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 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소장)

지난해‘ 스마트도시 조성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래, 스마트시티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서울시에 건설 중인 한 신도시를 방문한 박원순 시장은 “도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로 스마트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들어서는 연구단지에 스마트 인프라 시범단지를 조성해 강소기업의 연구개발과 산학연 협력을 적극 지원하고, 이들이 개발한 신제품과 신기술을 시가 우선 구매해 교통, 상하수도, 에너지, 방재 및 환경관리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당장 도시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교통난이나 에너지 위기에 적극 대처하면서 새로운 국가 성장산업을 발굴해 육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 측면에서는 이 계획이 썩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더구나 이 신도시에는 스마트시티 구상 및 전략 수립에 참여 중인 한 대기업의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발표가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 스마트시티란 무엇이고, 이게 들어서면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어떤 효과가 있고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고민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안에는 건물과 주택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각종 기반시설들이 있다. 도로와 에너지 공급, 폐기물 처리 그리고 안전에 관한 시설들이 그것이다. 각 시설에는 스마트시티에서도 필수 요소인 정보화 설비가 따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스마트시티를 이해하려면 이들을 들여다보면 되고, 만족할만한 스마트시티를 만들어 운영하려면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그것을 해결하는 대안을 만들면 된다. 이들 정보화설비의 대표적인 예로 건물자동화시스템과 주택자동화시스템을 들 수 있다.

건물자동화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건물 안에는 기계, 전기, 조명, 보안, 수송 등 여러 종류의 자동화시스템이 설치된다. 이들은 대개 따로 설치되어 주어진 본연의 기능만을 수행하며 서로 협조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지능형건물시스템을 설치하나, 단지 관리자의 편의를 위한 시스템 통합에 불과하다. 또 기성품으로 개별 건물의 특징을 반영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인 건축주가 비용을 들여 설치하지만, 여전히 공급자의 전유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날로 증가하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다. 관련 분야가 많고 범위도 훨씬 넓은 스마트시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마트시티의 설치와 운영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설치에 따른 비용은 최소화하고 얻어지는 효과는 극대화해야 한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산업으로의 육성은 그다음 순서다. 욕심을 낼 일이 아니다. 자칫 많은 돈을 들여 설치 업체에 이득만 안겨주고 효과는 보지 못해 용두사미가 되기 십상이다. 공공부문은 기반이 되는 효과적인 운영체계를 구축해 설치와 운영단계에 들어가는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기능을 제공해 효과와 만족도를 극대화해야 한다.

한편, 현대 도시에 스마트시티의 기능이 없는 게 아니다. 전기와 지역난방 등 에너지와 물의 공급, 교통정보 제공, 안전관리를 위한 정보화 설비가 잘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급자 시설의 관리를 위해 운영된다. 동일한 기능의 시설이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중복 설치된 꼴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나 소비자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에게 그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스마트시티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시스템이 추가로 설치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개별 건물과 주택의 시설과 함께 소비자 입장에서 이들 시설의 효과적인 활용방안을 검토하는 게 먼저다.

마지막으로, 교통의 편의성 그리고 건설과 운영의 공간적 효율성을 추구해온 기존 도시에 단지 정보화 설비를 추가하면 스마트시티로 탈바꿈되고 만족스러운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상명하달식, 중앙집중형의 구조와 통제방식을 가진 지금의 도시를 미래지향적인 공유 협력식, 분산형 체계로 바꾸지 않고서는 무늬만 스마트시티이기 쉽다. 과거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데 쓰인 도시개발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단지 산업화 시절 도시에서 발생되는 각종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이 스마트시티라면, 그것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도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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