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현 박사
구자현 박사

[고양일보] 출판계에는 쇼펜하우어 열풍이 대단하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와 플라톤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철학자다. 나 역시 흠모하는 철학자라 몇 자 적어본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은,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 간 일이다. 2004년 늦가을의 14박 15일 유럽 여행이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지금은 어머니가 연로해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꿈꾸기가 어렵다.

가장 뚜렷한 기억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쇼펜하우어가 말년에 살았던 집에 간 것이다. 당시 박물관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많은 활동사진이 있었는데 특히 말년의 쇼펜하우어의 사진은 나를 압도했다. 주름진 얼굴, 부리부리한 눈매, 전반적으로 매우 앙칼진 노인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의 마음에 강한 인상을 주었다.

젊어서부터 공자 맹자 등 동양 철학자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서양 철학자들은 멀게만 느껴졌다. 동양사상도 모르는데 무슨 서양사상까지 관심갖겠는가? 당시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러나 여행 후 쇼펜하우어의 말년의 사진은 서양 철학자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쇼펜하우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많은 학문적 이론보다 삶의 모습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1831년 독일 베를린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이를 피해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그곳에서 방 두 개를 빌려 직장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직 조그마한 삽살개 한 마리와 1860년 9월 21일, 72세의 생을 마칠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29년 동안 한 장소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일관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의 서재에는 칸트의 상반신 초상화와 석가의 청동 불상 하나뿐이었다.

말년의 인간 행동의 모습은 2종류가 있다.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서 자신 삶의 고독함을 멀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점점 주변 사람과의 인연을 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개인의 취향이니 무엇이 옳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나는 둘 중에 어디에 속할까? 현재는 전자의 모습이지만 점차로 후자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후자의 모습이 인생의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 쇼펜하우어는 평생 지나칠 정도로 강박증이 심했다. 쇼펜하우어의 명언집을 보면 행복의 90%는 건강에 있다고 강조한 것을 보면, 말년의 건강이 얼마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쇼펜하우어의 말년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한다는 나의 신념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에 결국 선택과 집중이 삶의 생명력이다. 모든 일을 잘할 수도 없고 모든 원하는 것을 가질 수도 없다. 나이가 들어 아무리 많은 취미를 가져도 자신의 공허함을 극복할 수 없다.

지인 중 한 명은 나이가 들수록 열정적인 삶의 모습을 ‘지랄’로 표현한다. 웃기는 표현이지만 공감은 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젊은이들의 열정을 따라갈 수는 없다. 다만 늙음을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일 뿐이다.

‘나는 자연인’이라는 프로에 집중한다. 단지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자립생활을 보여주는 프로다. 이런 단순한 프로가 왜 장수 프로가 됐을까? 내 주변의 지인 중 자연인을 꿈꾸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왜 그럴까?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공간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이유일까? 석가의 말처럼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인생의 이치인데 저절로 조용히 자숙하며 자신의 마지막 삶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짧디짧은 귀한 시간을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인생의 무게 중심을 내 안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쇼펜하우어 말년의 매우 앙칼진 모습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진짜 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쇼펜하우어의 말년의 모습이 나에게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머지않아 닥칠 나의 노년의 많은 모습 중 하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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