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반전 – 거절
사랑의 반전 – 거절
  •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 승인 2021.04.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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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남 목사
조규남 목사

세상은, 인생은 온통 사랑 타령이다. 트롯의, 유행가의 모든 가사가 사랑을 주제로 하여 노래한다. 모두 사랑에 목말라 있다. 그러기는 은퇴하여 칠십을 넘긴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단초를 찾아 헤맨다. 그래서 젊은 시절엔 외항선 항해사가 되어 세계의 바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방랑벽(wanderlust)이 있었는데 그건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찾고 사랑을 전하기 위해 도시락배달을 나간다. 사실 이 도시락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도시락이기 때문이다.

요즘 복지관 도시락배달 봉사를 나갈 때 봄기운의 시골길을 달리며 눈을 반짝거리게 되는 것은 법곳동 김 할머니에 관한 생각 때문이다. 오늘 그의 반응은 어떨까, 나의 진심을 얼마나 받아들여 줄까 하며 골똘히 생각한다. 지난번 내 나름대로 미친 척 애정 공세를 보였는데 그가 삐에로의 몸짓처럼 나의 애달픈 가면 속의 아리아에 귀 기울여 반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이다. 우리 누구나 버려진 빈 의자로 썰렁하게 남아 대답 없는 님의 침묵을 바라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의 집 열려있는 현관문을 열고 집안 거실에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김 할머니, 도시락 왔습니다"라로 인사하자 그가 방에서 나와 아무 말 없이 거기 두고 가라는 식의 손짓만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또 어처구니 없는 미친 애정행각을 표출했다. "할머니, 맛있게 드세요. 사랑합니다~앙~" 그러자 갑자기 그가 몸을 돌이켜 나를 향해 삿대질했다. "사랑? 나 사랑 안 받아.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빨리 가!" 갑작스런 반격이라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질세라 다시 "할머니 사랑한다고요!" 하고 말하자, "사랑이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말고 빨리 가란 말야!"하고 눈을 치켜뜨며 성질을 부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지지 않고 곧바로 응수했다. "그럼 할머니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란 말이에요? 할머니 사랑한단 말이 뭐 나쁜 말이에요? 할머니 사랑한다고요!" 그러자 그가 더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직격탄을 쏘았다. "팀장에게 이르기 전에 빨리 가!" 나는 복지관에서 준비한 도시락 외에 그에게 주기 위해 개인적으로 따로 준비했던 팥양갱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려다 말고 다시 슬그머니 숨겨버리고 말았다.

다시 시작한 게임은 다시 끝나 무대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가면 속의 아리아를 부르던 어릿광대 짓의 삐에로는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이 고독한 할머니는 자신의 고독을 지키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조직사회의 위계질서와 그 힘의 위용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의 봉사 직무를 관장하고 있는 팀장에게 일러바치기 전에 그리고 내가 얼빠진 녀석의 초라한 몰골로 주저앉기 전에 그만 꼬리를 내려야 했다.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그는 나를 대낮에 도시락배달 핑계대고 찾아와 80살이나 먹은 노인에게 다짜고짜 사랑하느니 뭐니 하면서 미친 짓한다고 경찰에 성희롱범으로 신고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의 방랑벽이 있는 70대 원로 목사, 대낮에 홀로 사는 노파집에 들어가 성희롱을 일삼다"라고 신문기사에 얼씨구나 하고 실려 또 하나의 목사 성추문을 만들어 내는 장본인이 될 것이다. 여기서 그만 그녀를 향한 나의 일방적 짝사랑은 막을 내려야 했다. 지금까지로는 슬픈 결말인 셈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일방적 짝사랑과 같을지나 거절당한 채로 더이상 어찌 해 볼 수 없이 이제 그와 나의 관계가 완전히 인간적 관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관계로 굳어져 버리게 됐다는 현실이다. 그에게 있어서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그의 아성을 둘러 진치고 있는 고독의 무기였다. 사회의 그 무엇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 무엇이 그를 이토록 모질고 강팍한 여인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리 험한 인생길을 외롭게 홀로 걸어오게 하였을까? 사랑에 굶주려 갈급하게 사랑의 구애를 벌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사랑을 안 받겠다고 사랑을 거절하는 그 표독스러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정말 사랑이 필요없다는 것일까?

사랑을 안 받겠다는 것은 사랑을 받아 본 일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남모르게 자신만이 아는 어떤 깊은 사랑의 상처가 그로 하여금 모든 사랑의 통로를 차단한 때문일까? 사랑의 거절은 당해 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안다. 사랑의 상처로 인한 고독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 단 하나,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치유될 뿐이다. 사람들은 사랑의 거절로 인한 아픔을 견디지 못해 모두 비겁자가 되어 숨어 버리고, 그 아픔으로 인해 평생을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혀 홀로 지내기도 한다.

사랑의 거절로 가장 큰 배반의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죽은 예수이다. 그는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목숨까지 주었지만, 그 사랑을 거절당했고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조롱받으며 죽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반전을 통해 그는 역사를 BC/AD로 나눈다. 사랑의 거절로 인한 그의 아픔이 사랑으로 아파하는 모든 이에게 위로의 샘이 되었다. 사랑의 거절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사랑의 거절을 배우며 그 아픔을 통해 새롭게 진정한 사랑의 모험을 시작하는 용기를 가져 볼 일이다. 십자가 위에서 그 길(The Way)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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