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소요산(逍遙山)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곳곳에 녹아있다. 소요산 높이는 587m로 주봉(主峯)은 의상대이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 경기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645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개산(開山)하여 자재암(自在庵)을 세운 이후,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평소 산행보다 느긋하게 고양시에서 출발하였으나, 가는 곳곳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오늘 산행코스는 소요산 주차장 – 매표소 – 일주문 – 원효폭포 – 자재암 – 하백운대(440m) – 중백운대(480m) – 상백운대(560m) – 칼바위능선 – 나한대(571m) – 의상대(587m) – 공주봉(526m)을 거쳐 구절터로해서 하산하는 코스다. 산행을 안내하는 표지판에는 4시간 코스로 안내되어 있다.

안개낀 소요산 주차장
오전 9시 20분경, 안개가 잔뜩 낀 소요산 주차장

소요산 주차장 포장마차에서 김밥과 따뜻한 국물을 먹고 오전 10시경 산행을 시작하였다. 안개낀 주차장을 벗어나자 햇빛이 비치면서 등산객을 맞이하는 듯, 소요산 정경이 눈부시다. 햇빛과 어우러진 안개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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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나면서 안개와 햇빛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요산 등산코스 안내판이 보인다. 3개의 코스 중에서 가장 먼 코스인 3코스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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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등산코스는 안내판에서는 3코스에 속한다. 
지도
소요산 지도, 자재암에서 시작하여 공주봉을 거쳐 내려올 수 있다. 

일주문은 한창 공사 중이다. 소위 리모델링하는 모양이다. 일주문을 보지 못해 조금은 서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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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일주문 모습

일주문을 지나 조금가면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대사와 그의 부인인 요석공주(瑤石公主)의 사랑이 깃든 소요산의 명소 원효폭포와 원효굴이 나온다. 원효대사가 폭포 오른쪽 석등에 앉아 고행수도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왕인 무열황(무열왕)의 딸로 일찍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러 있었다.

이 당시 30대 나이의 원효라는 스님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미면서 “그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당시 임금이었던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賢人)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라면서 요석궁에 있던 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여 후에 대유학자가 된 설총을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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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폭포와 원효굴, 좌측 폭포가 원효폭포이고 우측이 원효굴이다.

원효폭포를 지나 백팔계단을 거쳐 조금 올라가면 자재암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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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폭포를 지나 자애암을 가기 전에 백팔계단이 나온다.

자재암(自在庵)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경에 원효대사가 개산하여 산 이름을 소요, 절 이름을 자재암이라 하고 수행을 쌓던 곳이다.

그후 고려 광종 때와 조선 고종 때 각각 중창한 적이 있었고, 이때 사찰명이 영원사로 개칭되기도 하였으나 곧 다시 자재암으로 부르게 되었다. 화재로 소실돼 조선 고종 9년 3개 건물로 복원되었다.

현재 건물은 6.25 전쟁 때 전란을 입어 그 후 복원된 것이다. 1981년 사찰 경내에 있던 구 상가촌을 지금의 상가지역으로 이전시키고 일주문을 신축하는 등 환경을 일신하여 청정한 사찰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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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 전경

자재암을 지나 하백운대로 향하였다. 도중에 너무 가파르고 계단 사이의 높이가 높은 계단이 많아 산행의 기쁨보다 계단을 만든 동두천시에 대한 불만이 터저 나왔다. 도대체 계단을 이렇게 만든 이유나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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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히 가파른 계단

하백운대(440m)는 소요산 백운대 능선의 제일 아래 봉우리로 이 위로 중백운대와 상백운대를 거쳐 의상대, 공주봉으로 이어지는 말굽모양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요산은 일찍이 절묘한 산세, 수려한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단풍으로 유명하다.

양사헌, 이율곡, 성혼, 허목 등 당대의 문인, 학자, 시인들이 이산을 찾으며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이산에 머물며 수행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갈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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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운대

 

소요산 일주문 왼편 백운대 등산로의 상백운대, 중백운대, 하백운대의 중간봉우리로 푸른 산과 붉은 단풍 그리고 흰 구름이 어우러지는 명승이기에 이를 중백운대(480m)라 이른다. 하백운대에서 중백운대까지는 가파른 암릉이다. 

고려말의 고승이자 해동불교의 법조인 태고 보우선사는 "백운암의 노래"라는 시에서 이곳의 절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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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백운대에 있는 소나무

산세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단풍과 청량한 하늘 전체에 유유히 흐르는 흰구름이 어우러져 문자 그대로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이곳을 상백운대(560m)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자의 난으로 실각한 이후 이곳 소요산 아래 행궁을 짓고 머물며 불교 수행에 힘썼는데 그는 자주 이곳 백운대에 올라 경치를 즐기며 동시에 자신의 회한을 달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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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백운대와 우체통

 

소요산 단풍
소요산 단풍

칼바위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뽀족하게 생기고, 크고 작은 편마암들의 바위라는 의미이다. 상백운대에서 시작하여 선녀탕 입구 하산로까지 약 500m 가량 연속으로 이어진 조금은 긴장되는 구간이다. 

수려한 소요산의 절경을 한층 더 뽐내주는 칼바위는 그 기세나 산세가 웅장하고 노송과 함께 절경을 이루며 뒷편으로 소요산 지맥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연결되어 마치 용의 등처럼 동두천의 동북쪽을 휘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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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 능선

나한대(571m)는 소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오른편에는 의상대와 공주봉이 위치해 있고, 왼편에는 선녀탕 하산로 칼바위와 상백운대가 위치해 있다. 

나한의 의미는 불교를 수행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이르는 명칭으로 신라시대 원효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초에 나옹 등 여러 고승들이 수행하였던 장소이다.

특히, 조선 태조가 이절에 머물며 절의 면모를 일신한 이후, 자재암이 크게 번성하자 절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봉우리들을 불교와 관련된 명칭으로 부르는 중에 이곳을 나한대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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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대

의상대는 동두천의 명산인 소요산의 주봉으로 해발은 587m이다. 마치 산을 바라보았을 때 앞으로는 동두천시의 상.하봉암동이 바라보이며, 그 건너편으로 파주의 감악산이 보인다. 뒷편으로는 소요산 지맥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마치 용의 등처럼 휘감아져 보인다.

조선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며 자재암을 크게 일으킨 후, 자재암을 둘러싼 소요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불교와 관련된 이름으로 불렀다. 이 봉우리는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을 기려 소요산의 최고봉을 의상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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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

우리는 자재암에서 시작하여 의상대를 지나 공주봉(526m)에 도착했다. 이를 역방향으로 등반하여 소요산 일주문에 들어서서 우측능선으로 오르면 첫번째 만나는 봉우리가 공주봉이다. 

전설에 의하면 소요산에 자재암을 창건하고 수행하던 원효스님을 찾아온 요석공주가 산 아래 머물면서 그 남편을 사모했다고 한다. 이 공주봉의 이름은 요석공주의 남편을 향한 애끊는 사모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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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봉 안내도

공주봉에서 하산하기 시작하다 거의 끝부분에 오면 구절터가 나타난다.

구절터
구절터

소요산을 한바퀴 완주하는 동안 안개는 물러가고 소요산 입구가 환하게 보인다.

입구에서 간단히 김밥을 먹고 출발하여 다시 입구에 도착하니 6시간 정도 걸렸다. 조금만 쉬고, 먹는 것도 간단히 하면서 산행을 한다면 4시간 정도가 정상적이라고 한다.

중간 중간에 자주 쉬고, 점심 식사 시간도 가지면서 산행하면 6시간 정도는 걸린다. 시간을 내어 여유롭게 등반해 볼만한 곳이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사랑도 느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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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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