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와 달리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발전하게 된 계기는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 즉 지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은 다른 고등동물들과는 다른 고차원적인 사고과정으로, 인간은 그러한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문명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런 고차원적인 사고능력들을 가능하게 하고, 또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중요 '개념(槪念, Concept)'들입니다.

개념이란 인간, 자연, 행복, 용기, 이성, 감성, 정의, 평화, 자유, 평등 등에 대한 ‘개략적인 생각’으로, 우리가 쓰는 단어들 중에서도 아주 많이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우리가 교과서나 위인전을 통해 배우는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 과학자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전까지 인류가 알 수 없었거나 불분명하게 알았던 생각의 내용을 분명하게 개념으로 재정립하거나 새롭게 만들어 인간의 생각을 확장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위한 진리의 횃불을 밝혀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과학자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위인들의 생각, 즉 위인들이 만들어낸 많은 개념들을 그 의미를 알고 사용한다면 우리 생각이 곧 그런 위인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커질 수 있습니다. 황상이 스승인 정약용 선생의 말씀을 평생 간직했듯이 말이지요.

황상은 정약용 선생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들도 정약용 선생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정약용 선생님의 지혜로운 생각이 담긴 그의 책을 통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돌아가신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각을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독서를 통해서입니다.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의 지혜가 책에 담겨서 후대에 전달됨으로 인해 오늘날 인류가 이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바보는 100년 전의 천재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류의 지적 발전 과정이 축적됨으로 인해,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공부함으로 인해 우리의 사고과정이 과거와는 다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최근 상황은 좀 더 놀라운 발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세기 동안 이루어진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지적인 능력을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변화 발전시켰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10여 년간에 이루어진 과학의 발전은 지난 3000년 동안 이루어 온 인류의 모든 지적 자산들을 한 단계 더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철학에서 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까지 인류가 3000년 동안 고민해서 만들어 놓은, 즉 인류가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생각들이 오늘날 또 다른 발전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위대한 철학자들이 지난 3000년 동안 연구해 온 ‘인간의 이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이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분자생물학과 의료기기의 발달을 근거로 한 ‘뇌과학’은 보다 분명하게, 보다 확실하게, 아무리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인간의 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알려줍니다. 이는 오늘날 철학에 있어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은 인간의 이성 능력을 너무나도 명쾌하게 직접 보여주기에, 과거에는 최소한 100여 권의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었던, 그래도 분명하게 알 수 없었던 인간의 이성작용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오늘날의 변화입니다.

의료기기로 사용하는 fMRI라는 기능성 자기공명장치는 그 장치 속에 인간의 머리를 집어넣으면 인간이 이성적 능력을 발휘하는 부위와 과정을 시각적으로 모니터상에서 보여줍니다. 인간의 이성 작용이 뇌의 어떤 부위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fMRI와 유전공학을 활용한다면, 인간의 이성 작용이 뇌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전기·화학적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고 있구나, 그리고 그러한 전기·화학적 진행과정은 인간의 신경세포인 뉴런에 의해 어떻게 전달되는구나, 그리고 그런 뉴런 세포들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 어느 부분에서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구나 하는 내용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낸 내용들을 통해 인간의 생활모습은 이후 더욱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수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얼굴과 몸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지적 능력 또한 바꿀 수 있고, 자신이 어떤 병에 걸릴 것인지를 미리 알고 고칠 수 있게 됩니다. 성격이 소심하다고, 머리가 나쁘다고, 건강이 안 좋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겠지요. 이처럼 과학은 인간의 생각뿐만 아니라 생활모습 또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인류의 모든 생각, 즉 철학적인 노력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공부를 해 보면 알겠지만 오늘날 과학이 보여주는 몇몇 결과들을 이미 100여 년 전에, 아니 이미 2000년 전에 인류는 과학적 실험이 아닌 생각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이라도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지혜로운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오늘날 과학 발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경의를 갖게 됩니다.

최근에는 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지금까지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인간의 궁금증 중에서 가장 커다란 궁금증은 첫째, 인간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고, 둘째는 인간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두 가지 궁금증은 철학이 다루는 가장 커다란 문제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궁금증을 다음 장에서 하나씩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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