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은 지난 11일 [문단 내 성폭력 그만! 고양예고 졸업생들이 나섰다] 기사를 통해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 107명의 문단 내 성폭력 고발자에 대한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기사화했다. 고양예고 졸업생들이 나선 이유는 익명의 성폭력 피해 고발자가 자신들과 함께 공부했던 동기이거나 선, 후배였기 때문이다.

문단 내 성폭력 고발자에 대한 지지선언 기자회견

지난달 22일, '고발자5'는 트위터에서 고양예고 재학 당시 배용제 시인과 처음 만났다고 밝히며 그의 성폭행을 폭로했다. 이후 '고발자5'는 같은 학교에 재직했던 소설가 J 씨의 성폭력을 폭로한 '생존자C', 배용제의 금품 갈취를 알린 'HateB' 등의 계정과 연대했다. 이를 통해 배용제가 일상적으로 행해 온 성희롱과 성추행, 몰래카메라 촬영,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금품 갈취 등이 추가로 폭로됐다.

배씨는 고양예고 문창과 문학강사로 재직(2008년~2013년)하며 미성년 학생들에게 “네가 문학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 그렇다. 탈선을 해야 한다”, “내가 네 첫 남자가 돼주겠다”, “가슴 모양이 예쁠 것 같다”, “내가 문단에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아느냐. 내 말 하나면 누구 하나 매장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을 행사했다.

이후 배용제 씨는 10월 26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렸다.
“시를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성적 언어로 희롱을 저지르고, 수많은 스킨십으로 추행을 저질렀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그 아이들이 대학 진학 후 저를 찾아온 후까지 이어졌다 (…) 몇몇의 아이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이 어이없는 일을 저는 합의했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위계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자각이나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 몰염치한 짓을 저질렀다”

배용제씨의 사과문에 피해자들은 반발했다.
“B시인의 사과문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합의된 행위’였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 그는 문학가를 꿈꾸는 미성년자에게 성을 ‘문학창작을 위한 한 과정으로 희생’할 것과 자신의 범죄행위를 ‘미학주의적 실천의 일환’으로 용인할 것을, ‘문학적 권위’와 ‘문단 영향력’, 무엇보다도 ‘교육’의 이름으로 강요했다”

지난 11일,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107명을 주축으로 ‘탈선’이 탄생됐다. ‘탈선’은 배용제가 자신의 성폭력을 정당화하며 “탈선을 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에서 인용한 이름이다. 이날 '탈선'은 배용제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1일자 미디어고양 [문단 내 성폭력 고발자에 대한 지지선언] 참조)

“문학이라는 이름, 그것은 오로지 가해 지목인이 고발자와 피해자들을 성적 착취하는 수단이자 명목으로 다루어졌다. 누가 문학을 자기 목소리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가해 지목인의 목소리는 증폭되었고, 우리의 목소리는 침잠했다. 이에 우리는 분노한다.”

“학생들이 제자, 습작생, 여성으로서 고발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와 가해 지목인의 긴 재직 기간을 고려하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며 그 피해를 특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가해 지목인에 대한 법적 처벌 역시 고발자와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하는 데 뜻을 모으고, 가해 지목인을 규탄하는 것은 물론, 악행을 초래하고 묵과한 사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연대 ‘탈선’은 고양예술고등학교, 문학과지성사, 시인 협회와 소설가 협회, 한국작가회의에 요구안을 보냈다. (11일 미디어고양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요구안] 기사 참조)

21일 현재, ‘탈선’의 오빛나리 대표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그들의 요구안에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반응을 이끌어내야 할지 착잡하다. 대답을 안 한다고 사실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계속 항의해 나갈 것이다.”고 ‘탈선’의 오빛나리 대표는 말했다.

‘탈선’의 오빛나리 대표

지난 14일, ‘탈선’은 고양예술고등학교에 팩스로 요구안을 보냈다. 
1.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학과 문학 강사 성폭력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본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
2. 교내 성폭력실태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교사 및 강사에 의한 성폭력실태조사를 실시하라.
3. 교내 성폭력상담실을 설치하라.
4. 일반교사 및 전문교과 실기강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라.
5. 실기 강사 채용 기준을 공개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밝혀라. 범죄 혐의 유무를 기준에 포함하여 채용기준을 강화하라. 채용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져라.
6. 실기 강사 평가 항목을 보완하고, 익명성이 보장된 설문조사를 실시해, 폐쇄적인 실기 학습 환경을 개선하라.

고양예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지난 주 고양예고를 방문한 본 기자는 학교행사 중이라는 이유로 고양예고 교장을 만날 수 없었다. 전화 인터뷰마저도 학교 행정실을 통해 정식으로 취재 요청하라는 말만 들었다.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다. 고양예고는 ‘탈선’의 요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재학생들의 불안과 졸업생들의 분노를 위로해야 한다.

고양예고 교정

일부 문제 교사로 인하여 학교 명예가 실추되어서는 물론 안 된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면 학교 운영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특히 배용제 씨에게 범행의 기회를 만들어 준 폐쇄적인 실기 학습 환경에 대해서는 시급히 따져야 한다. 배 씨가 장기간 상습적인 성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의 개인 창작실에서 별도의 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라면 위계나 위력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고발이 없어도) 인지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고등학생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경우는 피해자가 정식으로 고소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21일, 일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현재 고양예고 재학생이면 부모 면담을 한 후 바로 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피해자들 모두 고양예고를 졸업한 성인들이고, 범행 장소도 불분명하다.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인적상황을 알려주고 고소, 고발한다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고소를 해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을 수 차례 반복, 증언하면서 상처를 받는다. 이 때문에 고소를 취하하거나 고소를 꺼리는 피해자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 사건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SNS상에는 ‘#문단_내_성폭력’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성폭력이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와 ‘문단 내에서 등단하지 못하거나, 앞길이 막힐지 모른다는 협박과 불안’ 때문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강사와 학생’이거나 ‘스승과 문하생’ 혹은 ‘작가와 팬’이었다. 피해자들 증언의 공통점은 모두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다.

고등학교라는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미성년자들에 대한 위계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그 심각성이 더 크다. 학교 명예를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고양예고는 졸업생 모임인 ‘탈선’의 요구안에 대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고양예고의 발전을 바라는 고양시민, 교직원, 재학생, 졸업생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고양예고 교정에 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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