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목사

지금은 캐캐묵은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정보가 통제되고 단절된 시대에 공산주의자들이 사람을 붙잡아 가두어 놓고 자신들의 생각으로 세뇌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외부와 모든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홀로 지하 독방에 감금시킨 뒤 먹을 것은 불편하지 않게 주었지만, 읽을거리나 들을거리 그 어느 것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인간은 외부 상황과 그 소식에 굶주린다. 듣고 싶어하고 읽을거리를 찾게 된다. 이 때 공산주의 이론에 관한 책을 하나씩 집어넣어 주고,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산당에 관한 소식들을 조금씩 알려 준다. 그의 텅빈 머리는 점점 공산당에 의한 정보로만 채워지고그것이 지식이 되며 신념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좋건 싫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노예로 살아간다. 스마트 폰과 SNS가 활성화 되면서 정보의 힘은 막강해졌다. 말 그대로 우리는 정보 시대에 정보 사회를 살아간다. 모든 것이 정보에 의해 움직여지고 통제된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우리는 정보의 굴레 안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정보는 힘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힘으로 작용되기도 하고, 감옥이 되기도 한다. 정보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역설적으로 철저히 정보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정보의 중심에 있기 위해서는 정보를 지혜롭게 활용하여야 한다.

카톡이나 밴드 등 수많은 정보 공유 공동체들이 나름대로 형성된다. 이 때 확고한 자신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것에 나를 스스로 묶여 통제받게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된 상태라 하더라도 탈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에 묶이는 것이 싫어 이른바 자유를 선언하고 탈퇴할 경우 분명한 것은 이제 그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그 안에서 떠돌았던 모든 이야기들이 자기만 모르는 입장이 되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돼버리고 만다. 그래서 좋건 싫건 우리는 이 정보사회의 보이지 않는 규제를 회피하기가 어렵다.

정보는 '앎'이다. 그리고 힘이다. 격언대로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모르기 때문에 무지에서 기인한다. 알면 여유를 부리는데, 모르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 두려운 것이다. 어떤 불이익의 결과가 뒤따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밖의 움직임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될 때 소통부재에 의한 대통령의 비극을 우리가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자의이던 타의이던 내가 정보 라인에서 아웃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는 윗선에서 일어나는 일의 정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거나 처분만 바라게 하는 것이다. 또 윗사람을 바보 만들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임의로 걸러서 오히려 윗사람을 핫바지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

정보는 비밀 혹은 공유(공개) 형태로 다룰 수 있다. 정보가 비밀이 될 때 몇 사람만의 독점물이 되어 그 비밀정보를 소유한 일부 사람들만의 비밀 집단이 만들어지고 따라서 새로운 권력이 형성된다. 정보의 아웃사이더들은 다음 단계의 수순을 예측할 수 없기에 철저히 지시에 복종하는 하부조직에 속하게 된다. 그나마 거기에서 얻어지는 정보의 부스러기들로 행세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가 발생되면 사람들이 몰리고, 그 때부터 정보의 소유자가 그 모임을 이끌어 간다.

만일 누가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정보를 흘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그 안에 그 정보를 이용한 다수의 힘을 확보하기 위한 꼼수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정보의 힘을 깨뜨리고 정보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철저한 정보의 공유화이다. 정보를 비밀스럽게 소유한 몇몇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정보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게 되면 그 정보는 힘을 잃는다. 누구나 아는 정보를 자기만의 것인 양 으시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정보는 온전한 객관성을 띄고 공동체 모두에게 정당한 분배와 함께 공정성을 유지하며 음흉한 괴물의 으르렁거림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몇몇 부류의 특정한 종교인들에게만 국한되어 읽게 하던 것을 만민이 읽을 수 있도록 '말씀의 공유화'로 개혁의 근간을 이루게 하였던 것과 같다.

정보의 권력에서 자유롭기 위해 역설적으로 철저한 정보의 공유화가 필요한데, 이 정보가 공동체 안에서 유익하게 공유되고 작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팩트(fact)만을 다루어야 한다. 정보는 정직해야 하며 모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가능하면 1인칭 직접 화법으로 아이 메시지(I-message)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누가 그러더라~' 하며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의 말투나, 남에게 강요 또는 설득을 위한 설명보다는 단순히 자신의 생각한 바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고 말하면 될 뿐이다.

셋째, 자신이 공유시킨 내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지지 못할 정보는 금해야 한다.

인간은 원래 정치적 동물이다. 몇 사람만 모이면 그 안에서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서열이 가려지며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진다. 그것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금수저 흙수저가 되고,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운명이 정해지고 만다. 

이것을 깨는 방법은 정보의 공유화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뜻을 모으는 길이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