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병원에서 의사가 사라졌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지고 병원을 떠났다. 수술할 환자가 수술을 못 받고, 응급 환자는 병원을 찾아 헤맨다.

2035년이면 의사가 15,000명이나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던지고 무책임하게 병원을 떠났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할 일이 아니고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다.

의사들은 증원 반대 이유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 후에 줄이기는 불가능하고, 의사 수가 증가하면 새로운 의료수요로 의료비가 증가하여 국민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고 한다.

하지만 증원 반대 이유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똑같은 교수가 가르치는데 교육의 질이 왜 떨어지는가. 실습실과 기자재는 더 준비하면 될 일이다. 증원 뒤에 적정 수준의 의료인력이 확보된 다음에 탄력적으로 정원을 다시 조정하면 될 일을 왜 미리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가. 의사가 늘면 어떻게 없던 의료수요가 증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의대 증원 문제는 갑자기 불거진 사안이 아니다. 거의 20여 년 동안 문제가 돼왔다. 역대 모든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 탓에 추진하지 못했다. 의대 정원은 2006년 3,058명에서 한 명도 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400명씩 늘려 10년간 유지해 의사 4천 명을 추가 양성하려 했으나, 대한의사협회의 파업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의대 증원 반대의 진정한 이유는 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과 파이가 작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기심과 욕심 이외의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과거와 달리 가장 머리 좋고 우수한 학생들이 자연과학(이학)이나 응용과학(공학) 분야가 아닌 의대만 진학하니 당연히 노벨과학상을 탈 수가 없다. 높은 수입이 보장되고 완전 갑(甲)으로서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를 목표로 학원에 다니는 세상이 됐다.

과연 의사라는 직업이 가장 두뇌가 뛰어난 인재들이라야 되는 분야인지 모르겠다. 인술을 베푼다는 소명(召命) 의식으로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직업(돈벌이)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파업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의대 정원 증가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소명감을 가진 의사는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국가 정책은 시대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법과 규제는 상황과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단기간에 고도 성장한 우리 사회는 노동, 교육, 의료, 정치 등 많은 분야에서 개혁이 필요하다.

꼭 필요한 사회개혁은 누군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고 4년마다 국회 권력이 바뀌는 상황에서 어떤 정부도 악역을 맡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개혁은 항상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나곤 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다는 노동조합이 그동안 회계장부도 공개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작년에야 비로소 회계가 공개됐다. 2022년 현재 노조 가입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3.1%(272만 명)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해야 할 민주노총은 항상 보수정권 퇴진과 한미동맹 파기, 주한 미군 철수 등 북한 당국이나 할 주장을 외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조조차 없는 영세한 중소기업의 근로자를 보듬는 진정한 노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노조개혁을 해야 한다.

교육 정책도 개혁 대상이다. 급격한 출산율 하락으로 학생 수가 급감하고 폐교가 늘고 있는데 사범대학 정원과 선생 숫자는 줄지 않는다. 사범대 입학 정원과 교원 자격 합격자를 줄이겠다고 하자 사범대 학생들이 반대 데모를 한다.

대학도 시대변화에 따라 전공학과 조정이 필요하지만, 학과 통폐합에 따라 실직을 염려하는 교수들의 반대로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고 있다. 학생은 줄고 시대가 변했는데 교육 정책은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부 자체가 개혁 대상이다.

무엇보다 국회가 최우선 개혁 대상이다. 지금의 국회는 국회의원 숫자도 자기가 정하고, 선거제도도 제멋대로 고치고, 월급과 특권은 최고로 누리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속 정당과 자신들의 재선만을 위해 국회의원을 한다.

무소불위의 국회를 견제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국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숫자와 선거제도 및 월급 수준과 특권 제한 등 개헌을 해서라도 국회가 확실하게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개혁은 항상 기득권자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온다. 역대 어느 정권도 개혁다운 개혁을 하지 못한 이유다. 표를 의식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게 개혁이다.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는 은행원부터 조선소 근로자까지,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간호사도 자신들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침해받는 일은 절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의사가 가운을 벗고 병원을 박차고 나간 지 일주일이 됐다. 3,058명의 의대 정원을 갑자기 2,000명 더 늘린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의협이 진작부터 의사 부족을 인정하고 협상을 통해 해마다 300~500명씩이라도 꾸준히 증원해 왔다면 이렇게 국가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일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는 의사들이 국가와 국민의 목숨을 볼모로 더 이상 극한 대치를 하면 안 된다. 합리적인 증원 숫자를 정부와 진지하게 협의해서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이번 의사들의 파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조하지도 않는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