기희생 의지와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눈이 무서워 개혁하는 시늉만 낸 것처럼 보인다.

정당의 개혁과 성공은 공천 혁신이 우선이다. 새롭고 개혁적인 인물을 발탁해야 하지만, 충성도와 인지도에 따라 공천을 주고받는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는 패거리 정치, 계파정치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가 4류밖에 될 수 없는 이유다.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혁신과 개혁’이라는 말이 낡은 레코드판 위에서 바늘 튀듯이 반복된다.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혁신은 내 것을 포기할 때만 가능하다. 내 손안의 떡을 버리자니 아깝고 남한테 주자니 더더욱 싫은 게 정치인 심보다. 국회의원이란 자리 포기는 내가 갖고 있는 맛있는 고깃덩어리를 버리라는 얘기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다. 수준 이하의 정치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절망적이다. 선거에 관한 모든 법을 국회의원 본인들이 스스로 만들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과 국회의원 숫자까지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정한다. 심지어 비례대표제도도 각 당의 유불리에 따라 수시로 바꾼다.

지난 21대 선거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본인들도 잘 모르는 제도를 만들어서 위성정당 비례대표의원을 만들었는데, 22대 선거에서 존치냐 변경이냐를 두고 유불리를 또 따지고 있다. 위성정당이라는 단어는 세계 어떤 정치 사전에도 없을 것이다.

장기표가 얘기하는 국회의원 특권은 187가지에 이른다. 우선 금전적 혜택이 어마어마하다. 국회의원 연봉은 1억5,500만 원으로 미국·일본·독일 다음이지만, 국민소득 대비로는 세계 최고다. 게다가 ‘의정활동 지원비’라는 명목으로 1억2,000만 원을 받고 차량 유지비는 물론이고 문자 발송비 700만 원, 설과 추석엔 각각 휴가비 명목으로 400만 원씩, 해외 시찰비 연간 2,000만 원 등 모든 비용이 다 국고에서 나온다. 가장 큰 특권은 해마다 공식적으로 1억 5,000만 원의 후원금을 받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뿐만이 아니라 대선이나 지방의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도대체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가 없다.

독일과 영국 및 프랑스와 일본의 보좌진은 2~3명에 불과한데 한국은 9명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의 인원이지만 자기 돈은 한 푼도 안 나간다. 월급 주는 무서움을 모르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야 망하든 말든 시급은 해마다 올려야 하고, 기업은 주당 35시간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대 국회는 역대급으로 수준 이하였다. 국민 평균 도덕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인성으로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몰상식한 발언을 일삼는 국회의원이 유독 많았다. 지역구 선거를 통해 걸러지지 않거나 위성정당을 통해 들어온 수준 이하의 비례대표 의원이 많았던 탓도 있다.

오죽하면 평생을 민주와 노동운동에 매달려 온 80을 바라보는 노정객이 세금 도둑을 막겠다고 ‘국회의원 특권폐지국민운동’을 목숨 걸고 벌이고 특권폐지당까지 만들었겠는가. 특권 폐지를 약속하는 정당 출현은 시대 상황에도 맞고, 많은 국민이 원하는 일이지만 과연 정당으로서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장기표는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300명의 21대 국회의원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국회의원 월급 400만 원, 1억 원이 넘는 의정 활동비 폐지, 보좌진 3명으로 축소,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 포기 등의 내용에 동의하냐고 물어봤다. 단 7명만 동의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특권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 스스로 특권을 포기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정치는 후진적인데 정치인은 포화 상태다. 시의원과 구의원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세금으로 사는 정치인이 차고 넘친다. 경제는 어렵고 국제정세는 날로 심각해지는데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열심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의해도 부족한데 정치권은 밥그릇 싸움으로 밤낮이 없다. 당이야 깨지든 말든, 정치적인 이념이 같든 다르든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나만 공천받아서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 그런 이유로 당선이 확실한 특정 지역에서 공천권이 보장된 국회의원에게는 개혁과 혁신은 딴 나라 얘기다.

22대 국회는 정직하고 전문적이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일하고자 하는 공복(公僕)만을 선출해야 한다.

현실성이 없는 얘기지만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이번 기회에 후진적인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으로 바꾸고, 국회의원 임기는 두 번으로 제한하고, 비례대표는 없애고, 국회의원은 200명대로 줄이고, 불체포 특권을 포함한 187가지나 되는 국회의원 특권 폐기 등 대한민국 개조를 위한 개혁적인 헌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당에 몰표를 줘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탄생 될 수 있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