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해방의 순간' 광복절 특별기획전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해방의 순간' 광복절 특별기획전
  • 김명숙 기자
  • 승인 2020.08.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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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일보] (재)김포시청소년재단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은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4일부터 특별기획전 ‘해방의 순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반도 독립을 명시한 국제적 약속인 카이로회담과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의 독립과정을 조명해주는 포츠담회담 등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있었던 주요 역사적 사건과 일본의 항복 선언 서명, 해방을 맞이한 후 기념식 등 다양한 사진들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특별기획전 ‘해방의 순간’에서는 일본의 항복과 함께 맞이했던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는 국내외 사람들과 식민통치 기간 동안 삶의 터전을 떠나 타향에 살았던 조선인들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기 위해 귀환 길에 오르는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에 있는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외부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에 있는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외부

김포는 일제강점기 경서지방 대표적인 장터였던 양촌면 오나리장과 월곶면 군하리장터에서 3.1만세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던 곳이다.

김포시는 양촌면 오라니장터 3.1만세운동을 재조명하고 애국지사의 투철한 애국정신을 영원히 기리며, 독립정신을 바로 세워 자라는 청소년에게 한민족의 얼을 일깨워 주고, 김포 항일 독립운동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우리의 독립정신을 바로 세워 가고자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했다.

'해방의 순간' 특별기획전 입구, 벽과 천정에 태극기가 장식되어 있다. 태극기는 항상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힘이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던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요구할 것인가!
'해방의 순간' 특별기획전 입구, 벽과 천정에 태극기가 장식되어 있다. 태극기는 항상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힘이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던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요구할 것인가!

1919년 3.1운동은 3~4월 만 2개월간 전국에 걸쳐 1542회, 202만3089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 당시 3.1운동과 관련해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만5961명, 검거자는 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불탄 학교 2개소, 불탄 민가는 715채에 달한다.

이 거족적 독립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잔인한 탄압 속에 많은 희생자를 낸 채 독립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대내적으로 일본의 무단정치가 끝나고 문화정치가 등장하게 했고, 대외적으로 상해의 임시정부 탄생과 해외무장 독립운동의 촉진, 아시아 다른 식민지 민족운동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대한독립만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7호, 독립기념관 소장)
대한독립만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7호, 독립기념관 소장)

가늘고 긴 삼각형 형태의 깃발 모양으로 제작된 태극기. 미국에서 광복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관련 태극기 변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판결문(1919,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소장)
판결문(1919,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소장)

1919년 3월 23일 김포 양촌면 오라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박충서(22세), 박승각(23세), 박승만(24세), 안성환(32세), 전태순(24세), 오인환(21세), 정억만(27세)의 2심 판결문이다.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죄명 등이 기재되어 있다.

판결문의 주문(主文)은 다음과 같다. ‘피고 박충서를 징역 2년에, 피고 박승각·박승만·정억만을 각 징역 1년에, 피고 안성환·전태순·오인환을 각 태(笞, 볼기) 90에 처한다. (중략)

오라니장터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
오라니장터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

오라니장터는 현재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 39-6 일원에 해당하는 곳으로 예전 김포, 통진에서 가장 번창했던 장이었다. 3.1만세운동 당시 약 4000명이 모여 두번에 걸쳐 만세운동을 한 곳이다.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군 대표(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군 대표(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1945년 8월 31일 마리아나 제도 Marcus 섬에서 미국 해군에 대한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군 대표의 모습이다.

내려지는 일장기(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내려지는 일장기(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 총독부 건물 마당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있다.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는 조선인(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는 조선인(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서울역에서 총독부 건물까지 거리행진을 하며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있다.

한국의 귀환을 기다리는 조선인(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한국의 귀환을 기다리는 조선인(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조선인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 이주하거나 강제 연행되어 타향살이 생활을 하며 연명했다. 고국을 떠난 조선인들은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기 위해 귀환길에 오르게 되는데, 1945년 8월 일본에는 220여만명의 조선인이 있었다. 

이들은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모여 들었다. 1947년 일본에서 온 귀환자 수는 약 186만명에 달한다.

광복 72주년을 기념하여 남긴 학생들의 기록
광복 72주년을 기념하여 남긴 학생들의 기록

"나는 대한 사람이다" "광복절이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 "봄이 찾아온 날" "승리의 함성"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 "태극기 휘날리다" 등등의 문구가 보인다.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은 8월 15일 광복절부터 임시공휴일인 8월 17일까지 개관하며 8월 18일은 휴관한다.

코로나19에 따른 안전한 관람을 위해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수칙을 준수하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 관람객을 맞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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