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전태일문학상 및 제11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은 지난 11월 19일이었다. 수상자 발표는 8월 30일로 석 달 훨씬 전의 일이다. 묵은 소감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문단에서 꽤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학상인데 고양시 이정화 학생(저동고 3학년)이 전태일재단 이사장상(시 부문 1위)을 수상했다. 그러니 묵힐 축하 인사도 아니겠다 싶었다.

‘학교 수업’ 마감을 목전에 둔 고3 학생들은 들뜨다 못해 날아다닐 기세다. 기말고사를 끝낸 1학년, 2학년 아이들까지 썰물처럼 밀려 나간 교정에서 이정화 학생을 만났다.

“수시 준비하면서 마지막으로 응모했던 문학상이에요. 입시 부담을 내려놓고, 주변의 조언에도 귀를 닫고, 제가 쓰고 싶은 방향으로 완성했어요. 결과가 좋아서 무척 기뻤습니다.”

말글이 짧은 문인들과 거리가 멀다. 예비 시인치고 몸짓과 표정도 발랄하다. 달변은 아니지만 분명한 목소리, 상대를 응시하는 힘도 당차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책도 안 읽었어요. 제가 TV에서 떨어지지 않으니까 부모님께서 극단의 조치를 내리셨죠. TV를 없애버리셨어요. 할 게 없으니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문학 특기자 전형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면서부터. 막연하게 글 쓰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입시 준비를 통해 시 공부를 하면서 시라는 장르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짧은 시 공부 기간을 생각하면 경력이 화려하다. 이정화 양은 한국시인협회 대상, 춘우청소년문학상 1위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여 차례 수상, 명지대 문예창작과에도 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

시는 글로 쓰는 사진

온종일 책상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옆자리 사람의 모습은 꿈이라는 글자를 닮았다.

도수가 높은 안경에 작아진 눈동자는
내일을 환산해 입력하는지
출석장부에 붉은 글씨로
오늘을 적어냈다

옆자리 앉은 사람은 자주 다리를 떤다.

하루는 너무 빨라서 박자를 맞춰야만 한다.

느린 박자에 발을 맞출수록
내일은 멀어지고
실뭉치만 더디게 풀어질 뿐이었다

-「지하공장에서」 中에서-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은 「지하공장에서」, 「떠난 사람들」, 「이방인」3편이다. 「지하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삶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그려냈으며, 「떠난 사람들」은 서울에 소금을 공급하던 동네였다는 ‘염리동’ 하층민들의 쓸쓸한 생활 터전을 그린 작품이다. 「이방인」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아버지의 모습을 낯설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기저에 깔린 흐름이 화자의 눈에 비친 가족 또는 이웃들의 현실이고 삶의 풍경으로 연결되어 있다. 심사를 맡았던 시인 김성규, 박소란, 맹문재, 배창환 씨는 “시상을 풀어내고 묘사하는 능력이 차분하면서도 섬세하다” 며 평을 전했다.

“고교생 신분이라서 직접적인 경험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없는 경험을 꾸미고 싶진 않아요. 제 일상 속에서 찾아낸 소재를 제 목소리로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하공장에서」는 이정화 양이 느낀 교실 풍경이다. 「떠난 사람들」의 배경이 된 ‘염리동’은 자주 들리던 홍대 인근에서 알게 되어 마을의 옛 배경까지 짚어 올라가게 되었다.

시와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바른 고집, 그녀가 손꼽는 시인의 이름만으로도 호불호를 알겠다.

“이경록 시인, 기형도 시인, 최승호 시인의 작품들이 특히 좋아요. 진솔하다고 해야 하나, 삶 속에서 끌어 올린 고민들이 그대로 느껴지잖아요. 저는 시가 ‘글로 쓰는 사진’이라 생각해요. 그리는 게 아니라 찍는 거라고요.”

작가로서의 튼실한 싹을 만나다

이정화 양의 말대로, 그녀가 시상을 ‘찍어가는’는 수순은 이런 식이다. 얼마 전 키우던 강아지가 자신을 물었다. 부모님은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왜 자신을 물었을까, 답답하기도 하고 밖으로 몰린 강아지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며칠을 답답하게 보냈다. 무거운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 이후로 한동안 유기견 센터와 모란 시장을 전전했다. 목숨을 담보 잡힌 유기견 센터의 생명들, 육견 시장으로 내몰린 모란 시장의 개들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로 쓰는 사진’의 소재를 하나 찾았고, 요즘은 강아지가 남긴 시상을 그래도 따라가는 중이다.

이정화 양은 간만에 주어진 여유를 여행으로 풀어볼 생각이다.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상상했던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지, 그 생각만으로 요즘은 하루 종일 가슴이 뛴다.

이제 막 알아가지만, 제대로 시작하고 느끼는 듯한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 같다. 작가로서의 튼실한 싹을 만났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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