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다. 식민지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서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유일한 나라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던 ‘백성’에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고학력자가 많고 잘사는 ‘국민’으로 변했다. 잘살아 보겠다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고 일해서 오늘날의 풍요롭고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원조 밀가루로 끼니를 때우던 나라가 원조국으로 변하고, 기술을 구걸해 오던 나라에서 세계에서 7번째로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는 나라가 됐다. 유학도 안 가본 18살 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는 세계를 감동시켰다. 순수 국내파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안된다. 방탄소년단(BTS)이 휴식 기간을 갖겠다는 보도에 전 세계의 ‘아미’들이 슬퍼하고 관련 주가가 폭락했다. 한국 영화배우가 아카데미와 그래미상을 받고, 한국 영화에 세계 팬들이 열광한다. 한국과 한국인은 이렇게 훌륭하고 대단하다.

세계는 경이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 사람만 모르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나라에서 일 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 나라가 됐는데도 행복 지수는 형편없이 낮다. 자긍심을 갖고 떳떳하게 자랑할 만한데도 스스로 비하하고 자신 없어 한다. 얼마 전에는 '한국이 지옥과 비견될 정도로 살기 나쁘고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의미로 ‘헬조선’이라고 자조(自嘲)하는 말이 유행했다. 국민이 이렇게 느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수준 이하의 정치 탓도 크다. 한 나라의 정치와 정치인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라는 부강해지고 국민은 현명해졌는데 정치와 정치인은 갈수록 퇴보하고 존경받는 정치인이 없다. 한국 정치의 수준 낮음은 오래됐다. 500년 이상 된 조선왕조는 무능한 임금과 일신의 영달만 추구한 정치인 때문에 근대국가로 가보지도 못하고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겼다. 100여 년 전 나라 팔아먹은 무능한 정치인과 지금 정치인의 수준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무능한 정치인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듯이, 지금은 정치인 때문에 국민이 고생한다.

전 세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중세의 페스트만큼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2년 이상 고생하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물가가 폭등했다. 세계적인 재난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국민은 위기라고 느끼고 불안해하는데 정치인들만은 오불관언이다. 새로 정권 잡은 여당이나, 총체적 실정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야당이나 똑같이 국민의 염장을 지르고 있다. 바다에서 실종된 국민이 월북인지 아닌지를 놓고 여야가 진영 논리로 싸우면서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유족이 원하는 진실을 알기 위해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을 합의하지 못하고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국민은 먹고사는 절박한 문제로 하루하루가 심각한데 정치인들은 정쟁으로 하루해가 짧다. 국민 세금으로 수억 원의 돈을 쓰는 국회의원이 국회조차 열지 않고 있다. 직무유기고 업무 태만이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은 노동자보다 국회의원에게 적용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은 지도자와 정치인에 의해 좌우된다. 근대 왕조 국가는 물론이고 대통령제하에서도 지도자와 정치인에 의해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힘없고 약한 나라는 항상 패자의 역사를 썼다. 불행하게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19세기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하고 유럽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근대국가의 길을 갔다. 같은 시기의 조선은 대원군이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외치며 쇄국정책으로 나라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1852년생 동갑내기로 비슷한 시기에 군주가 된 고종이 통치한 조선과 메이지가 통치한 일본은 전혀 다른 길을 갔다. 개혁정책을 통해 일본은 빠르게 근대국가로 발전해 갔지만,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고 소중화(小中華)를 외치며 세계정세에 무지몽매했던 조선은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백성은 이유도 모르고 남의 나라 종으로 살아야 했고, 독립도 남의 힘으로 됐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국민은 나라를 걱정하고 장래를 불안하게 생각한다. 3대 세습왕조 북한은 여전히 주적이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미국과 일본은 우호적이지만 국제외교는 언제든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냉정한 전쟁터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언제든지 국가는 패자가 되고 국민만 불쌍해진다.

100여 년 전 강대국은 지금도 강대국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기 역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국력이 10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전 세계 웬만한 나라에 강인하고 근면하고 똑똑한 한국인이 살지 않는 나라가 없다. 국민과 기업은 세계무대로 달려 나가 성공하고 인정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최근의 국제정세는 국가 이기주의 색채가 더욱 강해졌음을 보여준다. 세계 각국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나라끼리 뭉치고 있다. 세계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여야는 국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를 걱정하는 정치인은 보이질 않는다. 여야는 사사건건 서로 헐뜯고, 방송은 하루 왼 종일 정치권 얘기만 한다. 유독 한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게 아닌데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국민 수준은 높아지는데 반비례해 정치인의 수준과 자질이 떨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인이 국민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국민이 국가 안위를 걱정하고 수준 낮은 정치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300명의 국회의원 없이 국가를 운영하는 건 어떨까 싶다. 협치 없이 정쟁만 일삼는 여야 국회의원을 볼 때마다 “대통령이 전적인 책임을 지고 5년 동안 국가를 운영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