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현 박사
구자현 박사

[고양일보] 현재까지 삶을 돌아보면 가장 영향을 미친 정치학자 중에 1인은 송나라 시대의 구양수(歐陽脩,1007~1072)이다. 뛰어난 문인이었고 현란한 문체보다는 깊고 강건한 문체를 숭상했다. 나는 그의 문체를 사랑한다.

특히 글쓰기에 관해서 구양수(歐陽脩)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을 강조했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글쓰기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해도 자신이 직접 글을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 공부에서도 영어 작문이 중요한 것처럼, 직접 글을 쓰는 행위는 아는 능력 위에 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이 아는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이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생각을 정리하게 해준다. 다양한 지식은 나이가 들면서 경험과 같이 축적되지만, 적당한 때마다 정리하지 않으면 생각이 혼란해진다. 혼란한 생각은 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 말을 하게 된다.

나는 다양한 생각을 적은 글을 가지고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취미활동이다. 이때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상대방 의견에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없다. 비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의 가치관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자신의 틀을 넓히는 것이다. 우리는 비판을 하면 무조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본인도 상대방의 비판을 들으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나에 대한 비판은 상대방의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토론문화가 풍성하지 않다. 토론 자체가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분위기다. 결국 자신이 잘났다는 것이다. 씁쓸할 뿐이다. 토론은 그게 아닌데.

책을 읽을 때도 자기의 판단력이 부족하면 오직 작가와 이심전심만 할 뿐이다. 감동은 있으나 자기 생각의 틀을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주변을 보면, 확고한 자기 생각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확고한 생각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오만한 나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에 편승해서 살기 때문에. 이것저것 눈치보면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이어 가는 데 급급하다. 심지어 자신의 확고한 생각이 있는 사람은 바보 취급당한다. 신념이 밥 먹여 주냐는 식으로 비아냥 당하기 일쑤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쓰기의 생활화는 중요하다.

나의 경우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생각 노트를 이용한다. 기호를 사용하여 단순화하거나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하면서 나의 머릿속 생각을 정리한다. 생각이라는 것은 획일화 시킬 수 없지만,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최상의 선택을 찾는다. 나만의 생각 정리법이다. 특히 컴퓨터 자판이 아닌 종이라는 대상을 통해 글쓰기를 하면 생각이 종이에 몰입되어 더욱 좋다.

키보드 자판은 나의 감정을 담아내기 어렵다. 자판이 편하기는 하지만 펜을 잡았을 때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촉감이 없다. 특히 펜 끝에서 묻어나는 다양한 색깔의 줄기를 따라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이 좋다.

나는 글을 쓰면서 치유의 효과를 느낀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기쁨도 느낀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감정을 글로 쓴다는 것 자체의 행동이 나는 좋다.

손글씨의 매력은 글씨의 생김새만큼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 글씨에 스며든 글씨체는 오랜 기간 나만의 특화된 개성의 표현이다. 글씨를 크게 쓰는 사람도 있고 작게 쓰는 사람도 있다. 글씨체를 흘려서 쓰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정자체로 쓰는 사람도 있다. 모든 글씨체는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자기의 분신인 것이다.

자판으로 글을 쓰던, 손글씨로 글을 쓰던, 글이 종이에 쓰여 나와 떨어지는 순간, 나는 3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게 된다. 장기나 오목을 둘 때 훈수 두는 사람이 경기에 이기는 수를 잘 보는 것처럼, 내 생각이 종이에 대상화되면 좀 더 객관적으로 글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글을 반복적으로 쓰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복은 아름다운 것이다. 특히 손글씨는 더욱 좋다. 종교시설에서 성경이나 불경을 여러 차례 사경(寫經)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는 아름다운 행위이다. 초등학교 때 반성문을 10장 20장 써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의아해했으나 반복적으로 쓰면 나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생각을 글로 쓰고 있다. 글을 쓰는 행위가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요즘과 같이 복잡한 세상에.

글쓰기를 통해 나의 삶에 대한 자세는 점점 좋아지고, 삶의 행동을 위한 굳건한 뿌리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삶에서 글쓰기만큼 가성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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