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동억

우리는 가끔 지하철 안에서 '6.25참전유공자'가 적혀 있는 모자를 쓰거나 알 수 없는 훈장을 옷에 달고 자리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그 유공자 할아버지를 어떻게 볼까? 필자의 경우 보훈공무원으로서의 직업병인지 몰라도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난다. 우선 그 할아버지의 통장에는 매달 15일에 '국가보훈처'가 보낸 참전명예수당 200,000원이 찍힐 것이다. 또 보훈병원이나 보훈위탁병원에 가면 의료비 감면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인이 되었을 경우 국립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은 그들은 어떻게 볼까? 내가 태어나지 않은 먼 옛날에 6·25전쟁에 참전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그러한 정치적 이념이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은 그들을 보수단체집회에 참석하는 노인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그들은 왜 그러한 모자와 훈장을 쓰거나 달고 다니는 걸까? 그들이 그러한 것을 쓰거나 달고 다니는 것은 나를 ‘알아봐 달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사람들한테 자기를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처럼 보이기를 원했을까? 국가에서 미약하나마 수당과 보훈수혜를 받고, 보수단체집회에 참석하는 노인들로 보이기를 원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멋진 제복을 입고 전쟁 중에 전사한 동료의 무덤 앞에서 경건하게 경례하는 미군 참전용사 모습처럼 보이기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그들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고, 그냥 기억에서 희미해져가는 전쟁에 참전한 퇴역 군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을 돌려 북한의 현실을 보자. 인간이 과연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시각을 떠나 평범한 인간의 보편적인 시각으로 볼 때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한 사람의 사고에 의해 똑같은 생각과 행위를 강요받는 사회, 그것은 조지 오웰의 '1984'의 현실판과 다름없다.

이러한 북한 체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준 그들을 일부 집단은 이념적 잣대를 통해 '수구', '보수', '구시대적'이라고 규정지어 매도하고 배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금의 시대 문제조차 그들의 탓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러나 그들을 이념적 잣대로 규정짓지 말자. 그들은 자신의 의지에 관계없이 비참한 전쟁터에서 땅 한 뼘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다. 이념으로 규정짓기 전에 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자유와 평온함을 안겨준 사람들이다. 이념적 잣대로 그들을 규정짓는 것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을 넘어, 물에 빠진 것은 너 때문이라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이라 그런지 올해 겨울은 더욱 춥게 느껴진다. 그들은 더욱 추울 것이다. 그들에 대한 보훈수혜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공헌한 것 비해서는 상당히 미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더 나은 물질적인 수혜만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공헌과 희생을 기리고 존경하고 계승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보훈문화를 만들어 줄 것을 더 원할지도 모른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전해지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들을 마주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마음속에서라도 외쳐보자. 그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세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가슴속에 새겨보자. 추운 겨울, 눈이 눈사람이 되듯이 가슴 속에 새긴 그 하나하나의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 된다면 그들은 따뜻한 겨울과 훈훈한 보훈을 느끼면서 마음 편히 이 시대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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