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자살’을 거꾸로 표기하면 ‘살자’가 되듯이, 영어로  ‘악(evil)’을 거꾸로 하면  ‘산다(live)’가 된다. 이와 같이 악은 삶을 거스르는 것으로 죽음과 관련이 있다. 

모든 악의 최종 집결지는 죽음이다. 악마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며, 악마의 손에 붙들려 마귀의 도구가 되는 영혼은 자신의 영혼만 영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육신도 죽인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통제력을 잃은 병자들이다. 온전치 못하고 불편한(disease) 영혼들이다.

인간의 악(惡)에 대해 예리한 분석력으로 인간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을 전하고 있는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는 <악의 심리학을 찾아서>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악의 본질적 구성 요소는 자신의 죄나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드는 점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을 의식하는 동시에 그 의식을 피하고자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이들은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들처럼 차라리 도덕성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없이 마냥 신나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분명한 의식의 구들장 밑에 자신의 악의 증거들을 꾹꾹 쑤셔 넣는 일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지난 3월 29일 일어났던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여파를 남기고 있다. 피해자가 8세 여아라는 것, 살인범이 17세 소녀라는 것 그리고 범행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끔찍하다는 것 등이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이보다 우리를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아직 순수하기만 할 사춘기 소녀가 그러한 행위를 하고도 너무 태연한데다가 체포 후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한 태도이다. 

나이도 어리고 외견상 이른바 상류가정의 좋은 가정환경을 갖춘 그 꽃다운 소녀가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4,5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까지 국민 모두가 우울감에 싸여 있다. 

이 사건으로 사회심리학자, 청소년 범죄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등이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러한 범죄를 일으킨 소녀의 심리상태를 심리부검으로 분석하고 여러 면에서 그 원인을 조명해본다. 

범죄 동기나 원인분석은 대부분 일반적이다. 사생활 보호에 의해 아직 가해자의 집안이나 그 밖의 환경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다만 일반적 심리분석의 틀에 맞춰 ‘애정결핍증’에 걸려 있거나 아니면 병적인 인격장애의 ‘싸이코패스(psychopathy)’라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범행 소녀가 자신의 범죄 앞에 전혀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이다. 정말 소녀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만큼 선악을 분별하는 이성과 감정마저 무디어진 양심이 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저질러진 일 앞에서 오히려 그것들을 즐기는(?) 태도로 또 하나의 역할극을 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 사건을 두고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조망해 볼 때 몇몇 입장을 고려할 수 있다 .

첫째, 사회통념에 의한 시각이다. 기본적 사회제도 안의 틀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두 가지 양상이 대립되는데, 예를 들면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과 같다. 우리 형법에 사형제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동안 여론에 떠밀려 실제적으로 현실에서는 집행사례를 찾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최근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이 불거지면서 다시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또한 미성년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있어 지금까지는 관대한 편이었지만 앞으로의 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이것 역시 강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추세다 .

둘째, 부모(가족)에 의한 시각이다. 부모에게는 죄인 자식이 없다. 그냥 자식일 뿐이다. 성경의 ‘탕자 비유’에서도 그렇다. 아버지는 자식의 패륜은 안중에도 없고, 자식이 돌아온 것만 기뻐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의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아버지에게는 자식일 뿐이지만, 형이나 주변의 시선으로는 죄인이다. 그 자식이 아버지 품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아버지 품을 떠난다면 그는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주변에 더 큰 문제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식은 성인이 되어 사회인의 한 사람일 것을 생각해서 교육할 일이다.

셋째, 본인의 사고체계에 의한 시각이다. 본인 자신의 인생관·가치관 등에 의한 것이다. 

사회적 통념이나 부모의 교육이 자식을 악의 화신으로 만들려 하지는 않았다. 본인마저도 원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치열한 경쟁위주의 학교교육과 잘못된 부모의 성공주의가 한 인간을 처참한 비극으로 몰아갔던 것임을 이 사회는 그리고 부모나 어른들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사회현상을 일반화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거리를 용납하면 안 된다. 행복이 선택인 것처럼 불행도 선택이고, 무서운 죄 앞에서 내가 회개하고 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그 죄악 속에서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도록 자신을 내맡기는가 하는 것 역시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선택이요 몫이다. 

사람은 누구든 양심의 화인을 맞기 전에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이며,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된 인생관이나 가치관 등의 비이성적인 사고체계가 비인간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바탕으로 한 영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이성적 판단요소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저 희고 갸름한 예쁘장한 얼굴에, 의사와 교수를 부모로 두고 있는 저 17세 소녀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 자신과 아무 이해타산도 없이 저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건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납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이 한 짓이 아니라, 악마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의 스캇 펙 박사는 이런 면에서 근본적으로 ‘악의 사람’이 있다고 진단하여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