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처음으로 설명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책에서 어떤 내용의 설명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이미 갖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생각은 누가 가르쳐주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기록상으로 처음,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분리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설명이 전부일까요? 인간, 즉 ‘나’에 대한 이해방식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져 왔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절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원시인들이 생각했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전에 여러분 자신의 몸을 한번 만져 보십시오. 우리 몸뚱아리는 굉장히 낯이 익습니다. 친숙한 팔다리와 머리를 만질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모르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무수히 많은 풍경이 바뀌고 무수히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의 인간들보다 원시인들에게는 모르는 낯선 것들이 더욱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등을 엄격히 분리하지 못했습니다.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이것들은 모두 하나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형시켜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의 모습이란 인간 자신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입니다.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세계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정신세계이고 외부 세계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입니다. 즉 낯선 것이지요. 그리고 삶은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모습이기에 낯익고, 죽음 이후의 세계는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낯설고 두렵습니다. 또한 혼령과 신체의 관계에서 신체는 낯익은 것이고 혼령은 죽음의 세계, 외부의 세계, 낯선 것이 됩니다.

근대 이후에는 명확히 나타나는 엄격한 분리, 자기 자신과 자신 외부에 대한 분리 감각이 원시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과 외부세계를 분리시키는 자아관념이 원시인들에게는 없었음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원시인들의 생각하는 능력이 문명화 이후의 오늘날 인류의 것처럼 체계적이거나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원시인들은 자기 자신과 외부세계, 즉 자기와 외부 환경을 분리할 수 있는 생각이 없었으므로 분명한 자아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1살 이전의 어린이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나’라는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자아(自我, self)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즉 ‘나를 나이게끔 하는 것’입니다. 자아는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요소이며, 이 자아에 대한 생각은 원시시대, 근대시대, 현대시대 등 인간의 지적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 소년, 청년,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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