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국가론(The Republic)에서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사진 = Penguin Classics>

“무릇 모든 도시는, 아무리 작더라도,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하나는 부유한 자의 도시. 또 다른 하나는 가난한 자의 도시.

그리고 이 두 개의 도시가 항상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Any city, however small, is in fact divided into two, one the city of the poor,

the other of the rich; these are at war with one another”

프랑스 혁명으로 유럽의 이성이 교황청과 왕정의 부조리와 “전쟁”을 벌이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영국 지성인들의 빈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활기찬 런던과 파리의 모습과 함께 공존하는 정치적 대격동기의 혼란스러운 사회상 속에서도 디킨스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하는 믿음,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숭고할 수 있는지 문학으로 설득하여 영어문학권 최고의 역사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 = Greatest Audio Books 표지>

필자는 이제 한국의 두 도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도시계획에 따라 그 어느 한국 도시보다 쾌적하고 편리한 아파트단지로 상징되는 고양시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21세기 임시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이야기다.

고양시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에 따르면, 고양시에는 총 254개 아파트 단지가 존재하며 이 모든 단지 게시판에는 <경비근로자 인권보호> 전단지가 붙어있다.

위 노력은 2013년 11월 11일에 제정된 “고양시 비정규직 근로자 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설치되어 민간위탁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일환이다.

고양시의 노력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큰 맥락에서 비정규직근로자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6년 10월 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근로·휴게시간 구분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그동안 노동관계법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아온 감시ㆍ단속적 근로자(아파트경비원)에 대해 뒤늦게나마 가이드라인 형태로 관심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할 만하다.

이 가이드라인에 적시된 감시적 근로자는 아파트나 건물의 경비원 등과 같이 감시적인 업무 및 비교적 심신의 피로가 적은 업무 종사자를 지칭한다.

단속적 근로자는 보일러 및 전기 기사, 주차관리원 등과 같이 간헐적으로 노동이 이루어져 휴게시간이나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 종사자를 가리킨다.

그동안 위에서 규정된 업무의 특성을 근거로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왔다는 것이 한국 노동사의 현실이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근로계약에서 형식적으로 휴게시간으로 규정하더라도 `제재나 감시·감독 등에 의해 근무 장소에서 강제로 대기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 또 화재, 외부인 침입 등으로 인해 `휴게시간 도중 돌발 상황 수습을 위해 대응한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시간” 등이 규정되어 있다.

고용노동부는 전국 지방체에 이 가이드라인을 시달하고, 아파트 단지와 교육청, 경비용역업체 등에도 배포했다고 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 일 뿐 강제력이 없는 '권고' 수준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한 사업주가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더라도 처벌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공정인사 지침, 일경험 수련생 가이드라인, 기간제 및 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 특수형태 종사자 가이드라인, 전자근로계약서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등 끝없이 다양한 가이드라인의 제정·개정을 반복하는 노동정책의 현장에서 실효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서운 것은 그 한계가 아파트경비원의 피해로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로서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로시간, 휴게, 휴일(임금 관련하여 연장·휴일근로수당·주휴) 등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야간근로(밤 10시~ 다음날 아침 6시) 수당 및 연차유급휴가 등은 적용된다.

업무의 “성질”로 인해 실제로는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구분하기 어렵고, 휴게시간이라고 해도 돌발적 업무 등으로 업무수행이 이루어져 근로시간 여부를 둘러싼 노사간 다툼이 빈번하다.

더욱이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근로계약상 휴게시간을 늘려 임금을 산정하는 편법적 관행이 새롭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8일 아침 9시 노원구 어느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에서 주민들 대피를 안내하느라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던 경비원 양모(60세) 씨가 화재현장에서 쓰러져 호흡곤란으로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각 정당에서는 애도의 뜻을 잇 따라 발표했다.

자유한국당은 “이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라는 김경숙 부대변인 명의 성명을 21일 발표했다.

<자료 = 문재인 전 대표 트위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대표도 트위터로, “숭고한 희생에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애도를 보낸다”는 글을 남겼다.

안희정 지사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 희생으로 수 십 명의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이웃을 먼저 생각한 그 숭고한 실천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근로기준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노동인권을 보호하기에 아직도 미흡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2015년부터 최저임금 감액대상에서 벗어난 ‘감시·단속적 근로자’ 임금의 현주소를 단순히 애도하고 넘어갈 일인가 묻고 싶다.

휴게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리며 최저임금 지급액을 줄이는 사업주의 모습과 다른 한 편에서는 경비원 고용감축과 대체 CCTV 설치 증가 등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노무법인의 전문가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입법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향후 어떻게 입법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협의 자체가 매우 미진하다”고 말했다.

“근무와 관련하여 가장 마음에 부담이 되고 힘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한 아파트경비원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몸이 힘든 것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매년 말 용역회사와 재계약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경비원의 가장 큰 걱정거리일 것”이라면서, 용역회사의 지시를 받는 관리사무소 경비대장의 존재가 대부분 아파트 경비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수퍼갑’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의 그늘이 늘 어둡고 음습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 뒤에 숨어 면피하고 있는 동안, 일부 지자체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이고 있는 노력은 당연히 주목받아 마땅하다.

충남 아산시의 경우, 2015년 전국 최초로 아파트경비원 고용보조금을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산시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 유지 및 창출 촉진을 위한 특별지원 조례안’이 바로 그것이다.

2015년부터 아파트경비원 최저임금 100% 적용에 따른 임금상승 부담을 이유로 인력감축이 진행되고 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최대의 피해자로 부상하고 있는 고령자 아파트경비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자체가 중앙정부 탓만 하기 보다는 스스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물론 “아파트경비원을 새로 고용하거나 해고시키지 않기 위한 자구노력을 하는 아파트”에 대해서만 고용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이 결정은 다른 지자체에 귀감이 되고 있다.

아산시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파트 유·무인 경비의 경제성 비교분석을 통한 고령자 일자리 창출” 연구를 통해 유인경비체제가 실질적인 아파트입주민 안전뿐만 아니라 생활편익 서비스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며, 노년층 고용창출을 위해서도 훨씬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다.

아파트경비원 근로자들의 최대 문제를 최저임금 보장으로 보는 시각은 너무나 낭만적인 것이다.

파견근로자이자 비정규직인 감시·단속직 근로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최저임금을 보장받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열악한 고용환경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과 청탁을 해도 취업이 될까 말까한 노년층 취업의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 복지의 문제를 아파트 입주민의 관리비 상승 부담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시·단속직 근로자는 아파트 입주민 즉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경찰의 임무를 일부 대신하는 특수한 노동자다.

2013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실태조사를 보아도 아파트경비원의 업무 중 경비업무 이외의 다른 업무가 총 노동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경비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순찰과 경비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 주차관리, 분리수거, 쓰레기장 관리, 택배, 눈 치우기 등 고강도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층인 이들 아파트경비원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2평도 안 되는 좁고 추운 경비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하는 우리의 아버지, 형님들이다.

이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보편적 복지 차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업주의 개인적인 양식'과 '정부의 의지'가 결합돼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로써 제2·제3의 압구정아파트 경비원 박 모씨, 노원구아파트 경비원 양 모씨와 같은 비극이 우리의 도시에서 줄어들 것이다.

<자료 = Victoria and Albert Museum 홈페이지>

<두 도시 이야기>에서 ‘카튼’은 방탕하고 덧없던 자신의 평안한 일상을 ‘마네트 양’을 위해 희생하는 대목이 나온다.

프랑스혁명이라는 격동기의 광기(madness)속에서 귀족인 자기 자신의 안전이 아닌 다른 ‘대중의 삶’을 위해 숭고한 죽음을 맞는다는 찰스 디킨스의 스토리텔링은 19세기 지식인들을 열광시켰다.

21세기 우리의 도시에서 해고되거나 분신자살하는 대중의 삶을 우리는 그냥 애도하며 기존의 가이드라인을 참고만 하고 있을 것인가 물어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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