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소개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의 시선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스물네 가지 디자인의 가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의 고민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에서 시작한다. 지은이 박현택은 주변 환경과 사물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찾으며 ‘디자인’이란 특별하거나 번쩍번쩍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산소처럼 흔해서 그 존재를 쉽게 잊지만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상 속 디자인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나무의자, 삽, 포스트잇, 계단 등에서 개선문, 숭례문, 블랙다이아몬드 등까지 스물네 가지 이야기를 통해,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를 넘나들며 일상적 디자인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한국 디자인의 정신에 대한 지은이의 성찰과 주장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왜, 누구를 위하여 디자인하는가?’라는 디자인의 인문성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진짜 의미 
꾸밈의 기술이 아닌 삶의 태도로서의 디자인을 말하다

지은이는 일상에서 편리하게 활용하는 다양한 제품들의 평범한 기능과 특성에 주목하며 이를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지은이가 말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의식하지 않을 때 나에게 와 나를 편하게 해주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그 무엇이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중의(衆意)적 의미를 내포한다. 어느 시대보다 디자인이 많이 언급되는 디자인 과잉의 시대임에도 오히려 진짜 디자인은 드물다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디자인이 끊임없이 회자됨에도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디자인을 잘 모르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담았다. 이 책은 디자인이 소수의 디자이너와 소수의 사용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디자인이 태동하던 시절부터 내세웠던 이념, 디자인은 ‘만인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예술문화 이야깃주머니를 펼치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동서고금의 여러 사례를 통해 디자인의 표현과 이념이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해왔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9세기 근대 의식의 발현으로서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언급하다가도 고대 중국 문화에서의 ‘글자의 의미’를 천착하기도 한다. 조선의 막사발과 추사의 예술혼에 주목하다가 현대의 백남준과 이우환을 대하는 한국인의 천박한 쇼비니즘에 일침을 놓기도 한다. 또한 지은이는 각국의 역사와 지리적이고 생태적인 환경에서 빚어진 디자인의 표현적 특성에도 주목하며 북유럽 디자인과 이슬람 문화권의 디자인, 일본의 디자인 특성 등에 관한 흥미로운 촌철살인을 늘어놓기도 한다. 

디자이너의 고민과 애정을 담아, 한국판 미술공예운동을 말하다
“뛰어나거나 비범하지 않아도, 그저 그런 것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범람하지만, 디자인의 가치·비전·윤리가 궁색해지는 역설적인 시대다. 지은이 박현택은 디자이너의 고민과 애정을 담아 ‘지금의’ ‘여기의’ 미술공예운동, 디자인의 신 패러다임을 선언한다. 디자인이 지금까지 만드는 일, 즉 제품과 기술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연결시키는 매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무언가를 살리고 재생시킬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자고 말한다. 누구나 뛰어나려 할 때, 뛰어나거나 비범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그저 그런 것에도 충분히 아름다움은 숨어 있다는 지은이의 메시지는 따뜻하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읽는 독자는 지은이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결국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의 ‘평범함’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평범함이 누적되고 숙성되어 우리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디자인 정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추천사

박현택은 전작 『오래된 디자인』에서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시각 이미지의 가치나 맥락을 읽어내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 『보이지 않는 디자인』에서는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과 미학적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든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 디자인’의 현대적 숙명을 직시하면서 사물 탄생의 원래적 의미와 그것을 둘러싼 주변과의 관계를 되짚어본다. 그의 글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평범한 상식의 위대함을 일깨운다. 끝없는 욕망으로 덧칠한 물욕의 시대에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을 꿈꾼다. 새롭게 돌출된 디자인으로 주변을 제압하려는 게 아니라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을 이야기한다.
국립전주박물관 관장 김승희

최고의 형태가 있다면 특별한 형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평등과 투명성의 디자인을 통해, 자신을 비추고 주장하기보다는 주변을 드러내는 친밀한 가상에 대해 말한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통해 현대적 삶의 의미와 배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하고 비진실을 드러내는 태도로 삶의 진실한 기쁨을 반추한다.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교수 김개천

디자인은 영국인 집사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우리 삶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지 디자인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디자인이 요란해지고 주인공이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런 현실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디자인의 제자리를 잡아주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자인 집사. 그런데 이 집사의 안목과 입심이 여간 아니다. 은근히 질투가 난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

□책 속으로

도시의 상징이 될 만한 것들을 빛내기 위해서 도시는 간소한 배경이 되어야 한다. 얼음이 담긴 위스키가 눈부신 호박색을 드러내려면 아무런 특색이 없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있어야 하듯이.
17-18쪽, 「그대로 좋다」에서

슈퍼노멀은 디자인이나 시각 문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슈퍼노멀의 정신은 뛰어나지 않고 비범하지 않은, 극히 일상적이고 그저 그런 것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내 비록 ‘엄친아’ 부류에 속하지 않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이지만 결코 기죽지 않고 철저히 정상인 채로 살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화두이기도 하다.
33쪽, 「슈퍼노멀」에서

일반적으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행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의 것을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관리하고 보살핌으로써 그 특유의 광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42쪽, 「섹시하지 않은 쓰레받기」에서

이제 평범함이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평범함의 지향이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이고 퇴행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조작을 멀리 하자는 말이다. 무심하지만 성실히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된 가치를 담아내는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67쪽, 「평범함을 취하다」 에서

문명의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디자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디자인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자연이라는 것은 모든 요소의 조직의 원리가 그 요소 간의 착종 관계에서 상황적으로 스스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도올 김용옥 / 고전학자·사상가)
71쪽, 「아포리즘」

사실 하나나 통합은 그 자체로 선악이나 옳고 그름이 없다. 분열로 혼란스럽기만 하다면 당연히 ‘하나’나 ‘통합’은 중요한 가치가 된다. 하지만 개성과 자유, 창의를 지향하는 시대라면, 하나보다는 아홉이어야 하며, 통합보다는 변화나 분방함이 시급하지 않을까.
99쪽, 「태극」에서

지각하는 것, 보는 것의 더 깊은 행복은 효율성의 부재에 있다. 사물을 착취하지 않고 그에 머물러 있는 오랜 시선에서 깊은 행복이 나오는 것이다. (한병철 / 철학가·문화비평가·베를린예술대학교 교수)
117쪽, 「아포리즘」

문이란 공간과 공간이 마주치는 접경이며 두 세계를 연결하는 지점이다. 열고 들어가거나 나가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다. 이 문이 의미심장하다면 그것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대가 연결되는 지점으로서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이란 수백 년 동안 가꿔온 인문과 예술, 현대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적인 근력을 말하는 것일 테다. 아시다시피 조선은 일상생활 속에서 물질과 정신의 합일을 지향했던 사회다. 그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가꾸어갈 때 이 문은 문으로서의 의미와 국보 1호라는 명분이 뚜렷해진다. 숭례문은 감각적으로 주목 받고 돋보여야 하는 물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며 갈무리와 차단을 경계 짓는 이념적인 대상이다.

갈무리할 것은 무엇이고 차단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149쪽, 「숭례문은 빛나야 하는가」에서

장례 내지는 죽은 뒤의 집, 즉 무덤을 위한 디자인도 가능하지 않을까. 겨우 공동묘지를 광고하는 인쇄물이나 무덤의 돌 장식 따위를 디자인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왜 장례식과 장의차와 무덤과 묘역은 여전히 혐오스럽기만 한가? 살아 있을 동안 썼던 책상, 가방, 스마트폰, 신발, 자동차, 아파트는 모두 멋지게 디자인되어, 그리하여 가지고 싶었고 삶의 작은 위안이 되었던 것인데, 죽을 때와 죽은 뒤에는 왜 그런 혜택이 없는가 말이다. 억울하면 죽지 말라고? 그게 가능한가? 죽어야 된다. 죽을 수밖에 없으니 하는 말이다. 물건이나 의복 따위는 예전보다 훨씬 멋지고 좋은 걸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죽을 때나 죽은 뒤의 형편은 그 옛날에 비해 형편없이 후질 뿐이다.

이렇게 후진 죽음을 예약하고 있다면 어찌 지금의 삶이 후지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266쪽, 「죽은 뒤의 집」에서

□차례

삶을 아름답게 하는 디자인의 시대를 그리며

그대로 좋다
슈퍼노멀
섹시하지 않은 쓰레받기
자연을 담은 디자인
평범함을 취하다

이름을 남겨야
메이드 인 코리아
태극
글자의 숲

과거와 현재의 이중주
블랙다이아몬드
숭례문은 빛나야 하는가
고등어 비린내
백화점이 되고 싶은 박물관?

포스트잇
‘신사용’이 어디 있어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는데
삽질하고 있네
5달러짜리 수입 가구
이발소 디자인

소나무골 남쪽 채마밭
벽화 마을
죽은 뒤의 집
어린아이처럼 쓰는 법을 알았다

책을 덮으며

□지은이  

박현택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몇몇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연이 닿아 이십여 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박물관’ ‘디자인’ ‘문화’의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디자인이 외적인 꾸밈새에만 함몰되고 있는 현상에 회의가 일었다. 다시 디자인을 생각하며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누구를 위해 디자인 하는가’의 문제와 맞닥뜨렸다. 그리고 디자인은 ‘꾸밈의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양식’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책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그러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기획·출간한 책으로 『오래된 디자인』 『한국전통문양집』 등이 있으며, 공동 집필한 책으로는 『디자인은 독인가, 약인가?』 『조형』 『디자인은 죽었다』 등이 있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 박현택지음/예술, 문화, 디자인, 인문/280쪽/15,000원/2016년 12월 20일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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