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이름으로

“네가 문학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 그렇다. 탈선을 해야 한다.”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이하 고양예고 문창과)에서 강사로 재직했던 B시인이 자신의 성폭행을 정당화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 트위터 계정 ‘고발자5’는 해당 문장을 메인 트윗에 게시하여 B시인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예고 재학 당시 그리고 시 스터디에서 B시인과 만났다고 밝힌 ‘고발자5’는 이후 생존자C·HateB 등의 계정과 연대하여 그가 일상적으로 행해온 성희롱과 성추행 및 몰래카메라 촬영,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금품 갈취 등을 추가로 고발했다. 이와 같은 고발이 이어지며 같은 곳에서 강사로 재직했던 C소설가의 미성년자 성폭행 및 성추행과 성희롱 또한 제보되었다.

B시인은 고발자에게 ‘나 때문에 그렇게 상처가 많았느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사과하마.’ 라는 문자를 보냈고, ‘자숙하고 절필하겠다’는 요지의 글로 자신의 범죄를 일단락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제3자에게 고발자의 개인 정보를 발설했으며, 최근에는 고발자들의 목소리를 전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것은 비단 낮은 윤리의식을 가진 개인에게서만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가해 지목인이 남성우월주의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성 문인이자 스승이라는 위계권력 △피해 호소와 2차 피해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는 학교 △‘문학’과 ‘예술’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저지른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발자의 용기에 지지를 보낸다. 학생들이 제자, 습작생, 여성으로서 고발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와 가해 지목인의 긴 재직 기간을 고려하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발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사회가 주입한 잣대로 자기검열을 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이에,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데에 힘을 실을 것이다. 우리는 가해 지목인에 대한 법적 처벌 역시 고발자와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하는 데 뜻을 모으고, 가해 지목인을 규탄하는 것은 물론, 악행을 초래하고 묵과한 사회에 책임을 묻겠다.

하나. 문단은 어디에 숨었나. 가해 지목인 B시인은 “내가 문단에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아느냐. 내 말 하나면 누구 하나 매장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라고 말하며 고발자 및 피해자를 위협했다. 그 ‘문단’은 어디에서 어떻게 실존하는 것인가? 그 두 글자 단어가 피해자에게 실재하는 위협이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이에 방조하고 있었나? 고발자들의 목소리가 퍼져 나갈 때, ‘개인적인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한 문단과 문인협회는 ‘침묵할 수 있는 권력’을 대체 어디서 가져왔나.

하나. 학교는 어디에 숨었나. 수업 도중 가해 지목인 B시인의 성추행과 성희롱에 반발한 학생들은 레슨실에서 추방되거나 합평에서 제외됐다. 이를 묵인하고 방치한 채 ‘강사’의 위치를 내어준 ‘학교’는 어디에 있었나. 가해 지목인 B시인이 “내 제자. 어떤 일이 있어도 너는 나를 믿어야 하고, 내가 네 가슴을 만져도 너는 날 믿어야 한다”며 ‘강사’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성추행을 일삼을 때, 그 권력을 쥐여준 학교는 어디에 있었나.

가해 지목인 B시인이 “내가 선생님인데 사기를 치겠느냐”라며 ‘강사’로서의 신뢰감을 내세워 금품을 갈취할 수 있도록 일조한 학교는 어디에 있었나. 가해 지목인 C소설가는 자신을 가족처럼 생각하라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학생에게 친밀감을 형성해 성 착취로 이용했다. 이때 학생이 건강한 도움을 받고 의지할만한 공적 자원을 만들어주지 않은 고양예술고등학교는 책임을 회피한 채 이대로 침묵하려 하는가. 교정에는 여전히 학생들의 수많은 입상 실적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학교는 실적을 앞세워 학생들을 방치한 것을 은폐하고 뒤로 숨으려 하는가.

하나. 개인은 어디에 숨었나. 가해 지목인 B시인은 “남성의 능력이 선천적으로 더 우월하다. 문단에 진출한 작가들을 봐라.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느냐”, “너는 살이 쪘다. 이래서는 어떤 남자도 너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예쁠 것 같다. 만져봐도 되냐” 등의 발언을 일삼았다. 가해 지목인은 고발자와 피해자에게 남성우월주의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사회 통념과 구조를 이용해 주체적인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서의 여성성을 강요하고, 성적으로 착취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발자와 피해자들의 꿈을 축소하고 발언권을 빼앗을 때,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온 개인들은 여성이 억압되는 동안 어떤 얼굴로 침묵해 왔는가.

하나.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 “시를 쓰려면 사회적 금기를 넘어야 한다”며 가해 지목인 B시인이 성폭행을 일탈로 은폐시키는 데 공헌한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고발자와 피해자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 양상에도 “혹시 내가 ‘문학적’이지 않은 건 아닌가”, “미학적 관계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 아닐까”하는, 가해 지목인으로부터 주입 받은 ‘문학적인’ 자기 검열을 해야 했다. 고발자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앗아간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가해 지목인이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엮어 시집으로 출간할 때, 가해 지목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문학이라는 이름, 그것은 오로지 가해 지목인이 고발자와 피해자들을 성적 착취하는 수단이자 명목으로 다루어졌다. 누가 문학을 자기 목소리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가해 지목인의 목소리는 증폭되었고, 우리의 목소리는 침잠했다. 이에 우리는 분노한다. 왜 우리는 문학성을 정의 받아야하는가.

가해 지목인에게 말한다. 틀을 깨야 하는 것은 당신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 또한 당신이다. 당신이 가진 상상력은 스스로의 기득권에 의존한, 뻔하고 비루한 성질에 불과하다. 스스로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변명하고 스스로의 죄를 은폐시키기 위하여 불러낸 이름일뿐이다. 아무도 자숙과 절필을 당신의 형벌로 정의하지도, 죗값으로 합의하지도 않았다. 당신의 사과문은 자성 없고 비겁하다. 그것으로 당신의 죄를 가리기에 당신의 상상력은 그 크기가 협소하고 모양이 추악하다.

이에,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문단, 학교, 선생은 아니지만, 문학은 될 수 있다. B시인, C소설가. 우리는 문학이 되어서 네 이름을 갉아먹고 성장할 것이고, 네가 눈 돌리는 모든 곳에 너보다 먼저 와 있을 것이며, 네가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 문학이 된 우리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학이자 산증인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증명할 것이다. 우리의 연대와 지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진흙탕에서도, 아스팔트에서도 기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시작했다.

2016. 11. 11.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

강다솜, 강보민, 강선경, 강성연, 강지수, 곽시윤, 권태현, 김가현, 김경환, 김도연, 김려홍, 김민경, 김보경, 김소정, 김솔희, 김신영, 김예린, 김윤경, 김은선, 김재연, 김지민A, 김지민B, 김지원, 김혜림, 김혜민, 김혜영, 김혜원, 김화연, 김희정, 나하늘, 노기민, 류연웅, 문지은, 문태영, 박서형, 박예솜, 박예슬, 박예인, 박완주, 박은선, 박정윤, 박지원, 박진희, 박채연, 박하연, 박현민, 박혜원, 배선화, 배시은, 서재진, 송기나, 송은지, 신새로미, 오빛나리, 오지수, 유가희, 유민희, 유수병, 유승연, 유은경, 윤혜령, 이규진, 이나현, 이동민, 이동하, 이상우, 이선빈, 이설희, 이소연, 이슬기, 이신후, 이예린, 이유진, 이은선, 이조은, 이지민, 이하영, 이현아, 이현진, 이효선, 이희진, 임주현, 임혜원, 장성국, 장성호, 장지은, 장하영, 전재현, 정민재, 정수민, 정수현, 정안진, 정유진A, 정유진B, 정지은, 조으리, 조은별, 조현경, 지동준, 진솔, 채윤희, 최예나, 최지수, 허승화, 황채린 외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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