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로 비롯된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47일. 국회는 9일 오후 3시 본회의를 열어 박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 표결했다. 이날 탄핵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해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반대와 기권은 각각 56표와 2표이며 무효는 7표다.

3차 대국민 담화 중 사과하는 박근혜 대통령

찬성 ‘234표’의 정치적 의미는 크다. ‘촛불민심’으로 상징되는 탄핵 여론이 본회의 표결에 상당부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탄핵 표결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는 가장 최근의 탄핵 민심을 나타낼 수 있다. 갤럽이 지난 6~8일 전국의 성인남녀 1천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1%에 달해 반대(14%)를 압도했다.

탄핵 찬성비율 81%를 국회 의석수(300명 재적)에 대입하면 243명인데, 찬성 234표로 가결되었으니 ‘대의민주주의’가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회의원들의 고질적인 폐해인 줄 세우기가 촛불집회로 드러난 국민들의 민심에 굴복한 것이다.

오후 3시 2분,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로 탄핵안 제안 설명을 한 이후 정세균 국회의장은 곧바로 투표를 실시했다. 12년 전인 2004년, 3월 12일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끌려나가며 눈물로 항의하는 가운데 치러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 당시와는 달리 ‘질서있는 표결’이었다.

2004년 3월 12일, 의원들 사이에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등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다.

가장 먼저 투표에 참여한 의원은 왼편에 위치한 투표소에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오른편 투표소에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박 원내대표에 이어 심상정 정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의 순이었고, 추 대표를 이어선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 등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황교안 총리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시선집중’과 전화인터뷰에서 박 대통령 탄핵 가결 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황 총리를 두고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른, 똑같은 책임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연루된 인물들의 면면은 12년 전인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표결 당시와 '뒤바뀐 운명'이다. 당시 탄핵을 끌어가던 쪽은 이번에 탄핵을 막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반대로 탄핵을 온몸으로 막아내려던 쪽은 이번에 탄핵의 주역이 되어 있다.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다. 박 대통령은 당시 탄핵을 주도하는 편에 섰고 이는 대선주자로서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 대통령은 본회의장 기표소를 완전히 가리지 않고 투표해 탄핵 반대파 의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가 하면, 노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때 서청원 의원과 나란히 의원석에 앉아 미소를 짓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2004년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은 탄핵법정의 ‘검사’인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회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불려나와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연루 책임을 추궁당하는 신세가 됐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 역할을 맡아 김 전 실장을 상대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탄핵을 적극 독려하는 입장이었다.

청와대에 탄핵소추의결서가 청와대로 전달되는 즉시 박 대통령 직무는 정지된다. 또한, 이 시점부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대통령이 헌법상 갖는 권한은 국군통수권, 조약체결 비준권, 사면·감형·복권 권한, 법률안 거부권, 국민투표 부의권, 헌법개정안 발의·공포권, 법률개정안 공포권, 예산안 제출권, 외교사절접수권, 행정입법권, 공무원임면권, 헌법기관의 임명권 등이다. 이후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주재, 공무원 임명, 부처 보고 청취 및 지시, 정책현장 점검 등 일상적으로 해오던 국정수행을 못 하게 된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피의자가 된 박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거취를 헌재의 결정에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대통령 신분까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그대로이고, 청와대 관저 생활도 유지된다. 경호와 의전 등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변동이 없다. 월급도 종전대로 받는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직무 정지된 이후 관저에서 생활하면서 공식적인 일정을 하지 않았다. 신문과 책을 보거나 기자단과 산행하는 등 비공식적 일정만 가졌으며 정치적 언행도 자제하고 탄핵심판에 대비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박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하게 관저 생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문과 책 대신에 TV 드라마와 머리 손질, 혹은 영양주사를 맞으며 말이다.

기권 2명은 우주의 기운(?)으로 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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