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황경진 원장(사진)의 진찰실은 산모들로 붐볐다. 소박하고 깔끔한 진찰실 앞에는 “ ··· 끝까지 걸어봅시다./나의 사랑을 다하여/그대 곁을 지키겠습니다.”라는 황 원장의 자작시가 걸려있다. 그레이스병원은 얼마 전 임산부의 날을 맞아 D라인 파티 등 산모들을 위한 즐거운 이벤트를 벌였다. 산모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니까 만드는 행사다.

“지역에서 열리는 어린이, 장애인, 노인 행사에도 꼭 참여하려고 노력해요. 의술이 아니라 인술을 베풀어야죠. 200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인간미 넘치는 그레이스 병원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레이스병원에서 네 번이나 출산한 산모도 있습니다. 우리 병원 원보에 싣기도 했죠. 그렇지만 무엇보다 전문성이 우선입니다.” 인간미와 전문성을 두루 갖춘 지역의 여성전문병원을 만들고자 애쓰는 황경진 원장을 만나보자.

3남 2녀의 어머니, 8남매의 장손 며느리, 여성병원 원장, 그녀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다. 2남 4녀를 모두 대학에 보낸 대단한 어머니 최화섭 씨(22년생)의 셋째 딸이다. 아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신 어머니는 작년에 자손들과 함께 회고록을 엮었다. 어머니는 황경진 원장(52년생)에 대해 “유난히 머리는 까맣고, 오목오목 생겨 복스럽게 예쁘고 건강하게 자랐다.”고 썼다. “경진이가 태어난 걸 축하한다고 5개면 면장님이 80kg 쌀 다섯 가마를 선물로 보내왔어, 셋째 딸을 낳고서 집안 살림이 풍족해졌다.”고 복덩이라고 했다. 다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복한 집안의 며느리가 됐다. 그리고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황경진 원장은 산부인과 의사가 자신의 천직이라고 밝혔다. "우리 때는 산부인과 수련의가 경쟁률이 높아서 모교 산부인과에서 공부하게 됐을 때 온 세상을 얻은 것만큼 기뻤습니다. 내가 원하던 길이라 무섭다 힘들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첫 분만을 지켜보았을 때 충격을 받기도 하던데, 저는 탄생이 이렇게 신비롭구나!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탔습니다."

Q : 산부인과 의사의 출산은 어땠을까?
A : 막내가 29살인데, 막내를 낳을 때까지 작은 병원에서 일했어요.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안 낳고 작은 의원에 가서 애를 낳았어요. 내가 분만 과정을 수없이 지켜봐왔잖아요. 누구보다 분만과정을 잘 알고 있어서 통증이 있다는 정도였고, 막연하게 잘 낳을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요즘도 나는 산모들에게 아기 잘 낳으려면, 병원마다 개설된 산모교실 4주 코스는 꼭 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러면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없어져요.

Q : 가장 인상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A :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10년 전인데, 산모가 아기를 낳고 이완성 자궁출혈(분만 후 대량 출혈, 출산 직후에 생김)로 쇼크에 빠진 거예요. 요즘은 출혈하면 바로 3차병원에 가서 색전술(혈관을 막는 기술)을 이용해 자궁혈관을 막고 수혈치료를 해요. 근데 당시는 10년 전이라 자궁수축제를 쓰고, 수혈을 했죠. 산모가 계속 하혈하니까 우선 제왕절개를 했는데, 산모의 혈압이 떨어지다가, 심장이 멎어버리는 거예요. 내과 선생님과 마취과 선생님이 달라붙고, 결국 심장마사지하고 응급소생술을 실시했죠. 그때는 정말 내가 이런 일을 겪다니, 순간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다행히 3분 있다 맥박이 다시 뛰더라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가톨릭 신자인데, 하느님 덕분에 우리 집(근무한 병원)에서 아기 낳고 죽은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환자 겨우겨우 출혈 멈추게 해서 3차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이송했습니다. 이후에 산모가 이송된 대학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고 해요. 애도 살고 엄마도 살았죠. 그 엄마가 돌 때 애기 안고 인사하러 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남편이 문신도 하고, 부하도 몇 명 데리고 다니는 조직폭력배였더라고. 그 사람이 그렇게 고마워하더라고. 여러모로 큰일 날 뻔했어요.

Q : 저출산에 대한 원장님의 생각은?
A : 아기를 안 낳는 젊은이들을 보면 인생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편한 것, 쉬운 길만 찾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어요. 아이 키우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나라고 모르겠어요. 행복함 이면에는 어려움도 있죠. 아이가 아플 수도 있고, 건강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고, 고생을 안 할 수가 없죠. 인생이라는 것은 항상 밝은 면과 어두운 면, 고통과 편함의 양면성이 있는데, 우리는 인생의 이런 모든 면을 두루두루 알았을 때,  원만한 인격과 인내를 키울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황경진 원장이 말하는 자연주의 출산이란?
A : 자연주의 출산이란 말 그대로 산모가 갖고 있는 자연적인 출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분만으로, 불필요한 약물이나 의료시술 등을 거의 줄이고 산모의 순수한 출산 에너지를 이용하여 분만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출산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산모에게는 분만을 가장 편안한 자세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태어나는 아기는 충격을 최대한 줄여 평화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드러운 출산을 말합니다.

Q : 자연주의 출산이 나온 배경은?
A : 90년대 이전에는 분만 시에 모성사망률이 굉장히 높았어요. 응급처치 준비가 미흡한 상태로 산모들이 애 낳으러 신발 벗고 들어가면서 다시 이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무서워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평균 모성사망률이 11명이거든요. 그만큼 의료 기술이 발달했고, 안전해졌어요. 그런데 병원분만이 본격화 되면서 제왕절개 분만율이 늘기 시작했고 모든 분만이 기계화, 의료화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제왕절개 분만율은 세계보건기구(WHO)가 10~15%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 데 비해 36%로 2배 이상 높아요.(2013년 기준)

자연주의 출산이 왜 나왔냐면 의학이 발달했어도 불필요하면 쓰지 말자는 거예요. 옛날 집에서 애 낳는 것처럼 낳아보자. 출산시 회음부 절개, 관장, 무통주사, 제왕절개 등등 너무 많은 의료 개입이 있습니다. 이것을 줄여보자. 자연주의 출산은 산모가 갖고 있는 자연적인 출산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분만입니다.

서양에서는 1940년대 미셀 오댕이나 르봐이에 등이 지나치게 의료화, 기계화 되어버린 기계적인 분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현대 자연주의 출산의 중요성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특히 닥터 르봐이에는 서양에서도 아기가 막 태어나면 엉덩이 때려서 울렸대요,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다고 했는데, 이 분이 "그건 폭력이다. 또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강한 불빛을 받지 않도록 편안한 조명이 필요하다.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 가슴에 아이를 안게 해주자. 그러면 아기가 숨도 잘 쉬고, 잘 울지도 않는다."고, 덕분에 출산 문화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Q : 그레이스병원에서 시작한 자연주의 출산이란?
A : 그레이스병원이 일산에서 개원한 것이 1999년입니다. 산모들에게 좌선과 복식 호흡을 하도록 하기 시작했죠. 2000년부터는 분만할 때 아이를 때리지 말자, 분만실을 평화롭게 하자, 약을 과하게 쓰지 말자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부터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레이스병원이 본격적으로 자연주의 출산을 실천한 것은 6년째인데, 우리나라에서 자연주의 출산이 들어온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레이스병원은 자연주의 출산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직원이 한마음으로 라마즈, 르봐이에, 소프롤로지 분만법 등을 활용, 자연출산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약물이나 회음부 절개, 제왕절개 등을 줄이고 순산율을 최대한 높이면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출산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산부인과에서는 오늘도 새 생명이 태어난다. 그 탄생의 순간을 30년 넘게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자신의 저서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황경진 원장은 태어나는 아기와 분만하는 산모를 둘다 배려하는 자연주의 출산 문화를 가꿔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의료 기술은 최대한 받아들이면서도 산모가 가진 에너지는 그대로 사용하는 능동적인 출산 문화가 그레이스병원에서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

(『자연주의 출산을 위하여』(건강다이제스트사, 2013)는 그녀의 아들이면서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전문의인 장익진 씨와 공저했다. 자연주의 출산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은 참고 바란다.)

◆황경진 원장 약력

산부인과 전문의, 의학박사
서울대학교 시험관아기센터 외래 임상교수
삼성서울병원 외래 교수
한양,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교수
영국 Warwick University 불임클리닉 연수
대한만성골반통학회 부회장
대한노화방지학회 부회장
대한폐경학회 부회장 역임
대한불임학회 상임이사
미국불임학회 정회원
미국내시경학회 정회원

<저서> 『자연주의 출산을 위하여』(건강다이제스트사, 2013), 『임신과 출산 그 소중한 사랑을 위하여』(건강다이제스트사, 2002), 『불임은 알아야 정복할 수 있다』(건강다이제스트사, 1999)

<전문분야> 시험관아기, 인공수정, 다낭성난소, 갱년기 내분비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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