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목사
조규남 목사

아마 목사들만큼 장례식장에 가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나 역시도 목회하는 동안 장례식장에 많이 갔었습니다. 목사들은 한 날에 낮에는 주례자로 결혼식장에 그리고 저녁에는 집례자로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더 선호하였습니다. 결혼하는 이들은 이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숱한 세상의 고난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주 안에서 죽음의 나라로 들어간 이들에겐 더 이상의 괴롬과 슬픔이 없이 안식의 나라로 들어가기 때문에 뭔가 묘한 안도감이 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사를 내세워 예배를 통해 위로와 소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유족들이나 망자 그 자신에게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같은 노회 소속인 J목사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고인과는 같은 노회 소속일 뿐 서로가 얼굴만 알지 개인적으로 말 한 번 섞지 않은 사이이기에 솔직히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주위의 분위기에 휩싸여 우물쭈물 따라가게 됐습니다. 고인은 나이 70의 정년 은퇴를 1년 앞두고 있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평소 왕성한 활동력으로 많은 장례식에 참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천국의 소망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망자의 입장에서 세상의 모든 연줄을 끊고 조용히 관 속에 누워 있을 뿐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에게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라 믿는 자나 믿음이 없는 자 그 누구이든간에 우리 모두 겪게 될 일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지 않은 묘한 감정이 내 안에 일어났는데 그것은 내가 지금 '목사의 죽음' 앞에 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전에도 여러 목사들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딱히 목사의 죽음이기보다 한 영혼의 죽음으로 평범한 생각을 하였지만,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사람 이전에 목사라는 사회적 신분이 크게 어필되어 내게 다가온 까닭입니다. 왜 이런 색다른 느낌이 있는 것인지 혼자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인이 목사라는 것보다 나는 나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에 더욱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였습니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목회 은퇴 후에 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분명하게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생각은 J목사가 나름 성공적인 목회를 이룬 목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 가운데 오늘에 이르렀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으나 J목사처럼 열정적인 목사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비교의식의 자책감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을 향해 엉뚱하게 싱긋 미소를 보냅니다. 기독교 이단들이나 사이비들이 교계를 욕되게 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교회 현실에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나와 주님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묵언의 신호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내가 목사 된 이후 한 번도 '목사됨'을 부인하거나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어떤 목사들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금 자신의 신분이 목사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목사된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될 때엔 얼마나 현실의 삶이 어려우면 저런 말을 할까 하고 긍휼의 마음이 일다가도 가슴이 먹먹해져 막상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할지 몰라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신앙고백처럼 힘을 주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은퇴한 지금에까지 내가 가장 감사해 하는 것은 은퇴 후에도 목사라는 신분의 호칭으로 그대로 불려지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나를 설레는 기쁨으로 내 지나온 목사로서의 삶에 대한 목사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 지나온 목회가 어떤 열매를 맺였든 나는 죽어도 목사로서 죽을 테니까요."

언젠가 멀지 않은 날에 나도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도 장례식장의 내 영정 사진 밑에는 '000목사'라는 명패가 쓰여져 있을 것입니다. 세상 변화가 어떠하든 나는 죽어도 목사로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의 명패 앞에 서게 되는 모든 문상객들은 모두 '목사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이 어떠했든 간에 목사로서 죽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나를 기억해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믿음으로 부질없는 허상에 집착하여 온전히 주께 맡기지 못했던 내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동안 곱게 만들어 두었던 종이배를 물에 띄워 보냅니다.

친구여, 잘 가시게나! 좋은 여행길이 되길 바라네. Adios amigo!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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