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책방의 ‘일파만파낭독회’ 모습
책방이듬의 ‘일파만파낭독회’ 모습

[고양일보] ‘한국 현대시단의 여전사’, 시집 『히스테리아』로 유명한 김이듬 시인의 별칭이다. 그를 잘 아는 문우들이 붙여준 훈장 같은 별칭이다. 여기엔 기존 문단이 허용할 수 없고 그 또한 그들과 타협할 수 없는 그만의 특별함이 그의 시에 녹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현대시단의 여전사 김이듬 시인이 일산 대화동에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방이듬’엔 특별한 세 가지가 있다. 스승과 벗, 그리고 문학을 위한 호시절이다. 모두 좋은 시를 쓰기 위한 필수품들이다.

지난 3월 31일 늦은 오후. 3호선 일산 대화역에서 성저마을 주택가 안쪽 깊숙한 곳으로 10여 분쯤 들어가니 한적한 곳에 ‘책방이듬’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책방이 있을 만한 안성맞춤 위치였다. 일산 중심가에서 보자면 서쪽 끝자락에 있지만, 동네 책방을 선호하는 지역 주민 입장에선 이만한 곳도 없다.

오후 6시 40분. 예정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시낭송회는 벌써 시작됐다. 찾아 온 손님은 20여 명. 책방을 자주 찾는 동네 회원들도 있고, 오늘 특별 손님을 모신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온 문객들도 있을 터였다. 모두 김이듬 시인과 잘 아는 시인 문객들임엔 틀림없다.

김이듬 시인은 “문학이 누군가의 일생을 바꾸고, 그를 불행에서 건져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생각으로 일산에 책방을 열어 벌써 5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다. 그는 일산 파주의 시·문학적 토대를 다지는데 기여하기 위해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기초적인 시작법 강의도 그 일환이고, 책방을 시인 문객들의 만남의 장소, 지역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런 목적이 있어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이듬 시인이 애정을 쏟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파만파낭독회’다. 일산·파주 지역 문화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환경 이전에는 더 자주 열었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고 있다.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

이번 3월 31일에 열린 ‘일파만파낭독회’는 64회째로 특별히 ‘풀꽃’시인 나태주 선생을 초청했다. 유명 시인이 찾아온 덕분에 책방이 더 많이 알려진다면 그것은 덤이다. 이번 시낭독회 주제는 ‘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 어디를 둘러봐도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 놓인 것과 같은 요즘이다.

이날 낭독회서 노(老) 시인은 자작시 두 편을 낭독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최신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중에서 한 편을 낭송했다. 강연 말미에는 ‘대숲아래서’를 암송했다.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박목월 시인의 마음을 움직여 당선됐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자고나니 눈두덩이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모두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물에 빠져 머리칼을 행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시 암송을 마친 노 시인의 지그시 감은 눈가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이 시는 그가 청년 시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 딱지 맞고 쓴 시다. 그 첫사랑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일까. 역시 시인은 순수한 마음과 감성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는 것일까?

김이듬 시인(좌)과 나태주 시인
김이듬 시인(좌)과 나태주 시인

기차 시간 맞추느라 벌써 떠나 버린 노 시인을 배웅하고, 행사를 정리하느라 분주한 김이듬 시인을 붙잡고 노 시인에게 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누구나 감수성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봅니다. 그걸 잘 가꿔서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은 각자의 마음가짐과 노력에 달린 거겠죠”. 들어본 익숙한 말이다.

“시는 책 속에 없어요. 자기가 사는 세상 속에 있습니다. 나와 관계되는 인생과 인간과 자연과 세상 속에 내 시가 있는 겁니다”. 나태주 시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 지망생들에게 해준 말이다. 김이듬 시인의 답변과 통한다. 부지불식간 시인은 서로 통하는 것일까.

자기가 사는 세상 속에서 시를 찾는 것도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에 달린 것은 아닐까. 나태주 시인이 자연을 통해 사랑·행복을 밝게 노래했다면, 김이듬 시인은 세상 속 사람들의 관계에서 자신의 시를 투박하게 거칠고 억척스럽게 개척한 것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김이듬 시인이 일산 대화동 성저마을에 운영하는 책방이듬에는 ‘문방삼우’가 있다. 스승과 벗과 호시절이다. 문학 애호가들을 위한 최적의 쉼터가 아닐 수 없다.

이듬책방
책방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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