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난생 처음 휴양림을 찾아가던 날. 번잡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아담한 들판이 펼쳐지는 국도를 따라가다 심하게 굽이치는 S자 커브길을 만났다. 요동치며 20분 가까이 달려가 끝에 마주한 울창한 숲. 숨을 깊이 들이마시니 산소와 피톤치드 가득한 청량한 공기가 박하사탕처럼 시원하게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향긋한 나무냄새, 지저귀는 새소리, 자박자박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평화. 숲을 바라보며 걷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하면서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언젠가는 숲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 때가….

‘숲 속의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 김용규. 한때 서울에서 벤처기업 CEO로 일했던 그는 삶의 터전을 숲으로 옮겨 사람들에게 숲을 해설하고, 농사를 짓고, 숲학교 ‘오래된미래’와 연구소 ‘자연스러운삶연구소’를 만들어 숲을 공부하고 있다. 숲과 더불어 살아온 10년 세월의 성찰과 사유를 담아낸 이 책은, 숲 속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부터 저자가 마주한 사람들, 숲이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원생활이란 생각하는 만큼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만은 아니다. 불편함, 외로움, 쓸쓸함 등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이 책도 결코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읽는 내내 이상할 만큼 마음이 평화로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실수 혹은 실패가 주는 두려움에 갇혀 발을 내딛지 못하는 동안에도, 숲에 사는 나무들은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새 가지를 뻗어내면서도 나무는 도달하고 싶은 하늘에 닿을 수 있을지 닿지 못할지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무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장 중에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가지들이 있고, 그것들이 발 아래로 떨어져 썩어야 비로소 다시 힘이 되어 더 단단한 줄기를 성장하게 도울 것이라는 사실을. 본래 실수이거나 실패라는 놈은 그렇게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처럼 숲의 섭리에 우리의 삶을 대입해봄으로써 우리는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악착같이 바둥바둥 하지 않아도 삶의 균형은 서서히 맞춰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의 보잘것없음과 위대함을 동시에 깨달으며, 이를 통해 오늘을 살아낼 용기와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뙤약볕과 소나기, 거센 바람 속에서 힘겹게 자신을 지켜내며 꽃을 피우는 여름 꽃처럼 눈물겨운 우리들의 삶. 저자는 숲 속의 삶을 통해 얻은 자연의 가르침, 마주하게 된 성찰과 인연을 기록한 이 책이 여름 꽃에 찾아드는 나비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고단한 우리들의 삶에 위안과 용기를 주는 소박한 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삶, 도시인들은 회색빛 도시의 삶에 지칠 때면 자연의 기운을 받으며 몸과 마음의 활기를 얻곤 한다. 주말이면 끝없이 자연 속으로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이 그 반증일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숲을 찾아 오래도록 걸어보고 싶다. 숲과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느릿한 걸음 아래 폭신하게 밟히는 흙의 촉감을 느끼며 자연이 주는 소박한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셀리나( 기획출판 에이전시 플랜비 대표)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 김용규 지음. 그 책 펴냄. 256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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