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지언), 말을 안다는 것
知言(지언), 말을 안다는 것
  • 박종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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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고양일보] 당나라 태종은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등용하기 위해 과거제도를 시행했다. 과거는 공무원 시험의 필기시험에 해당한다. 태종은 과거에 급제했다고 바로 임용하지 않고 인물됨을 파악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등용 여부를 판단했다. 면접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용모, 언변, 글씨 및 판단력을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용모(身)란 풍채와 얼굴, 태도 등이다. 언(言) 이란 말을 겸손하고 조리 있게 잘하는지와 얼마나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서(書)는 문장을 지은 필적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과 인물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판단력(判)이란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합리적이며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자 말씀인 논어 역시 마지막 구절은 ‘말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不知言 無以知人, 부지언 무이지인)’로 끝난다. 사람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공자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말을 안다(知言)’라는 것은 말을 듣고 상대방의 인간성과 능력 및 배움의 정도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맹자 역시 말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제자 공손추가 “어찌해야 ‘말을 안다 (知言)’고 할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편벽된 말(詖辭, 피사)을 들으면 그가 감추는 것을 알 수 있고, 음탕한 말(淫辭, 음사)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부정한 말(邪辭, 사사)을 들으면 그 사람이 도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고, 둘러대는 말(遁辭, 둔사)을 들으면 그 사람의 논리가 얼마나 궁한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공자와 맹자는 말을 아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위정자의 지언(知言) 능력을 강조했다.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인물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말의 홍수 속에서 산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손쉽게 말 할 수 있는 시대다. 주로 정치인을 포함한 공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빛의 속도로 퍼진다. 특히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의 실수는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최근 국민은 국정감사와 청문회 및 정기국회에서 정치인들의 말을 실시간으로 듣는 기회가 많아졌다. 국회의원들이 뱉어내는 수준 이하의 말들을 들으면 어떻게 저런 인물이 국회의원이 됐는지 인성과 능력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 정치인이 과연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길은 너무 간단하다. 당의 공천만 받으면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성과 도덕적 수준은 따져보지도 않고 당선될 수 있는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천을 받기 위해서 목숨 걸고 죽기 살기로 당의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 유독 우리나라에 수준 이하의 국회의원이 많은 이유다. 다행히 대통령 선거와 도지사 선거 등 중요한 선거는 반드시 방송 토론을 하도록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으로 정했다. 그나마 몇 번의 방송을 통해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고 ‘신언서판’ 중에서 서(書)를 제외한 용모와 언변과 판단력 등을 대강이나마 판단하게 된다.

한국 사람은 유별나게 정치에 관심이 많다. 투표권을 가진 국민 각자가 정치평론가다. 방송과 신문은 정치 얘기로 가득하다. 정치가 잘 안 될수록,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실망이 클수록 정치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다. 최근 대한민국의 정치는 실종되어 보이지 않고 정치인의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생각하는 제대로 된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서로 물어뜯기만 하는 정쟁으로 국회는 무용지물이 됐다. 토론과 협의는 없고 자신의 일방적 주장만 난무한다. 정치인의 공허하고 무익한 말은 공해다. 오히려 정치인의 생각 없는 말들이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든다. 과연 이런 정치 집단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자신의 신분을 자랑할 때는 국회의원 각자가 입법기관이라고 말하지만, 당리당략에 따라 모두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려울 때 국민에게 힘을 주는 격려의 말과 감동을 주는 연설을 제대로 하는 정치인을 찾기가 어렵다.

한때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이준석은 개인의 일탈로 벌어진 사태를 반성함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당을 향해 악담을 퍼붓고 조롱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될 패악질을 세 치 혀로 한다. 야당 당 대표가 된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 도지사 시절의 수많은 불법적인 일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도 무리하게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까지 됐다. 국민과 당은 생각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살길만 찾는 후안무치한 일이다. 양대 정당의 전직 대표와 현직 대표가 토해내는 정제되지 않거나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된 독설(毒舌)은 국민 가슴에 독화살처럼 박히고 있다. 2022년도의 세계정세와 경제는 전례 없이 어렵고 예측 불가능하다. 국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총 없이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국에 대한민국의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는 없는데 국민 세금만 축내면서 당리당략만 따지는 영혼 없는 정치인만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당론과 다르더라도 제대로 할 말을 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말로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국회는 정당 간의 정책 경쟁을 하고 국가 이익을 논의하는 위대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말의 경연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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