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푸젠성(복건성)에 속해 있던 대만은 1895년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시모노세키조약(하관조약)으로 일본 지배를 받게 된다. 대만은 50여 년 간 일본 지배를 받아오다 1945년 일본의 제2차 대전 패전으로 중화민국으로 반환되었다.

대만(타이완)과 중국 본토. 대만은 중국 본토와 160여 ㎞ 거리이다.

이후 1949년 12월,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정부는 마오쩌뚱의 중화인민공화국(과거 중공)에 패하여 대만으로 후퇴한다. 이로써 중화민국의 실효 통치 지역을 대만 지역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1945년 반환결정은 곧 자국에게 소급된다며 대만을 23번째 성(省)으로 규정하고 대만에 대한 일체의 영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다. 

지금의 대만(타이완)이 존재하게 된 가장 큰 인물이 바로 장개석이다. 오늘(9월 10일)은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을 방문하였다. 중정기념당은 대만 초대 총통인 장개석을 기념해 1980년에 건설하였다. 

흔히 불리는 장개석의 '개석(介石)'는 바로 그의 자이며 '중정(中正)'은 그의 본명이다. 그는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중화민국 초대 총통인 국가원수를 지냈고, 1950년 3월 1일부터 1975년 4월 4일까지 초대~5대 대만(타이완) 총통을 역임했다. 

중정기념관 정문으로는 서거 당시 나이인 89세를 기리는 89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중정기념당 전경. 1975년 장개석이 사망 후 1976년 10월 31일 기공식을, 1980년 4월 5일 일반에 공개하였다.

명나라식의 아치형 정문에서 보면 중앙이 중정기념당이고, 좌우에 커다란 기와집 모양으로 국립 희극원과 국립 음악청이 자리해 있다.

아치형 문에는 현재 자유광장(自由廣場)으로 되어 있으나, 본래 건립 당시에는 大中至正(대중지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기차 안에 있는 쑨원(우측)과 장개석
장개석 총통 시절 집무실 모습. 장개석 총통 앞 의자는 그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의 것이다.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는 장개석이 아니라 그의 부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송미령(宋美齡, 쑹메이링)은 장개석의 부인이자 중국혁명의 아버지인 쑨원의 처제로 ‘권력을 사랑한 여인’이었다. 처녀 송미령이 기혼자인 장개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장개석보다 10살 연하였다. 송미령은 장개석에게 부인과 미혼할 것, 기독교로 개종할 것, 정치에 자신을 참여시킬 것 등을 조건으로 1927년 장개석과 결혼하였다.

송 여사는 ‘신생활운동’을 시작하며 중국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미국 명문 웨슬리 대학 졸업과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그녀는 중국인 최초로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였으며, 카이로 회담에서 남편 통역으로 활약하였다. 그녀는 격동의 20세기 중국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중국 정치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3세기를 모두 산 그녀는 1897년에 태어나 2003년, 106세에 사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27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 (좌로부터)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 총통,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 그리고 송미령 여사. 국내의 일반적인 사진에서는 송 여사를 볼 수 없다. 이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다음은 야류(野柳, 예류) 해양 국립공원이다. 야류 해양 국립공원은 타이베이로부터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북부 해안의 서쪽에 있다.  야류는 야생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여기에 있는 바위는 석회질로 수천만 년 전부터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에 의해 독특한 모양의 바위로 생성된 곳이다.

야류 해양 국립공원은 아주 가느다란 형태의 공원이다. <사진 = 타이완 광관청>

총 3개 구역으로 제 1구역은 버섯바위가 밀집되어있어 버섯바위의 생장과정을 감상 할 수 있으며, 제 2구역은 야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여왕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사진을 찍는다. 앞으로 수십 년 지나면 자연적으로 목이 부러질 우려가 있다고 한다. 제 3구역은 기암괴석과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있다. 

야류의 기암석은 세계 지질학상에서 중요한 해양 생태계 자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제 1구역은 버섯바위가 밀집되어 있다.
여왕바위. 야류 해양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위이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이 늘 대기하고 있다. <사진 = 타이완 광관청>
용머리 바위이다.

다음은 지우펀으로 향했다. 지우펀은 아홉 가구밖에 없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시장과 너무 먼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각자 물건을 구입하기 너무 번거로웠다. 한 집씩 돌아가면서 아홉 가구의 물건을 공동 구입. 아홉 개로 나누었다고 해서 ‘구분(九份)’이라고 불렸다.

청나라 시대에 금광으로 유명해진 후, 1920~30년대인 일제 때 채굴 산업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금광 채굴이 중단되면서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유명해지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언덕에 위치한 이곳은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기자기하고 그림처럼 아름답다. 좁고 가파른 골목 양쪽에 많은 상점과 더불어 종종 계단이 있다. 좁은 길을 따라 먹거리, 까페, 각 종 기념품 가게들이 이어져 있고, 각국에서 방문한 사람들로 붐빈다. 대만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우펀 거리 입구.
한국, 일본, 대만 등 각 나라 국기를 내걸어 놓은 음식점이 재미있다.
가면을 특색있게 만드는 가게. 수 많은 가면이 전시되어 있다.
골목에서 빠져나온 곳에 담배를 피우는 관광객과 지나가는 관광객이 섞여 혼잡하다.
지우펀 언덕에서 내려다 본 바다의 전경이다. 산과 어울린 아름다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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