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화가’ 이정재 교수
‘독도화가’ 이정재 교수
  • 구자현 발행인
  • 승인 2021.01.21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재 교수
이정재 교수

구자현 발행인: 화가이자 남서울대학교 영상예술디자인학과 교수인 이정재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특히 오랜 기간 독도 그림으로 일본의 잘못된 만행을 국내외로 널리 알렸는데, 독도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정재 교수: 일제의 조선 강점과 해방 후 영토회복의 불확실성이 빚어낸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정광태 가수의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이 땅에 널리 울려 퍼질 때 문뜩 “내가 화가로서 독도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들었죠. 처음 독도를 방문했을 때 ‘외로운 섬 하나’가 아닌 장엄하고 숭고함을 느꼈고, 우리 땅 독도가 그렇게 시련을 겪었는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죠. 그 후 나는 화가이며 교육자이기 때문에 강단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독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그러한 마음이 결국 독도를 작품화하여 그리게 된 것이죠. 그동안 국내외 30여회에 독도전을 개최했습니다. 독도사랑과 수호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구 발행인: 한일관계에서 독도는 참으로 중요한 이슈인데, 아직도 잘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개인적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 교수: 독도는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의 한국 때리기입니다. 자국인들의 결집과 과거 제국주의의 군사적 침탈의 영광 재현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하는 매우 중요한 대상이죠. 아베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지금도 그 수하들은 기회만 되면 정기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죠.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그들의 정치적 이용에 속지 않는 것이죠.

지금 독도는 실효적으로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내가 시계를 차고 있는데 남이 자꾸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법원에 가서 판결을 원하는 것이죠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내가 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자꾸 이슈화시켜서 국제재판소로 끌고 갈려는 것이죠 따라서 적절한 대처를 해야 되는데 저들의 요구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 단결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국력을 키우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중국의 다오위다오와 러시아의 쿠릴열도 역시 일본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죠.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는 우리나라에게 하는 것같이 오만방자한 행동을 잘하지 않죠. 힘에 굴복당한 것이죠. 우리는 만만하니까 자주 이슈화 시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아베의 갑작스러운 경제전쟁에 저자세가 아닌 뚝심으로 대항했고 일정 정도 승리했죠.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반가운 것은 일본군의 성 노예 문제와 강제징집의 노동착취 문제는 한국 법정에서 그 정의를 보여주었죠. 특히 한국의 K-팝, K-게임, K-웹툰 그리고 K-영화 등 세계 속의 한류열풍은 일본에는 치욕적인 거죠. 한때 미국과 전 세계의 문화의 힘을 보여준 일본이 그 자리를 한국에 빼긴 거죠.

예술인과 교육인으로서 독도수호 운동은 대한민국은 더욱 단결하게 만들고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게 되는 계기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 발행인: 오랜 기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셨는데 최근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학생들의 피로도가 높은데 학교의 상황은 어떤가요?

이 교수: 2020년은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모든 분야에 큰 타격을 주었죠. 교육의 현장 또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비대면 수업의 방법이 강구되었고 교수나 학생 또한 변화된 교육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도 IT 강국인 한국은 잘 적응해 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장기적인 비대면 교육은 대면을 통한 교육의 질을 따라올 수는 없죠. 선생과 학생이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인생의 선배로서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하기에는 아직 비대면 강의는 한계가 있습니다. 학습의 질이 하락되는 것은 피할 수 없죠.

물론 비대면 교육의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앞으로 교육은 좀 더 다양한 외부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생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번에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교육계의 변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어야 합니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죠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15만 4000명 정도가 유학을 와 있습니다. 한국은 점점 유학 강국이 돼가고 있는데. 코로나19의 선진화된 대처 방법으로 우리가 국격을 올리는 것처럼 세계 유학생에게도 우리의 선진화된 교육을 알릴 필요가 있죠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모두 우리나라의 홍보대사가 될 수 있게끔 하면 좋죠. 교육계는 더욱 노력하여 우리의 저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대한민국이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고 교육 강국이 되었는지를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은 언제든지 발생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죠 우리는 이번의 코로나19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구 발행인: 평상시에도 다양한 공부를 하셨고, 특히 철학 공부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교수: 나의 학문의 여정은 좀 복잡합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을 갔고. 미국에서 광고학 석사와 미술학 석사 학위 취득을 했죠. 귀국하여 98년도부터 남서울대학교에 교수(당시 애니메이션 학과)로 재직하면서 이제는 좀 편안하게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인연으로 신학(목회학 석사, 신학박사 수료)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또한 학문은 통섭학을 해야 됨을 알게 되었죠. 신학을 하면서 철학의 필연성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이 땅에서의 삶이나 학문 모든 것이 가치 추구의 문제라고 보게 된 거죠. 존재와 인식의 문제인데. 나와 세계의 문제를 직시하는 힘과 옳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심이 오늘도 학문탐구의 여정을 있게 했습니다.

구 발행인: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인지요. 요즘과 같은 블루 코로나 시대에 젊은이들이 꼭 가져야 하는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이 교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삶의 방향과 가치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굳이 좌우명이라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철저(磨鐵杵)이죠. 이 말은 쇠를 달구어 황금을 만든다는 뜻으로 나쁜 것을 고쳐서 좋은 것을 만듦을 이르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날아가는 화살은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다. 목표를 정하고 결정을 한다면 멈추지 말고 그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쉼 없이 노력을 하라는 말이죠. 이 둘을 가치있게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풍요 그리고 넘치는 삶의 인프라 구축이 이룩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죠. 세상에는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 뒤에는 마음과 정신력의 빈곤이 있죠. 우리 시대는 촛불 혁명 시대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회적 반인권과 반인륜의 문제가 사회의 악으로 자리하고 있죠. 인간의 생명과 영혼 그리고 존엄함이 더욱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인류는 이러한 가치를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과 내 가치가 중요하다면 타인의 생명과 가치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고 시련 또한 그칠 줄 모르죠. 내 삶에 문제가 발생하고 시련이 온다면 굳건히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은 끊임없는 참음의 연속이죠. 단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도 극복하고 견뎌내야 하지만 삶은 그렇게 낮은 하위 구조로 살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땅만 보지 말고 푸른 창공을 보라고 말하고 싶죠. 세계의 자유와 평화, 인간의 존엄과 생명가치 그리고 정의와 윤리 문제의 큰 틀의 삶의 목표가 설정된다면 그 삶은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구 발행인: 화가로 교수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건축 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교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무수히 많은 아파트와 건축물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일을 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나도 이런 건물을 지어 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방학 때를 이용해서 파주 강남 일대에서 집을 10여 채 정도 짓게 되었죠. 건축은 참으로 나에게 재미난 일입니다. 화가로서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과는 달리 입체적이고 규모 면에서 실감이 나는 즐거운 일이죠. 화가로서 가지고 있는 미적인 구조 감각으로 설계도면의 변경과 건축자재의 변화로 물질적인 건축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는 것은 내 삶에서 큰 행복이기도 합니다. 조각가이며 화가인 미켈란젤로도 그의 삶의 마지막에는 건축을 했죠.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에 나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작은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구 발행인: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덕담 한마디 부탁하겠습니다.

이 교수: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저의 삶에 대한 짧은 인터뷰를 통해 독자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큰 용기를 내시고 힘찬 발걸음으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모든 분들의 가정과 삶 위에 큰 희망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구 발행인: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고양시민과 함께하는 고양일보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31-908-2255 / 010-9907-2289

고양일보 후원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