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정신)는 반드시 있다

서양에서는 근대에 데카르트에 의해 비로소 인간 개인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각이 분명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데카르트보다 훨씬 전에 소크라테스가 인간 개인으로 ‘나’를 설명하기는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을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정신세계인 ‘영혼’으로 나누어 알고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이고 영혼은 영원하기에, 그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은 채 기쁜 마음으로 독배를 마시고 흔쾌히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세계는 육체의 세계와 달리 보다 더 아름답고 보다 더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근대에 와서 데카르트에 의해 보다 분명해집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영혼’개념이 데카르트의 ‘정신’개념으로 발전하고, 이후 ‘자아’ 개념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발견한 것일까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이 실린 그의 글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나는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기하학적 문제에 있어서조차 추리를 잘못하여 오류 추리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전에 증명으로 인정했던 모든 근거를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렸다.
끝으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하나의 실체이고, 그 본질 혹은 본성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며, 존재하기 위해 하등의 장소도 필요 없고,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나, 즉 나를 나이게끔 해 주는 정신은 물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며, 심지어 물체보다 더 쉽게 인식되고, 설령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스스로 중단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위 글에서 데카르트는 오직 진리탐구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 탐구란 앞서도 말했듯 참된 이치, 변하지 않는 원리, 확고부동한 근거가 되는 출발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고부동한, 영원불멸한 출발점을 찾기 위해 데카르트는 모든 것들을 의심합니다.

의심한다는 것은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 근거가 없는 모든 것들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1 더하기 1은 2라는 사실조차 악마의 속임수에 의해 주어진 거짓말일 수 있다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의 과정을 통해서-방법적 회의란 확고한 출발점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방법입니다- 데카르트가 최종점에 도달한 것이 바로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해도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의 현재 상태, 즉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생각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의심하고 있는 ‘생각을 근거로 나는 존재한다’고 데카르트가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직접 물질적으로 만질 수 있는 우리 몸이라는 대상이 있는데 왜 굳이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신’이 필요할까? 하고 데카르트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신체 감각에 의해서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몸이 가볍게 느껴지지만, 피곤하고 괴로울 때는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정신은 그것 자체로서 완전하고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정신은 다른 모든 것들을 알게 해 주는 출발점임을 데카르트는 주장합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정신을 갖고 있기에, 생각하는 인간의 정신이 곧 인간의 자아이고 진정한 ‘나’라고 데카르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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