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물러가고 날씨가 따뜻해지니 이젠 미세먼지가 말썽이다. 수도권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전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으로 크게 치솟는다는 보도다. 온종일 안개나 구름이 낀 것처럼 뿌옇다. 출근길에 코와 입을 막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띤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올 봄 꽃놀이는 물론 일상생활의 불편조차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불편함이야 좀 참으면 되겠지만, 우리가 처한 오늘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약 2년 전, 고농도 미세먼지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환경문제로 인식한 정부는 총리 주재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 경유차 관리 강화, 석탄발전소 미세먼지 저감 및 신산업 육성 등의 정책수단을 통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미세먼지 농도를 10년 내에 유럽 주요도시의 현재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게 주된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는데, 이들 정책의 현주소가 궁금하다.

얼마 전엔 보다 못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기도 했다.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 저감조치의 일환으로 서울시에서 출퇴근길 대중교통 요금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하루 5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된다니,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게다. 이웃 지자체에도 동참을 요구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했다. 겉으론 미세먼지 발생원인과 정책 실효성에 대한 생각과 판단이 달라서라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자체들이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도 국민은 해로운 미세먼지를 듬뿍 마시고 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과 내역이라도 속 시원히 알았으면 좋겠다. 경제활동도 둔화됐고 석탄발전량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미세먼지 문제는 왜 심해지는 걸까. 밖에서 흘러들어온 건지, 나라 안에서 생긴 건지, 또 두 가지가 다 원인이라면 그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분명치 않다. 아마도 중국에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스모그와 황사가 태평양 쪽 고기압의 세력이 워낙 강해 대기가 정체되어 이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해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전부다.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우리가 앓고 있는 미세먼지에 의한 대기오염이라는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찾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환자를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문진과 진찰이고, 필요에 따라서는 다양한 검사도 한다. 물론 병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다. 그래야 병을 낫게 하는 올바른 처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모르고 처방을 한다면 그는 돌팔이에 다름 아니다.

병의 원인은 한 가지 일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영향이 큰 원인에 대한 처방이 우선되는 게 마땅하다. 또 병의 원인이 깊고 복잡할수록 치료를 위해서는 오랜 기간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서 방심하고 치료를 중단한다면 병마는 언제든 다시 찾아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미세먼지 관리대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증상이 심한 환자의 고통을 모른 체하며 오로지 원인치료에만 매달리는 의사에게 좋은 평가를 해줄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피하게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기 위한 대증요법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런 처방은 어디까지나 원인에 대한 치료와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대증요법은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대기환경이 좋지 않을 때, 당장 해로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 경우다.

그런 면에서,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의 발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지자체의 시도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적확했는지는 미지수다. 어느 게 맞고 누가 틀렸는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의사가 내린 처방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듯, 대책 시행에 따른 효과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대중교통 요금의 면제나 승용차 2부제 시행과 같이 많은 세금이 들어가거나 국민활동을 제한하는 처방이라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연주자들과 협연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로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듯, 정부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뢰할 수 있는 멋진 대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동의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지자체들의 협력은 말할 나위도 없다. 표를 의식한 정쟁에서 벗어나 시야가 확 트이는 미세먼지 대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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