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클린스만 감독이 마침내 경질됐다. 클린스만의 무능으로 한국은 세계 축구계의 웃음거리가 됐고, 이강인이라는 아까운 선수를 잃게 됐다. 클린스만 사태는 지도자의 무능이 어떻게 최고의 팀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세계적인 선수를 오합지졸로 만드는지 보여줬다.

한국은 히딩크와 벤투가 어떻게 선수를 관리하고 팀을 만들어 나갔는지 알고 있다. 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한국인의 눈에 클린스만의 무능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클린스만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교활한 미소는 자신의 무능을 숨기는 가면에 불과했다. 전술 부재와 선수 기용의 잘못으로 졸전만 펼친 클린스만은 선수 관리조차 실패했다.

이강인의 하극상으로 불거진 축구계의 썩은 환부가 드러났다. 세계 축구계에 무능한 지도자로 낙인찍힌 클린스만을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사심으로 선정했다는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클린스만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무능한 축구협회장은 사퇴해야 한다.

한국인은 유독 축구와 정치에 관심이 많다. 축구를 보는 눈은 전문가 수준으로 높고, 정치는 정치평론가 수준이다. 묘하게도 축구계의 이강인과 정치계의 이준석은 닮은 점이 많다.

85년생 이준석은 26살 때에 정치판에 들어왔고, 2001년생 이강인은 10살 때인 2011년에 스페인으로 축구 유학을 떠나 2018년 17살 때 발렌시아 1군 선수가 됐다. 두 사람 모두 정치판과 축구계의 아이돌로 추앙됐으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율곡 이이는 인생의 3가지 불행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말년빈곤(末年貧困)을 얘기했다. 소년등과의 불행이란 너무 어린 나이에 일찍 성공하면 실패를 모르고 어려움을 겪지 않아 자만과 방탕에 빠지기 쉽고 오만하여 자멸할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손흥민도 소년등과에 해당하지만, 그에게는 손웅정이라는 엄격한 아버지가 있다. 손웅정은 이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도 ‘한국의 우승을 바라지만 한국 축구의 장래를 봐서는 우승하면 안 된다’라고 쓴소리했다. 또한 아들에게는 축구 실력보다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버지다.

이강인은 철도 들기 전에 스페인으로 가서 세계적인 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축구 천재다. 하지만 축구계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조차 있을 수 없는 이강인의 하극상으로 잘못된 이강인의 인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임 벤투 감독이 욕을 먹으면서도 이강인을 한 번도 기용하지 않았던 것이 새삼스럽게 재조명되고 있다.

히딩크는 팀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며,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한 이천수와 이동국을 기용하지 않았었다. 실력보다 팀에 대한 공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히딩크와 벤투는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고 명성이 있어도 인성이 안 좋거나, 팀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았다.

정치인 이준석도 소년등과 한 경우다.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20대 청년이 단지 하버드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급기야 2021년에 36세의 나이로 헌정사상 최초로 최연소 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

하지만 이준석은 언제나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타협과 단합이 아닌 내분만 일으켰다. 자신의 잘못보다 상대에 대한 비난이 먼저고, 말투는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다.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준석의 정치생명은 22대 총선 결과에 달려있다.

이준석과 이강인의 공통점은 과도한 자만감으로 위아래 없이 겸손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력만큼 인성이 따라가지 못한다. 두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가정교육을 짐작할 수 있는 그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벤투에게 외면당한 이강인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이준석의 처지가 묘하게 일치한다. 인성이 안 좋고, 건방진 두 사람에게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강인 없이도 꾸릴 수 있고, 정치판에는 이준석이 없다고 아쉬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두 사람만 모르는 사실이다.

이준석과 이강인은 아직 젊고 어리다. 지난날보다 장래가 더 많이 남은 인재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서 영구 제명당할 처지에 있는 이강인과 22대 총선을 통해 정치판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이준석은 똑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인은 호불호가 명확하다. 좋아할 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싫어지면 순식간에 망각의 강으로 좋았던 기억을 빠뜨려 버린다. 두 사람의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 안타깝게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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