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 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장)

 

새 정부 들어 이미 진행 중인 원전의 건설을 일시 중지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실시한 원전 건설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관심을 끈다.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따르면 원전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42%, 중단해야 한다는 답변은 38%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지난 7월에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 37%,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 41%와 뒤바뀐 결과다. 물론 수치에 있어 의미 있는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건설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건 분명한 것 같다.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동일한 사안을 두고 생각과 의견이 다른 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친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사실상의 계획경제에 해당하는 중앙정부 주도의 독점적 에너지 수급체계를 그대로 갖고 갈 것인가, 에너지 가격을 공공요금의 형태로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제해도 되는 것인지, 현재의 수급체계로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또 앞으로 급변하는 에너지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지 등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에너지 문제를 푸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개발 연대에 단기간에 걸친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뤘다. 지금의 에너지 수급체계는 그 시대의 산물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패러다임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과거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제도와 수급체계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로 국내 에너지 수급체계, 특히 전력부문은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경직되었다. 하드웨어인 몸은 비대해졌는데, 소프트웨어인 정신의 성장은 멈춘 격이다. 에너지 소비의 대부분을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스웨덴의 주요 도시들이 수년 만에 화석연료 의존율을 5% 정도로 탈바꿈한 것과 비교된다.

공급 중심의 중앙 집중적 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종류별 전국 규모의 공기업에 의한 공급체계는 안정적 수급은 가능할지 몰라도 비효율적, 비탄력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지배하고 있어 소비자는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구조다. 경쟁이 없으니 가격과 서비스 품질이 좋을 리 없다. 또 자신의 시설만 문제가 없이 잘 관리하면서 최적화, 효율화하면 그만이다.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에너지 수급문제를 고민할리 없다. 에너지 소비효율이 일본의 절반 수준, 미국보다도 낮은 이유의 하나다.

한편, 요즘 발전용 연료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논란에 소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들만의 일이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겨서일까. 에너지 수급의 중심축이어야 할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의 경쟁구도만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합리적인 수요를 통해서 공급을 바람직하게 조절할 수 있다. 독과점 형태가 효율적이고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건 해묵은 논리다. 국제규범과 에너지 수급환경이 급변하고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는 시대를 경직된 수급체계로 넘는 건 무리다.

고객과 시장의 변화를 감지해 반응하는 속도가 늦은 기업은 생존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고객과 수요처 가까이에 지사를 두는 이유다. 국가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경쟁이 없는 독점체계이기 때문이며, 이를 경쟁으로 유도함으로써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인프라와 관련된 산업의 민영화에서 보듯이, 동일한 지역 내에서도 직접경쟁이 아닌 간접경쟁을 통한 서비스 경쟁도 가능하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에너지 수급체계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는 전국규모의 에너지 공기업만으로 에너지 수급을 맞추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최종 수요단계의 에너지 수급을 기업의 지사에 해당하는 지자체에 맡기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국규모의 생산주체들로부터 지자체나 투자회사가 에너지를 사서 공급하는 구조다.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이들은 자신들의 소비자를 위해 저렴하고 양질의 에너지를 공급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경제가 활성화가 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1993년 준공한 한국남동발전 분당발전본부 전경 <사진 = 남동발전 홈페이지>

또 지자체는 요금을 낮추기 위해 수요 자체를 줄임은 물론 지역 내 새로운 에너지를 발굴하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시설별 균형을 맞추려 적극 노력할 것이다. 결국 소비와 공급의 선순환을 통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국가 에너지 수급체계 구축도 가능해질 것이다.

희소성과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중심의 수급체계야말로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이른바 풍요와 공유가치 사회를 구성하는 선결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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