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는 꿈의 소리가 있다. 온종일 나 아닌 것들로 피곤할 때 잠이 찾아오듯 살며시 다가와 바짓가랑이에 자기 몸을 부비는 고양이는 꿈을 보는 듯하다. 야아~옹! 조용히 졸린 듯 우는 울음은 꿈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은 꿈의 촉수일 것이다. 손을 대면 꿈속을 걷는 듯한 느낌. 나는 그걸 황홀함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실직을 벗어나고자 한 때 동인천에서 호프집을 한 적이 있다. 사람으로 붐비던 시절은 가고 상권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곳, 그것도 큼큼한 냄새가 언제나 가게 안을 맴돌던 지하였다. 4시쯤 출근하여 청소와 주방에 필요한 재료를 시장에서 사 오고 나면 손님이 올 때까지 지루한 시간을 어두운 곳에 홀로 앉아 기다려야 했다. 그러한 시간은 형벌처럼 참아내기 힘들었고 당장이라도 가게를 넘기고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지루함의 시간을 달래 줄 대상이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오후 3시의 모퉁이를 돌아 떠돌이 고양이 한 마리가 울음소리를 내며 내 다리에 몸을 기대는 거였다. 어디에도 닿지 못하던 나는 내게 몸을 기대는 고양이의 무게에 어떤 무늬가 생기는 것 같았다. 내게 무언가 닿아 있다는 느낌에 알 수 없는 저 속이 흔들리는 걸 알았다. 나는 몸을 숙여 쓰다듬었고 고양이는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내게 안겨왔다.

외로운 시간들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쓸쓸한 공간이 따뜻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꿈이 기어들어 온 것이다.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느긋하게 손끝으로 번져오는 부드러움과 온기를 즐기곤 했다. 정성을 다해 고양이 먹이를 준비했고 먹이를 먹고 난 고양이는 답례라도 하듯 그르렁거리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흔하디흔한 고양이가 내 외로움과 허한 마음을 채워 주리라 생각을 못했다.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또 사라지기도 한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도 얼마 못 가 식어 버렸다. 내 일상은 고양이와 노닥거릴 여유가 없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쫓기고 있었고 고양이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었다. 고양이는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꿈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있다가 없는 것은 때로 눈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외로움과 허한 마음이 곱으로 찾아왔다. 기다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 후 고양이가 싫어졌다. 싫어졌다기보다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몸으로 거부하는 반응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 꿈이 있다. 마음속에 고양이 한 마리씩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 꿈을 소홀히 하고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 때 꿈은 사라지고 허탈함만 남는다. 한 번 놓치고 나면 기다리고 기다려도 다시는 오지 않는다. 어디론가 훌쩍 떠난 고양이처럼.

정진혁

저작권자 © 고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