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신화’ 김원길 바이네르 회장이 고양특례시 소노캄 호텔에서 28일 개최된 고양지식인마을 초청 제11차 조찬모임에서 열띤 강연을 하고 있다.
‘구두 신화’ 김원길 바이네르 회장이 고양특례시 소노캄 호텔에서 28일 개최된 고양지식인마을 초청 제11차 조찬모임에서 열띤 강연을 하고 있다.

[고양일보] “성공이 뭐에요? 주머니에 돈 있는게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렸는데, ‘내가 행복하게 살면서 존경받는 인생’이 성공입니다.”

열일곱살 때부터 구두를 만든 ‘구두장이’ 김원길 바이네르 회장(62)은 28일 고양특례시 소노캄 호텔에서 개최된 ‘힘들어도 괜찮아’란 주제의 고양지식인마을 초청 제10차 조찬강연에서 인생 성공을 ‘행복’과 ‘존경’이라는 두 단어로 정의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기업경영에 몰두하면서도 골프와 서핑, 요팅, 스노우보드, 요리 등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취미활동을 왕성하게 해왔는데, ‘존경받는’ 기업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사회 봉사와 후진 양성에도 앞장서왔다.

지난 1997년 일산신도시 정발산동에 처음 입주해 27년째 고양시민이라는 김 회장은 “올해부터 고양시내 고교 1학년 학생들에게 매년 5천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할 계획”이라며 “장학생 선발 기준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리드할 수 있는 리더십 있는 학생”이라고 밝혔다.

“공부는 잘 안해도 됩니다. 나중에 공부 잘하는 애들을 끌어와서 월급 주고 같이 잘 살면 되기 때문에 인생설계를 잘 하고, 소통력과 리더십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충남 당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원길 회장은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충남 서산에서 양화점을 하는 작은 아버지의 제안으로 구두 일을 배우기 시작한 뒤 열여덟 나이에 무작정 상경, 서울 영등포역에 내려 구둣방에 취업했다. 1990년 특별퇴직금으로 받은 200만원으로 구두 부속품공장을 만들어 ‘원길상사’를 창업한 게 기업인으로서의 첫 출발이었다.

“기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지수 1등인 인생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특히 기업 경영에서는 고객의 소리 속에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들어있다는 생각에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요청사항을 해결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땅에서 나는 쌀 한 톨, 배추 한 포기의 소중함을 직접 눈으로 보며 자란 김 회장은 “고향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드는 

것’이고 나의 목표는 ‘우리 회사의 구두가 세계 1등을 하는 것’으로 잡았다”며, “구두를 만들 때 직원들이 남의 것을 가피하면 벌금을 물릴 정도로 남다른 창의성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경쟁자는 나의 자산이었습니다. 기업경영에서 경쟁은 끝이 안보입니다. 끝이 없는 계단을 지금도 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도 끝없는 계단이 놓여 있을 텐데, 즐겁게 올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27년째 즐겁게 사는 고양시민

코로나19로 ‘현금 바닥’ 경험

화폐 속의 인물 ‘꿈’ 유산 남겨

어려웠던 지날 시절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김원길 회장
어려웠던 지날 시절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김원길 회장

김 회장은 스스로 작사한 노래 ‘힘들어도 괜찮아’를 즐겨 부른다.

“힘들어도 괜찮아, 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때로 힘들어 쓰러지면 오뚝이처럼 일어날 거야. 지금은 세찬 눈보라 힘들겠지만 이 순간 지나가고 나면 봄날은 온다.”

김 회장의 베스트셀러 명저 ‘힘들어도 괜찮아’에는 ‘영혼을 담아 최선을 다할 때 명작이 된다’, ‘물에 빠져도 물고기 건져 나와라’, ‘시련은 예고가 없다’, ‘위기는 예고없이 찾아온다’, ‘우리 회사의 금기어는 ‘금기어’’ 등 인생과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 주옥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김원길 회장에게도 코로나19는 크나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여파로 하루에 매출이 0인 매장이 15개, 나머지도 하루 30만~50만원에 불과한 매장이 즐비했어요. 이런 상황이 한두달 지속되고 3개월이 지나니까 회사의 유동성이 바닥 났습니다. 고양시에서 ‘신용도 A+’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돈 빌리기도 어려워 회원권을 모두 정리하고 보험도 해약했습니다. 코로나 위기 속에 5개월이 지나니까 ‘힘들어도 괜찮기는 머가 괜찮아?’ ‘이러다 죽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케리 부룩에서 일할 때 하루 800켤레의 구두를 팔아 회사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는 김 회장은 회사 마당에서 직접 구두를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견디다 못해 회사 마당에서 구두 세일을 시작했는데, 하루 6600켤레를 팔고서는 뒷마당에서 울었습니다. 하루에 50억, 60억씩 팔던 사람이었는데 첫날 1억1천만원의 알토란 같은 현금을 만지고 4일간 회사 마당에서 5억원을 벌고 나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후 정신을 바짝 차려서 회사 매장을 줄이고 적자에서 탈출했습니다. 코로나가 10년은 늙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바이네르가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2년 5월 14일 취임 후 첫 주말에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바이네르 매장에서 구두를 구매한 뒤 바이네르 홈페이지는 이용자가 몰려 마비되는가 하면 다수의 상품이 품절 사태를 빚었었다.

'봉사'와 '행복'을 강조하고 있는 김원길 회장
'봉사'와 '행복'을 강조하고 있는 김원길 회장

김원길 회장은 “스프링쿨러의 저주라는 말이 있는데, 스프링클러 근처 나무가 잘 크지만 태풍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황무지에 있는 나무는 끄떡 없듯이 시련을 겪으면서 더욱 강해지는 법”이라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코로나 위기 이후 갑자기 허리 아파서 고생한 일화도 소개했다.

“일을 안하니까 근육이 줄어들어서 허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세면대를 붙들고 일어섰다 앉았다, 스콧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했습니다. 근육이 복원되면 허리 통증도 사라집니다. 노인들을 춤추게 하는 댄스 경연대회를 열겠다는 생각도 이때 하게 되었습니다.”

김 회장은 아들인 김우현 골프프로에게 네 살 때부터 골프를 가르쳐 이제 서른세살이 되었는데, 저동초교 3학년때 미국에 가서 주니어 챔피언이 되고 국가대표도 되었을 때 ‘겸손’과 ‘꿈’에 대해 강조했다고 한다.

“오드레 햅번은 손이 왜 두개 인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손은 너를 위해 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해 살아 라는 뜻이랍니다. 가치 있는 봉사와 나눔만이 인생에서 의미로 남습니다. 돈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바로 화폐 속의 인물입니다. 500년후 화폐 속의 인물이 될 꿈을 꾸며 살고,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면 네가 이뤄라, 꿈을 유산으로 남겨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김원길 회장은 “먼 훗날 우리 돈 속에서 만나요”라면 강연을 마쳤다.

강연 후 참석한 고양지식인마을 회원들과 한 컷
강연 후 참석한 고양지식인마을 회원들과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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