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매듭 ; 남편의 그림자, 달빛아래 숨기놀이 하는 7남매나는 친정에서 딸 셋으로 성장했다. 아버지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 와서 같이 지내다 돌아가셨다. 남편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장인・장모한테 남들이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효자였고 우리는 생전 싸움을 안했다. 애들 앞에서 큰소리 내 보지 않았던 우리 품에서 자란 큰딸 주신이가 “엄마 나도 시집가면 엄마처럼 살 줄 알았더니 싸울 일이 왜 이렇게 많아? 엄마는 어떻게 안 싸우고 살았어?”싸울 일 없는 부부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나. 참는
[고양일보] 무명천에 핀 목단꽃은 고덕면 상장리 시골 마을, 여산 송씨 할머니와 많이 닮았다. 365일 내내 고단했던 그때는 무명천 밑에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매듭을 풀 수 없이 하루하루는 뒤엉켰다. 한 올 한 올 풀어가면서 무명천 위로 목단꽃이 피어올랐다. 한숨과 세월로 한 땀 한 땀 놓은 수는 자태 고운 목단꽃은 코끝을 간질거리는 향기 대신 80년 켜켜이 쌓인인생의 향기로 마당 한 편에 도란도란 모여 앉았다.발그레한 뺨이 붉어 꽃봉오리 같던 봄날의 청춘을 뒤로하고 이제는 고향 마을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다. 아득히 멀리 와 버린
황장연 (1932~)"나 파독 광부출신이오."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어르신의 89년 인생 앞에서 가슴부터 뛰었다. 숙연해지는 마음은 그 다음이었다.“회장님 점심 뭐 드셨어요?”“불백으로 먹었어요”불고기 백반을 불백 이라며 젊은 친구들의 언어를 쓰셨다. 89세의 어르신은 아직도 사회와 소통의 통로를 열어두고 계셨다. 감색양복에 아이보리색 넥타이로 감각도 놓치지 않으셨다. 손수 골라 매셨다는 영국신사 황장연 회장님.내가 파독 광부로 떠나 있을 동안 아내는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4살 5살 연년생 남매를 돌보고 있었다. 미안하고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