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목사

이미 꽤 오래 된 이야기다. 미국 지방 도시 어느 병원에 급한 환자가 실려 왔다. 병명은 열사병이었다. 겨우 의식을 회복한 중년의 환자에게 의사가 더위 먹게 된 이유를 물었다.

<사진 = 페라리 홈피>

환자는 차 안이 너무 더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 에어컨을 틀고 오시지 그랬느냐는 의사의 반문에 그는 부끄러운 듯 차에 에어컨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시지 그랬느냐는 의사의 말에 그 환자는 단호하게 짤라 대답했다. "이 더운 날에 자동차 창문을 열어놓고 달리면 사람들이 내가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알게 되잖아요. 난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못해요. 그래서 창문 닫은 채로 차를 몰다 보니..."

 

남자의 로망으로 생각될 만한 멋진 외제차를 빚내어 엄청난 금액으로 구입하고 나타난 H가 우연한 자리에서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목사님, 목사님은 남 흉보고 그런 분이 아니니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제가 지금 타는 차를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요. 특별한 성능의 승차감을 즐기는 재미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폼잡을 때의 기분을 맛보고 싶었거든요. 내 차를 보면서 이 차의 주인인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나를 부러워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싶은 것이 아마 이 차를 구입한 첫째 이유가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래요? 그래서요?"

"차를 사고 난 후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며 은근히 차 자랑하는 맛을 즐겼지요. 그들이 부러워하는 탄성을 들으면 속으로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특히 나를 좋아하는 여자들 앞에서는.... ㅋㅋㅋ. 그리고 평소 나를 우습게 여기던 제법 돈푼깨나 있다고 폼잡는 놈들 앞에 이 차를 타고 나타났을 때 기죽어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꼴을 보면서 얼마나 통쾌했는지요..."

"그런데요?" 

"그런데 지금은 별 재미가 없어요. 내가 좋은 차타고 다닌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서 새삼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시기하는 놈들이 쓸데없는 이야기나 흘리고 다니고, 또 어떤 놈은 저를 속물 취급하며 '자기 주제를 모르는 한심한 놈, 실속 없는 놈'이라고 오히려 비웃는 표정들을 짓고 저를 깎아 내리며 아예 피하기도 해요."

"아~ 또 그렇기도 하겠네요." 나는 충분히 연상되는 장면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또 실제로 남이 나를 알아주기 바랐던 마음이 많이 있었는데,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내 존재를 아예 모르니 내 차가 윙~ 하고 지나갈 때 차 오너인 내 얼굴을 한 번 흘깃 스쳐보는 것으로 끝날 뿐이어서 별 의미도 없어요. 특히 현대인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기합리화를 잘해 주어진 자기 환경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기에 자기 처지를 잘 알아 자신의 삶과 나의 처지를 재빨리 분리시켜 다시 자기들만의 동굴로 들어가 버리고 마니까 실상 저와는 다시 무관하게 되죠."

그는 결코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심한 놈이거나 실속 없는 놈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스스로 잘 분석하고 있었다.

내가 진지하게 그리고 아주 흥미롭다는 듯 재미있게 그의 말을 들어주자, 그는 더욱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와 같은 처지의 조폭 같은 친구 녀석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은 더운 날씨에도 항상 운전석의 창문을 열어놓고 다녀요. 팔에는 징그런 문신으로 도배를 하고, 그 팔을 차창 밖으로 쑥 내민 채 담배 연기를 풀풀 날리고 다닐 때가 가장 기분이 좋대요. 좀 웃기는 놈이지요. 그런데 난 더위를 많이 타서 절대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아주 비싼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그의 불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이 알아주는 맛에, 목에 힘주고 살아가는 기분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 그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에게 생각지도 않은 불만을 들으면서 마음 한 구석으로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큰 의미를 주지 않는 그 외제차를 치워버리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는데, 스스로의 자문자답은 그가 지금의 불만을 더 높여가기 위해 색다른 일을 꾸밀 것이지,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가용은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대중 국산차다. 차체가 경차에 가깝기 때문에 좀 묵직한 맛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외관이나 성능 등에 있어 뭐 크게 불만스러울 게 없다.

비싼 외제차나 대중 국산차나 우리나라 정도의 면적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특별한 장거리 이외에는 그게 그거다.

그게 그거가 아니기 위해서는 차가 다르듯이 그 차의 오너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차에서 내리고 오를 때 이외에는 특별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없다.

썬팅된 차 안에 있는 동안은 밖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하여 이 멋진 차의 오너가 나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계속 차창을 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냥 차에서 내리고 탈 때만 신분상승의 기분을 맛보지, 그렇지 않을 때는 그게 그거라는 말이다. 자동차 위 뚜껑열고 퍼레이드 할 것도 아니잖는가...

돈이 있고 여건이 있는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 말들이다. 다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기죽고 살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게 그거니까.

무인 자동차 시대가 열리고, 땅과 하늘을 나는 자동차들이 생겨나게 되면 페라리(Ferrari)나 람보르기니(Lamborghini)나 그게 그거 아닐까?

그 때쯤 되면 예루살렘 입성하는 예수님처럼 나귀 타고 다니는 게 새로운 멋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나 한 번쯤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타고 인생을 유감없이 즐기며 멋진 인생을 구가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멋진 인생'이란 '참다운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서야 누릴 수 있음을 아는 자의 것이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