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자유 그리고 가짜 뉴스
착각의 자유 그리고 가짜 뉴스
  •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 승인 2020.11.25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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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버스커즈가 마술 공연을 하고 있다.
고양버스커즈 마술 공연

[고양일보] 사회심리학에서 '바넘 효과(Barnum Effect)'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막연하고 일반적인 특성을 자신의 성격이라고 지적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특성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것일수록 강해지는데, 이처럼 착각에 의해 주관적으로 끌어다 붙이거나 정당화하는 경향을 바넘 효과라 한다.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통용되는 객관적 사실들을 추려내어 두리뭉실하게 보따리를 만든 다음 그 보따리를 어느 특정인 앞에 풀어헤치면 그는 자신만의 특성인 양 착각한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성에 대한 오해를 비롯하여 사주, 관상, 점성술 등이 그렇다.

이 이론의 주인공인 P. T. Barnum은 19C 말 미국의 유명한 서커스단 흥행사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대중은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는다"라는 오늘날 대중심리학의 근간을 이룰 만한 명제를 남겼다.

오늘의 대중은 무엇을 믿고 싶어하는가? 위의 논리대로라면 '무엇을 착각하고 싶어하는가?' 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자기중심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것들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 자신의 욕심과 아집이 객관적 시야를 흐리게 하여 분별력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로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대중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이웃 주변국가들과 전쟁에서 유다의 승리를 믿고 싶은데 반해,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승리의 착각을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월간지 <신앙계>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내용은 현대 사회 전반의 문화 현상들을 분석하여 이에 대해 오늘 우리의 신앙적 관점을 제시하는 영적 해석에 관한 것이 주종을 차지한다.

꽤 오래전 그 당시 내가 주로 다룬 내용은 일반 현상에서 벗어나 초자연적인 신비한 사건들로 기독교 정신과 대치되거나 영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데이빗 카퍼필드의 마술 세계를 비롯한 우주공상 과학영화 그리고 심령술과 New-Age적인 것들이 많았다.

20년도 훌쩍 넘게 그 당시 SBS-TV가 일본의 유명한 염력(念力) 마술사인 Mr. 마릭을 초청하여 그의 놀라운 마술 세계를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마술은 염력을 이용하여 3미터 이상 떨어진 탁자 위의 유리관을 깨는 것이다. 그가 기(氣)를 모으고, 장풍을 하듯 손을 들어 얏! 하고 소리치자 그 유리관은 퍽~하며 깨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TV로 이것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Mr. 마릭의 마술 세계'란 주제로 내 나름의 영적 해석을 덧붙여 칼럼을 썼다. 그의 마술(특히 염력)에 대한 나의 결론은 '악한 영'이 그에게 능력을 부여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부터 한 1년 후쯤 SBS가 Mr. 마릭을 다시 초청하여 또 한 번의 마술쇼를 방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송국 안의 모든 카메라를 총동원하여 그의 마술을 세밀한 각도로 촬영했다. 1년 전과 똑같은 염력 마술이 시연되었는데, SBS-TV 카메라는 그것이 눈속임수인 트릭(trick)인 것을 밝혀냈다. 이 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SBS-TV 기획팀에게 경의를 표한다.

트릭은 Mr. 마릭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영적 해석한 나에게도 있었다. 개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눈속임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마술사의 단순한 사기극일 뿐인 무대 쇼를 나는 영적 해석한답시고 거창하게 '악한 영'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떠들었던 1년 전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일반 대중들은 Mr. 마릭의 마술에 놀라워했고, 기독교 대중들은 이 일에 대한 나의 영적 해석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날 나는 모두 대중들을 착각 속으로 빠뜨린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잠시 절필(絶筆)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자신의 영적 무지에 대한 체벌이었다. 사실 대중들은 잠시 오락으로 보았던 그 프로그램에 대해 1년 동안 진실의 여부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것이 당장 내 삶에 큰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 한 착각이든, 진실이든 한순간의 '짜릿한 놀라움'을 즐기는 것으로 족할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적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내가 볼 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던 그 '악한 영'에 의해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그때의 기분,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설명 되어질 성질의 것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나의 기막힌(?) '영적 해석'을 지켜보며 낄낄거렸을 그 조소 어린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머리끝이 쭈뼛해질 때가 많았다.

무서웠다. 나는 그때야말로 그 '악한 영'의 실체를 접하는 듯했다. 그의 지략은 분명 나보다 한 수 위였고, 내 힘만으로는 상대하기 벅찬 존재였음을 알았다. 나는 그의 존재와 행위를 내 멋대로 말하기 전에, 겸손히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뭔가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관해 너무 쉽게 인간적 생각으로 이러쿵저러쿵 판단했다. 사실 성경의 예레미야 선지자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거짓 선지자들은 지금도 있어 대중들을 현혹의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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