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론 뮤익의 작품

수영복 차림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인상적인 노부부의 모습이다. 자신의 팔을 쓰다듬는 남편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 잔잔한 평안의 행복감이 느껴진다. 극사실주의 조각가인 론 뮤익(Ron Muek)의 예술세계는 우리에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특별함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두고 어느 평론가는 "개념이 중시되고 있는 현대 미술에서 개념적 설명 없이도 받아들여지는 작품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 부가적인 설명은 필요없다. 그저 사실적인 조각상에 감탄하면 될 뿐, 그의 작업은 그저 획기적인 조형성,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작품이다."라고 말한다.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미지에 관해 물어볼 경우 돌아오는 대개의 답은 '의지력, 모험, 도전, 용기, 결단력, 실천력' 등의 남성적 단어이다. 나는 이왕이면 '여유가 있고 부드러운 남자'로 기억되고 싶은데, 그보다는 '판단과 결단이 빠른 속전속결의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또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불투명, 불확실한 시대에서 이 또한 필요한 성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무개성의 사람에게서는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성품과 달리 젊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우유부단, 흐리멍텅'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똑부러지게 해나가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중심을 못 잡은 채 결단력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는 일이 한 가지도 없었다.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내 옛날의 성품이 '우유부단, 흐리멍텅'이었다고 말하면 곧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내가 판이하게 변해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I am not I was!

우유부단하고 흐리멍텅한 내가 변한 시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남을 체험하고 확인한 후부터였다. 

왜 젊었을 때의 나는 우유부단하고 흐리멍텅하며 세상살이가 자꾸 힘들어지고 버겁게만 느껴졌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 안에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험한 세상에서 내가 붙잡고 나가야 할 팩트(fact)가 없었다는 것이다. 삶의 지표도, 그 어떤 목적도, 존재 이유도 모른 채 그때 그때 주어지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기 바빴던 까닭이다. 내 안에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용기 있고 박력있으며 결단력 있게 내 앞에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실천력을 보일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세상살이가 자꾸 힘들어지는 것은 우리가 사실로 붙잡을 수 있는 확신의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뜬구름 잡듯 공허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내 젊은 날의 초화상이 그렇듯,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청년 자살율이 급증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이 터널을 통과 후 더 밝고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다. 안으로 걸어들어갈수록 더욱 캄캄한 동굴 속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절망감만 든다. 

론 뮤익의 작품

내가 위의 극사실주의 조각가인 Ron Muek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의 작품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 아니라, 그 어떤 개념의 열거나 특별한 부가적 설명이 필요 없이, 그 작품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미술의 문외한인 나에게 피카소(Pablo Picasso) 같은 거장의 작품세계는 솔직히 어렵다. 누가 옆에서 해석해주지 않으면 난 그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채 흘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론 뮤익은 그렇지 않다. 그 작품 앞에서 그 작품을 '본다'는 행위 하나 만으로 모든 개념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그는 눈으로 보는 사실(fact)만을 중요시 한다.

촛불이 타오른 결과 국회는 박대통령에게 탄핵 가결의 아픔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특검과 헌재의 진행과정에 따른 결과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특검을 맡은 박영수 검사는 수사과정에서 오직 팩트(fact)만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이란 눈에 보여지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눈에 보여지지 않고 감추어진 비밀스런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사실화 시켜서 국민들의 눈에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얼마나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셨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곧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성탄의 의미이다. 시국이 혼란스럽고 어두운 가운데 창문으로 비쳐지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을 보기 어려우며, 거리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 어렵다. 이럴수록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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