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일보] 거의 10년을 신고 다니던 내 구두는 지금까지 나 이외 그 누구도 신겨본 적이 없이 오로지 나만을 신고다니며 좋은 길 험한 길을 가리지 않고 나를 위해 봉사해 왔습니다.

나는 남자치고는 발 사이즈가 매우 작아 250을 신고 있는데 양말은 성인 남자의 것은 맞는 것이 없어 아이들 용으로 사야 합니다. 물론 위 사진의 구두는 내게 있는 단 한 컬레의 구두는 아닙니다. 그러나 많지 않은 구두 중에서 겨울철이 되면 가장 즐겨 신는 구두였습니다. 따뜻하고 편해서입니다. 그러기에 10년을 신고다녔겠지요.

오늘 노회 은목회의 총회 모임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같이 있던 동행인의 지적으로 내려다 본 내 구두는 양쪽 다 밑바닥 창이 완전히 너덜거리는 개 혓바닥 모양이 되어 있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다보니 이것들도 서로의 밀착력을 잃고 제멋대로 된 모양입니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 종로5가역 입구에 있는 구두 수선대가 있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칠십 후반으로 보이는 수선공 부부가 나를 반기며 비좁은 수선대 안의 난로가로 나를 앉게 했습니다. 내 구두를 보이며 수선비를 묻자 만오천원이라 대답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 이상의 가격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냉큼 좋다고 하며 구두를 벗어드렸습니다.

그는 나이 든 숙련공답게 아주 꼼꼼히 내 구두를 위아래로 만지작거리며 수선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에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습니다. 내가 고장 난 내 구두의 원인을 묻자 그는 한 마디로 "잘 신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구두를 오래 신으려면 자주 신도록 해야 돼요."라고 생각지도 않은 예상외의 답을 했습니다.

우리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일 때 더 쉽게 폐가가 된다고 하는 말은 들어봤지만, 구두도 그렇다는 말은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오래 많이 신고 다녀서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전혀 뜻밖의 말씀을 듣게 되는군요"라고 말하면서, 하기사 지금 이 구두는 내가 즐겨 신는 것이지만 아주 추운 겨울철에나 잠깐 신는 것이기에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한 자리에서 40년을 이걸로 먹고살아 온 구두에 관한 한 베테랑일 테니까요.

나는 갑자기 그가 위대해 보여 그의 마음을 사고 싶어서 넌지시 아는 척 말을 건넸습니다. "그동안 한 자리에서만 40년을 지내시면서 그래도 이걸로 자식들 학교 교육 다 시키고 결혼까지도 다 시키셨겠지요? 지금도 할만 하세요?"라고 묻자 고개를 숙여 일하는 채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예전엔 그랬죠. 그러나 지금은 안 그래요. 옛날 이 일 시작하기 전에는 집에서 가구 만드는 일을 했는데 큰 회사들이 나와서 브랜드화된 후로는 가구 제작 일도 먹고 살 수가 없게 돼 고민 중에 아는 사람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로 이 일을 소개해줘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 일만 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손님이 없어서 이 일도 곧 때려치울라고 그래요. 요즘 구두 닦는 사람도 없고 또 지금 손님처럼 구두 수선하러 오는 사람도 드무니까요. 조금 문제 있으면 고쳐 신느니 아예 버리고 새 신발 사버리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 나같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진 거죠."

잠시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지만, 순간 이 우울한 분위기를 떨칠 수 있는 그 무엇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어깨 뒤 작은 선반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번엔 말 화살을 그의 부인에게 돌려 말문을 꺼냈습니다. "교회 다니세요?" 그녀가 짧게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아~ 예수 믿으시는군요. 어쩐지..."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와의 친근감을 갖기 위해 나의 신분을 밝히고 싶었지만, 갑자기 그녀와의 신분격차(?)로 인한 가름막이 생길까봐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제 이 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와 함께 접으려고 하는 노부부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 소망의 말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게도 그들 안에 예수가 살아있어 천국 소망의 끈을 놓지 않기만을 바라는 기도가 입안에서 맴돌았을 뿐입니다.

40년 경력의 수선공에 의해 내 구두는 새로 거듭났습니다. 나와 10년을 같이 했지만 그리고 아깝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구두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같은 좋은 주인을 만나 버리는 대신 유능한 구두 수선공의 손길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내 구두는 또 나를 신겨서 열심히 새로운 세상길을 밟아 갈 것입니다. 그게 언제까지일런지 모르지만 내가 지금처럼 그나마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 구두는 나와 동고동락할 것입니다. 대신 내가 외롭거나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잘 보살펴 챙겨 신어주어야 하겠지요.

오늘 저녁 뉴스는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노인들의 은퇴 시기가 빨라지면서 노인들이 할 일을 잃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가족들로부터 자취를 감추고 마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치매로 인해 집을 잃은 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노인들도 있고, 충분히 찾을 수도 있지만 가족들이 고의적으로 실종신고도 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집에 없는 노부모의 노령연금을 타쓰면서 제 자식들만 챙기는 나쁜 자식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현대의 고려장입니다.

아직은 더 신어도 될만한 구두가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손을 보면 아직도 쓸만한 구두는 많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버리면 버렸지 새로 고쳐 신겠다는 사람은 드뭅니다. 검소, 절약이 강조되는 시대가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라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요즘은 옷도 그렇고 닳고 낡아서 버리는 게 아니라 유행에 뒤지기에 옷장 깊숙이 썩혀두고 말게 됩니다.

유용성이나 이에 맞는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과감히 불필요한 존재는 제거하는 것이 생존경쟁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도 우리 인간들이 삶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의미와 보람을 찾아 진실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별로 쓸모없이 보일지라도 오랜 시간 세월의 풍파를 견뎌 내 온 옛것으로부터 배우고 익힐 것이 많음을 기억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규남 목사
조규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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