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니스트
박종호 칼럼니스트

중국인들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를 세우고 태평성대 시대인 정관의치(貞觀之治)를 이룬 당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을 중국 역사상 역대 최고의 황제로 평가한다. 이세민에게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수시로 왕에게 직간(直諫)하는 위징(魏徵)이라는 명재상이 있었다. 위징은 원래 이세민의 친형이지만 정적이었던 이건성의 부하였다. 이세민은 적의 밑에서 일했던 장수라 할지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어떻게 해서든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한 아무리 신하들이 독설을 퍼부어도 역정을 내지 않고 그 간언을 잘 받아들여 언제나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었다. 중국 전국(戰國)시대의 맹자는 패도(霸道)정치가 득세하던 시절에 위나라와 제나라의 왕에게 인의(仁義)의 왕도정치를 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쓴소리했지만, 맹자의 고언은 그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충고라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맹자는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왕에게 아첨 대신 고언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맹자는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맹자의 인의정치와 왕에게 고언을 하는 참된 용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의 현대 정치에 적용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겸청(兼聽)이 중요하다. 겸청이란 반대의견까지도 두루두루 듣는 일이다. 명군(明君)은 아첨하는 신하의 말뿐 아니라 듣기 불편한 말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왕이다. 절대 왕권 시대에 왕에게 직언하는 것은 목숨 걸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자 성리학의 뿌리가 깊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말하기는 쉽지 않다. 사기업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조차 상사 앞에서 소신에 찬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사기업과 달리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조차 좌천이나 인사 불이익이 두려워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는 공무원이 드물다. 이런 풍토에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뉴스에 국무회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장관들이 국가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토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읽어주는 지시 사항을 노트에 받아적는 것은 어느 정권에서건 똑같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는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뿌리 깊다. 가장 작은 세포인 가정에서 가장 큰 조직인 국가까지 위에서 지시하면 아래는 무조건 따르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과거의 상명하복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가정에서 권위가 떨어진 아버지의 발언권이 예전 같지 않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업무 외의 지시는 따르지 않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심지어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조차 과거와 같이 엄격한 상명하복 문화가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는 아직도 구시대의 권위적인 상명하복 문화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지자체장의 심기 맞추기는 더 심해진 것 같다. 시장이 바뀌면 주요 보직 전체가 싹 바뀐다. 지자체에서조차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소신껏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니 중앙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군명직신(君明直臣)이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현명하면 직언하는 신하가 있다는 말이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을 위해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게 공무원이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에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낼 수 있는 공복이 필요한 때다.

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다중(多重)위기를 겪고 있다. 아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가 처음으로 겪는 일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쓰고, 나라 문을 닫아걸고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3년여의 코로나 펜데믹이 잠잠해지자 느닷없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의 핵 위협에 떨게 됐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막무가내로 강 달러 정책을 밀어붙여서 전 세계의 이자율과 물가는 치솟고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공포가 숨을 조여 온다.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던 유럽 대륙은 이번 겨울 추위를 어떻게 넘길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악재로 세계 경제는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정치인은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민생과 국익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수준 이하의 여·야 정치인의 싸움은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을 더욱 힘들고 짜증 나게 한다. 국정 경험이 없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행보는 불안하고, 온갖 범죄 혐의를 받는 야당 대표는 언제 구속될지 걱정이다. 이런 난세일수록 대통령과 야당 대표에게 쓴소리로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랫사람이 상사에게 쓴소리하기는 힘들고 어렵다. 더욱이 윗사람이 쓴소리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쓴소리를 받아들인 왕은 명군(明君)으로 후세에 이름을 날리고, 부하의 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한 왕은 나라를 망친 암군(暗君)으로 남았다.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현명한 지도자는 쓴소리할 줄 아는 유능한 인물을 알아보고 발탁해서 쓰는 사람이다. 지인선용(知人善用, 사람을 알아보고 잘 씀)을 잘한 유방은 용맹한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차지했다. 윤석열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난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길 원하는 국민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준비가 안 된 대통령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조직밖에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국정을 세세하게 자세히 다 알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가 경영에 필요한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전의 대통령들처럼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챙기는 소심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큰 그림을 그리고 각부 장관이 책임지고 나라 경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돼서 4개월이 지났다. 검사 냄새가 완전히 빠지기엔 이른 시간이다. 하루빨리 대통령다운 언행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향후 5년간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시기다. 대통령은 귀를 크게 열어 쓴소리를 듣는 현명한 지도자가 돼야 한다. 피아 구분 없이 겸청을 해서 고언을 듣고 국가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으면 훌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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