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김포공항 근처 모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담임목사로부터 초콜릿을 하나 맛볼 기회가 있었다. 평소 초콜릿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특정 상품, 명품을 알고 가려 먹는 애호가 수준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먹은 초콜릿은 '고디바(GODIVA)'라는 상표였다. 과거에도 먹어 본 적은 있을지 몰라도 기억하면서 먹은 적은 없다. ‘고디바(혹은 고다이버라고도 함)’의 유래에 대해 들으면서 다시금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고디바 초콜릿의 상표. <사진 = 고디바 초콜릿 홈피>

11세기 영국 코벤트리(Coventry)라는 작은 마을을 다스리게 된 영주 '레오프릭'과 아름다운 그의 아내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가 있었다. 영주는 이 작은 마을을 부유한 문화도시로 만들기로 생각하였다.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영주는 수도원은 먼저 지었다. 수도원이 다양한 사회활동의 중심이 되어 성공을 하자, 영주는 계속하여 공공건물을 짓고, 시민들에게 점점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였다. 세금 부담이 늘어 가난한 시민들의 고민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아내 고디바는 가난한 시민들이 과중한 세금으로 겪고 있는 고통을 말하면서 남편인 영주에게 세금을 내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영주는 아내의 거듭된 요청에도 계속하여 거절하였으나 고디바는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긴 요청에 질린 영주는 “정말 시민들을 걱정한다면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말고 말을 타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자거리를 한 바퀴 돌아온다면, 세금을 내리겠소”라고 하였다. 이런 조건을 걸면 다시는 그런 요청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고디바는 남편인 영주의 말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머리카락으로만 몸을 가린 채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았다.

앳된 한 여인(레이디 고디바)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영국 화가인 존 콜리어(Hon John Collier)의 작품. [Lady Godiva]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마을을 돈다는 소문을 들은 시민들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고디바가 마을을 돌 때 누구도 그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였다. 집집마다 대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 영주 아내인 고디바의 용기와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 이에 영주도 결국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고디바는 당시 16세 정도였다고 한다. 고통받는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수치심도 이겨내고 자신의 체면을 희생하였다는 점에서 대단한 용기라 할 수 있다.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은 의무를 진다)'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코벤트리 시에는 '레이디 고디바'를 기념하는 상징물과 행사들이 있다. 제일 유명한 것이 코벤트리 대성당 앞에 있는 '레이디 고디바의 동상(Statue of Lady Godiva, Coventry)'이다. 행사로는 '고디바 행진(Godiva Ride)'을 하고 있다.

한편, 고디바의 행동처럼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파격적인 행동으로 오랜 관행이나 상식을 깨는 정치를 고다이비즘(Godivaism)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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