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김종혁 국민의힘 고양병 당협위원장
인터뷰 중인 김종혁 국민의힘 고양병 당협위원장

[고양일보] 지난 3월 2일 고양체육관에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6000명이 넘는 당원들이 몰려와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들을 연호하며 고양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엿새 뒤인 8일, 이번에는 고양시 킨텍스에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힘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에 대한 선거 결과를 발표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8000명이 넘는 당원이 참석했다.

김기현 당 대표와 김재원, 김병민, 조수진, 태영호 최고위원 그리고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을 선출한 이날 전당대회에서는 특이한 이벤트도 있었다.

지난 6개월간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8명의 비대위원에게 당 사무처 직원들이 비대위원들 개개인의 얼굴을 대형 브로마이드로 제작해 선물한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으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던 당을 위기 상황에서 구해냈다는 감사의 표시였다.

그런 이벤트를 열어줄 만큼 정진석 비대위는 구원투수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비대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대위 출범 초기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초반대를 기록했던 국민의힘 지지도는 말기에는 40%를 넘어 민주당을 압도했다.

김종혁 고양병 당협위원장도 그 비대위의 멤버였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그는 지난 6개월간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당을 방어하고 민주당에 맹공을 퍼부으며 맹활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사무처 직원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는 비대위원들(가장 우측이 김 위원장)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사무처 직원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는 비대위원들(가장 우측이 김 위원장)

비대위원 임기를 마친 뒤 당협위원장과 방송 패널로 눈코 뜰 새 없는 김 위원장을 고양일보 최국진 발행인이 만났다.

인터뷰는 3월 19일 일산동구청 건너편 센트럴프라자 빌딩 912호 고양병 합동연락사무소에서 이뤄졌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축하 화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최국진 발행인(이하 ‘최 발행인’) : 비대위가 무사히 끝났다. 국민의힘은 위기 때마다 비대위를 꾸렸지만, 뒤끝이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이번 비대위는 달랐다는 평가이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 그리고 김기현, 안철수 후보 등이 다 함께 화합의 춤을 추며 축제를 방불케 한 것은 보수당 역사상 처음인 것 같다. 비대위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김종혁 당협위원장(이하 ‘김 위원장’) :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정진석 당시 국회부의장으로부터 비대위에 참석해 당의 스피커 역할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주변에선 만류하더라. 법원에 의해 1차 비대위가 해산됐고, 같은 판사가 또 가처분을 맡았으니 2차 비대위도 한 달을 못 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이 어려운데 개인적인 유불리와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게 옳지 않아 보였다. 곧바로 해산당하는 한이 있어도 할 일은 하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론 2차 가처분에서 승리하고 나름 성공적으로 비대위를 끝냈으니 다행이다. 운이 좋았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발언하고 있는 김 위원장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발언하고 있는 김 위원장

최 발행인 :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김 위원장 : 너무 많아서(웃음). 2차 가처분 재판정에서 비대위원 자격으로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났던 기억이 난다. 이 전 대표를 전부터 알고 있었고 좋은 관계였는데 법정에서 만나니 이 무슨 악연인가 싶었다. 나는 재판장에게 2차 비대위가 해산되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했고, 이 전 대표는 반박했다.

최 발행인 : 무슨 논리를 편 건가?

김 위원장 : 재판장에게 “기자 생활 30년 넘게 하는 동안 당 대표가 외부의 압력과 탄압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임기를 보장받기 위해 법원을 끌어들이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재판부가 1차 비대위를 해산하는 근거로 당헌·당규에 모순된 조항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정당의 당헌·당규는 헌법이나 법률만큼 정밀하지 않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다 똑같다. 당헌·당규는 당원들이 모여 정한 걸 명문화한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헌·당규는 불변의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당원들의 지향점을 보여줄 뿐인데 법적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재판장에게 설명했다.

만일 2차 가처분도 받아들여진다면 앞으로 법원은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는 항변도 했다.

생각해보라. 당 지도부나 공직 후보자를 뽑을 때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비율을 50대50, 혹은 70대30, 아니면 당원 100%로 하는 근거가 어디 있나. 그냥 당과 당원들의 결정일 뿐이다. 누구나 “난 그거 못 받아들이겠다”고 소송을 걸어도 할 말이 없다. 이런 식의 소송이 쏟아지면 과연 법원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최 발행인 : 재판부와 이준석 전 대표의 반응은 어땠나?

김 위원장 : 재판부야 물론 포커페이스(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음)였고, 이준석 대표는 발끈하더라.

최 발행인 : 발끈했다? 어떻게 반응했다는 것인가.

김 위원장 : 왜 재판정에 와서 정치적 발언을 하냐고 항의하더라. 그러면서 애초부터 그렇게 생각했으면 자기가 가처분 소송을 내기 전에 협상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속으로 쓴웃음이 났다. 이 전 대표는 다른 사람과의 통화내용까지 수틀리면 다 공개해버리는데 겁이 나서 누가 감히 협상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나.

최 발행인 : 이번 비대위에서 당원 100% 조항을 처음 도입했다. 과거에는 대표를 뽑을 때 당원투표 70%, 여론조사 30%였다. 그래서 민심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민주당으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받지 않았나.

김 위원장 : 전 세계 어떤 정당도 당 대표를 선출하면서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포함시키지 않는다. 영국 보수당은 당원이 20만명 정도인데 이들의 투표로 당 대표를 뽑는다. 다수당일 경우 그렇게 뽑힌 당 대표가 수상이 된다. 누구도 이걸 비민주적이라거나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방송 패널로 출연해 발언 중인 김 위원장
방송 패널로 출연해 발언 중인 김 위원장

최 발행인 : 하지만 국민의힘도 그동안 당 대표 선출에 여론조사를 포함시켜 오지 않았나.

김 위원장 : 그렇다. 2004년부터 그렇게 했다. 당시 탄핵 역풍으로 당이 거의 무너져버렸고, 당원 숫자도 10여만명 정도일 때였다. 여론조사를 일부 포함시키면 민심을 반영하고, 뭔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해 도입한 것이다.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 당원은 80만명이 넘었다. 지금은 아마 100만명도 넘을 것이다. 이런 정도의 숫자라면 조직적 동원은 불가능해진다.

최 발행인 : 비대위에선 여론조사의 부정확성도 지적한 걸로 안다.

김 위원장 : 당 대표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질문 문항을 경쟁력과 호감도 중 무엇으로 할 것이냐, 평일과 휴일 혹은 오전과 오후 중 언제 할 것이냐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그런 조건들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정확하다.

더 큰 문제는 역선택이다. 도대체 국민의힘 지도부를 뽑는데 민주당 지지자들의 의견이 왜 반영돼야 하는가.

최 발행인 :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2반 반장 뽑는데 왜 3반에서 투표하냐고 했다.

김 위원장 : 아주 적절한 비유였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잘되기를 바랄 리가 없지 않나.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해 죄송하지만, 유승민 후보가 일반 여론조사에서 높게 나온 이유는 너무나 자명한 거 아닌가. 친민주당 성향 응답자들이 일제히 유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 발행인 : 당원 100% 투표로 지도부를 구성하게 경선룰을 바꾼 건 어떻게 생각하나?

김 위원장 : 자부심을 느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된 뒤 일반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10%에서 25%인가로 늘리겠다고 한 걸로 아는데, 그거야말로 사람 따라 룰을 바꾸는 거다.

그걸 막기 위해선 당원들에게 모든 권한을 돌려주고 그 결과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심판을 받으면 된다. 민주당도 국민이힘이나 전 세계 다른 민주정당처럼 전체 당원들에게 선출권을 돌려주기 바란다.

최 발행인 : 이준석계 당 대표나 최고위원 후보들은 공천권도 100% 당원들에게 돌려준다는 공약을 했다.

김 위원장 : 그 얘기 듣고 웃었다. 비대위가 당원 100% 투표로 지도부를 선출하자고 할 때는 그렇게 비판하더니, 그보다 더 어려운 공천권을 100% 당원에게 맡긴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

최 발행인 : 지역 얘기 좀 해보자. 고양병 당협위원장이 됐는데 비대위원이어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김 위원장 : (웃음) 이렇게 낡은 낙하산도 있나. 저는 1994년 신도시 1기 입주민으로 일산으로 이사 왔다.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다 자라서 결혼도 하고 대학도 졸업했다. 고양시는 실향민의 아들인 저에겐 사실상의 고향이다.

국민의힘 고양병 당원교육이 끝난 후 고양시장 및 시도의원과 함께(좌측에서 세번째가 이동환 시장, 그 우측이 김 위원장)
국민의힘 고양병 당원교육이 끝난 후 고양시장 및 시도의원과 함께(좌측에서 네번째가 이동환 시장, 그 우측이 김 위원장)

최 발행인 : 고양시에서 그렇게 오래 산지는 몰랐다. 신도시가 조성됐을 당시 언론사들이 대부분 강북에 있어서 분당보다 일산을 더 선호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뒤 많이 떠나간 걸로 아는데 고양시에 끝까지 남은 걸 보니 이 도시에 뭔가 매력을 느낀 것인가.

김 위원장 : 매력이라기보다는 솔직히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았다.

최 발행인 :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버님이 이 지역 분인가? 실향민의 아들로 알고 있는데.

김 위원장 : 우리 부모님은 모두 황해도 출신이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셨다. 저는 강화도에서 태어났고 살기는 서울서 살았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벽제 공동묘지에 모셨다.

한식이나 추석 때면 시외버스를 타고 벽제묘지에 성묘를 다녔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 가슴이 아파 많이 울었다. 그래서 1994년에 일산신도시에 이사 오게 됐을 때 “아버지가 막내아들 보고 싶어 부르셨나 보구나. 이제부터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평생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 몇 차례 이사 갈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30년이 됐다.

최 발행인 : 약력을 보면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것으로 돼 있는데 해외에 살다가 다시 고양시로 돌아온 것인가.

김 위원장 :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1년간 연수했고, 워싱턴 특파원으로 3년 남짓 있었으니 해외에서 꽤 살았다. 워싱턴에 갈 때가 2003년이었는데 그때는 일산의 집값이 강남과 지금처럼 큰 차이는 없었다. 주변에선 일산집 팔고 강남에 전세 끼고 집 사놓고 미국 갔다 오라고 하더라. 고민을 안한 건 아니지만 결국 고양시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와 약속했으니까.

최 발행인 : 솔직히 후회가 좀 되는 거 아닌가.

김 위원장 : 안 한다. 이곳에서 계속 살았으니 지역을 대변하는 정치인도 된 것 아닌가.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가 생각이 좀 있으셨던 것 같다(웃음).

최 발행인 : 왜 정치인이 됐나. 방송 패널로 여러 방송에 출연 중이고, 중앙일보 편집국장에 jtbc 앵커, 계열사 대표 등을 지낸 경력으로 보면 언론계와 관련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김 위원장 : 문재인 정부와 586이 나를 정치판으로 불러냈다.

당 행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는 김 위원장
당 행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는 김 위원장

최 발행인 : 그게 무슨 소리인가. 김 위원장 본인도 86세대(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 아닌가.

김 위원장 : 맞다. 제가 1981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사실은 86세대의 맏형뻘이다. 저 역시 대학생 때 운동권이었다. 시위를 벌이다 붙잡혀 강제징집을 당했고 이른바 ‘녹화사업(강제징집 당한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군 보안사의 정신교육)’도 받았다. 민주당 송영길, 김영춘 등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다 친구들이다.

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들의 ‘얼굴마담’이었다고 생각한다. 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역량과 능력이 뛰어나 운동권 출신들을 포용해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운동권 출신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으로 문재인을 선택한 것이라고 본다.

최 발행인 :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

김 위원장 : 권력의 주체인 청와대의 구성을 보면 된다. 문재인 청와대에는 수석들과 비서관들, 행정관의 절대 다수가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했다. 정치권, 시민운동, 노동운동 쪽에서 활동하던 1980년대와 90년대 운동권들이 대거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비서관이 대학 시절 자신의 운동권 선배였던 부하 행정관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등 대학 써클룸을 방불하는 분위기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그들이 자신들의 대리인인 문재인 대통령을 앞세워 친민주당 성향의 늘공(직업 공무원)들을 컨트롤하면서 국정을 끌고 갔다고 본다.

최 발행인 : 운동권 출신이라도 정치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김 위원장 : 맞다. 문제는 그들의 운영하는 국정의 방향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쪽이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북한에 대한 태도다. 북한에 대한 끊임없는 미화와 굴종적 태도, 한미동맹 흔들기,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 확산과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편 가르기,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운 경제 파탄, 태양광을 앞세운 원전 생태계 파괴 등 하나하나 거론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문재인 정권은 5년 동안 대한민국은 미래에 대한 담론이나 꿈과 희망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과거 회귀와 증오 불어넣기를 통해 점점 침몰해갔다.

최 발행인 : 그걸 참을 수 없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는 것인가?

김 위원장 : 그렇다. 민주당이 선전 선동을 통해 국민을 현혹하면서 자신들을 정의의 사도와 민주주의 수호자로 포장하는 걸 보고 분노가 치솟았다. 보수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악마화하면서 장기 집권을 꾀하는 걸 보며 이젠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최 발행인 :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데, 그럼 언론의 전문성을 살려 비례대표를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지역정치인이 되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

김 위원장 : 저는 민주당이 망가뜨려 놓은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고양시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여년 동안 고양시는 민주당과 정의당 두 당이 시장과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을 거의 싹쓸이해 왔다. 고양시가 진보 진영의 아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고양시가 어떻게 됐나.

함께 출발한 분당은 천당 아래 분당이 됐고, 다른 1기 신도시들도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고양시만 망가졌다.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 출신 국회의원들이 국토부 장관, 교육부총리까지 했다. 그래도 고양시는 손톱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다. 제가 한평생 살아왔던 고향같은 고양시가, 제 아이들에게는 진짜 고향인 이 도시가 망가지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비대위원들과 함께 현충원 참배
비대위원들과 함께 현충원 참배

최 발행인 : 고양시는 진보 벨트의 핵심이 됐지만, 발전은 안됐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김 위원장 : 제가 비대위원일 때 광주에서 현장 비대위를 한 적이 있다. 광주·전남은 누구나 알 듯 죽으나 사나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그 결과가 뭔가. 전국에서 복합쇼핑몰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유일한 곳. 그게 광주·전남의 실상 아닌가. 고양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누가 잡은 고기에게 먹이를 주는가. 10년 동안 자기들이 싹쓸이하고 있는데, 아무리 못해도 무조건 표를 주는데, 지역과 유권자들을 위해 뛸 이유가 뭐가 있겠나.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에서 나온다. 고양시는 진보 진영의 오랜 독주로 인해 긴장감이 사라진 도시, 생동성을 잃어버린 도시가 됐다. 그게 고양시가 추락하게 된 원인이다.

최 발행인 : 정치인들뿐 아니라 고양시의 공무원들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시민들 사이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 :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민주당 천하가 10년 이상 지속됐으니 무조건 민주당 시장과 의원들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문화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것 같다.

최 발행인 : 앞으로 어떻게 정치활동을 해 나갈 생각인가?

김 위원장 :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정치의 시발점은 지역 활동부터라고 생각한다. 고양병에는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과 도의원이 각각 세 명이 있다. 이분들과 함께 고양병 주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집권 여당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부터 열심히 듣겠다.

고양병은 백마와 강촌마을의 통합재건축 문제가 걸려있고, 마두동 그랜드프라자의 재건 문제, 식사동의 교통 문제, 정발산동의 고통스런 주차 문제 등 수많은 해결 과제들을 안고 있다.

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만족스럽게 풀릴 수는 없겠지만 고양시와 경기도, 정부 여당과 협의해 차곡차곡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다.

때마침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이동환 고양시장도 국민의힘 소속이다. 이제는 고양시에서도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배출할 때가 됐다고 본다.

지난 19일 인터뷰하는 모습(우측이 김 위원장)
지난 19일 인터뷰하는 모습(우측이 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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