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 1년 반이 되도록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대통령과 여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민생을 챙기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민심에 무심했다는 얘기처럼 들려 생경하다.

모든 정치 행위는 민생을 위한 것이다. 민생과 직결되지 않은 정치는 있을 수 없다. 애당초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정치인도 아니었다. 검찰총장에서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됐다. 무능한 여당에 변변한 후보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정권의 잘못된 일들을 쾌도난마식으로 바로 잡아줄 적임자로 기대하고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이다.

윤석열의 시작은 이전의 대통령들과 달랐다. 구중궁궐로 표현되던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겼다. 소통을 위한 것이라 했다.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과의 ‘도어스테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국민 눈에는 신선하게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도어스테핑이 사라지고 국내 정치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 못 해 먹겠다”라고 말해서 국민이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배짱과 자신감 충만했던 노무현 대통령조차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바둑의 훈수와 직접 대국이 천양지차(天壤之差)인 것처럼 국가 운영이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만 되면 뭐든 가능할 것 같지만, 국가 일이 그리 간단하겠는가. 행정부는 19부 3처 19청의 방대한 조직이다. 대통령이 국가의 모든 대소사를 일일이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유교의 폐단 중 대표적인 것이 철저한 상명하복이다. 단순한 농경시대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 21세기 세계 10대 강국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아직도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공직자가 많다. 대통령이 카카오 택시의 횡포를 응징해야 한다고 화를 내고, 고금리로 어려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같다는 비판을 해야 관계부처와 해당 기업이 움직인다. 모두 정부 부처가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니 각 부처 장·차관이 과연 업무 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공무원들은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복인지 의심받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습득력이 빠르고 박학다식(博學多識)하고 다변(多辯)이라고 한다. 집권 초기에 1시간 정도 회의하면 55분을 대통령 혼자 얘기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검찰총장의 자리에서는 그래도 괜찮지만, 대통령은 반대로 55분을 들어야 하는 자리다. 최종 결제 책임자인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강조하고 결론까지 내린다면 아랫사람은 절대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없다. 아마 불통 대통령이란 오명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대통령의 일방적인 소통 스타일은 자칫 유능한 공무원의 능력 발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국정 운영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대통령의 입장도 답답함은 있을 것 같다. 행정부의 산적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절대 다수당인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 협조를 위한 야당 대표와의 대화는 여러 범법 혐의로 재판을 받는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는 부담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딜레마일 수도 있다.

최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22년 2월에 시작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탓에 묻혀버렸다. 두 지역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처참하게 무너진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폐허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작년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가와 유류값이 급등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대되면 유가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로켓처럼 올라간 미국 금리 탓에 한국의 수많은 기업과 개인 채무자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지갑이 얇아지면 인심이 사나워진다.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인 국제정세와 관계없이 모든 원망은 대통령과 정치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임기의 3분의 1이 지났다. 아직 개혁해야 할 일이 많다. 공약으로 약속한 교육과 연금 및 노동 개혁은 시작도 안 했다.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이 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생방송으로 전 국민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포 카페에서 시민과 격의 없이 대화한 것처럼, 국민과의 진솔한 질의응답을 통해 국가가 가야 할 방향과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자고 호소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이해하고 함께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을 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등장으로 크게 변할 것 같다. 기존 정치인이라면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인요한 혁신안대로 중진과 대통령 측근의 기득권 포기, 국회의원 숫자 10% 감축,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의 정치 혁신안을 받아들인다면 확실히 대한민국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매너리즘에 빠진 노회한 다선 국회의원이 아니라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초선 국회의원이 많아야 한다. 만일 국회의원 숫자를 100명으로 줄이자는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아마 대부분 국민이 쌍수 들어 찬성할 것이다. 지금처럼 눈만 뜨면 수준 낮은 정쟁으로 국민을 괴롭히고 피곤하게 만드는 저질 정치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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