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지금 대한민국의 정국은 마비되다시피 얼어붙었다. 최순실 씨 자신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하여 청와대의 참모들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모든 정세가 판국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제 하나씩 꼬여진 실타래의 실마리를 풀어가면서 모든 것이 밝혀지고 수습되어 안정을 되찾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죄는 다스리고, 죄인은 처벌하면 되는 문제지만,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기에 이 일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고 난국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이야말로 가히 '총체적 난국'이라 부를 만하다.

이번 사건은 사건정황의 모든 전말을 일단 박대통령의 시인과 사과로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실체의 면모들이 자연스레 수면 위로 부상하겠지만, 이제 이 일은 박대통령의 시인과 사과로부터 본격적인 시작점에 이른 것이기에 얼마만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보다 투명하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고, 그래서 길은 멀게 느껴진다. 실로 이 일은 너무 엄청나서 국민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질 만큼 충격적일 수밖에 없고, 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브레인인 청와대와 국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국정에서 손을 떼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박대통령의 향후 계획과 의지, 결단들이 우선순위로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핵무기로 으름장을 놓고 있고, 그동안 한국 경제를 주도하던 삼성이나 현대 그리고 롯데에 이르는 대재벌 기업들이 휘청거리며 나름대로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 시점에서 국민들은 제2의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미국의 대선 후에 되어질 상황에 따라 우리나라가 잡아나가야 할 변수의 방향성, 그리고 우리도 치러야 할 대선 등 그야말로 난제가 눈앞에 쌓여 있는데 지금 국정 운영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요, 총체적 위기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최순실 사건으로 돈을 뜯긴 재벌 기업들이 현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들의 입장 정리를 분명히 하려고 들 것이며, 그동안 여당 편에 서서 보수 언론을 자처한 3대 언론사(조중동)마저 박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시점에서는 박대통령 입장에서 그 어디에도 등비빌 데가 없어져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경색에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 '최순실 게이트' 사건들이 2017년 12월 20일 19대 대선이 있기 까지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박대통령의 해결의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여당과 야당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될 것이고, 특히 이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여당은 생존의 문제로 죽기 살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선까지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야당은 야당대로 자체 안에서 호기를 노리는 대선 주자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변고가 없는 한 현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대선을 현 정국의 최대 관점으로 볼 때 여당이 현재의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망이다.

문제는 다음 대선까지의 정국 현황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실추되고, 비서진을 비롯한 모든 참모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수순대로 일괄 사퇴에 이른 현 시점에서 청와대가 무슨 목소리를 낼 수 있겠으며, 이미 권위와 신뢰가 바닥이 되어버린 대통령이 남은 재임 기간 어떤 일들을 해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이 일이 있기 전 벌써부터 박대통령의 레임덕(lame-duck)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 후로 박대통령은 회복불능의 상태에서 힘이 빠지고 성과 없는 괴로운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판국이기에, 이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 나라의 문제를 걱정하게 된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사건과 깊이 연루된 박대통령의 문제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이해를 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서적 관점에서 한 인간이요 한 여성으로서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나름대로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부모를 모두 권총 사살로 잃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큰 친분을 갖지 못한 채 자신만 외로운 독신으로 남게 되었다. 한때는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해 대통령인 아버지의 옆자리를 지키며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정치력을 쌓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우리나라 초유의 여성 대통령의 권좌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녀처럼 비운의 인생을 걸어 온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그녀는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누구 하나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 씨를 만났고, 최태민 씨 사후 그녀의 딸인 최순실 씨와 친자매처럼 가깝게 40여 년을 지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가장 가까이서 힘과 위로가 되 준 이가 최순실 씨였기에, 그녀에게만은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대통령이 된 후에도 국사(국정)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으로서의 정은 정이지만, 공과 사를 구별치 못한 탓에 오늘에 있어 '가장 권위를 실추시킨 대통령'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박근혜라는 한 여인으로서의 기구한 삶과 그녀만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서 있는 그녀를 이해할 수는 없다. 아니 이해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통령이니까.

지금 우리 국민들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다. 이번 최순실 사건을 통해 과연 이 시점에서 누구를 믿고 어떠한 미래를 이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다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국민의 마음은 더 착잡하다. 박대통령은 이렇게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모두 초라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자신에게 상이 아니라 욕이 돼버린 꼴이다.

지금 박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밥맛이 제대로 있겠나, 잠이 제대로 들겠나, 누굴 만나 즐거운 담소를 나누겠나, 아니면 손님을 만나거나 국정처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그 어느 것 하나도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 앉아 있는 대통령의 자리가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너무도 무겁고 불편하여 당장에라도 집어 치우고 어디론지 훌쩍 떠나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대통령의 탄핵을 그리고 시위 대학생들의 외침은 박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 나 역시 대학생들의 주장과 같이 이러한 형편에서는 대통령이 자리의 중임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한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가 그동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었던 모든 짐들에서 해방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국가와 본인을 위해서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이비 교주와도 같은 최태민 씨에게 미혹되어 진리 아닌 거짓에 속아 영적 분별력을 잃고 이리저리 끌려온 박대통령의 행보가 아쉽고 안타깝게 여겨진다. 그러기에 분통이 터지지만, 기독교 목사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을 위해 더욱 기도하지 못한 책임을 회개할 수밖에 없다.

지금 그녀에게 피난처는 어디일까? 자신의 과실로 말미암아 총체적 난국을 초래한 현 시점에서 그래도 그녀에게 새 힘을 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이미 최순실에게서 그 큰 고통을 넘겨받은 그녀에게 또 누가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없다. No way!

얼어붙은 도성 위로 멀리서 조금씩 햇빛이 비추어 점점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얼음이 녹으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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