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7월 22일에 개봉된 영화 <암살>은 불과 한 달도 채 못 되어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하는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 오락영화나 블록버스터도 아닌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영화 <암살>에서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했고 목숨을 바쳤던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심에 있는 조직은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의열단, 신흥무관학교, 상해임시정부이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의 구성원들과 역사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수많은 공을 세우고도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던 ‘김원봉’처럼 독립운동사에는 우리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저자는 그들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만이라도 들춰보고 싶은 심정에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책 속에는 도산 안창호가 “그녀 같은 사람 열 명만 있어도 조선은 독립됐다”고 했던 김마리아,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총알 세례를 퍼부은 후 죽어가면서 “2천만 동포들아. 분투하라. 쉬지 말라”고 외치던 나석주, 1923년 경성을 뒤흔든 10일의 주인공 김상옥, 의병으로 전사한 남편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어머니’로서 독립군 수발에 나섰던 남자현, 광주학생운동의 숨겨진 봉우리, 장재성 등 대중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의 뜨거운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일제식민정부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그들의 활약과 재판정에서조차 당당하게 독립을 외쳤던 그들의 패기에 통쾌함을 느끼지만, 그들이 마주쳐야 했던 잔혹한 운명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분들의 이야기에는 눈물을 흘렸지만, 광복 이후에 그토록 그리던 독립된 조국에서 비참한 최후를 떠난 마친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토록 힘겨운 세월을 보내며 평생 독립운동을 한 보상이 불명예와 죽음뿐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념으로 분단된 두 개의 조국은 그 어느 쪽도 그들을 온전하게 품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그들의 영전에 보낸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죄송합니다”라고. 그 감정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짓게 했다. 영화 <암살>의 천만 관객 동원이 가능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무수히 많은 책들 가운데서 무엇을 ‘올해의 책’으로 꼽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문득 작년이 광복 70주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영화 <암살>을 떠올린 순간, 고민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활동했으나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으니 ‘올해의 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숭고한 정신으로 희생한 과거가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어느 위인이 말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는 현대사의 너무 많은 부분을 잊고 살아왔다. 오늘을 있게 했으나 오늘이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역사일 터. 역사 속 독립운동가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표시하되 더 이상 죄송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과거에 우리를 비추어 현재를 내다보는 거울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바른 길이 아닐까 싶다.

셀리나( 기획출판 에이전시 플랜비 대표)

◇우리 역사를 지켜라1: 독립운동가로 산다는 것 = 김형민 지음. 푸른역사 펴냄. 316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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